경북 초토화 시킨 주불 다 잡혔다…남은 건 지리산 방어전

28일 경북 영덕군민운동장에서 산불 진화 헬기가 착륙한 뒤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경북 영덕군민운동장에서 산불 진화 헬기가 착륙한 뒤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주일 동안 28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사상 최악의 인명·재산 피해를 낸 ‘괴물 산불’이 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산불·화재 진압 요원이 목숨 걸고 화마와 싸운 덕분이다. 산불 지역 곳곳에 내린 단비와 때아닌 봄눈도 이들을 지원했다. 정부는 산불 진화 이후에도 피해자를 지원하고 시설을 복구하기 위해 자원을 적극적으로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경북 산불 4만5170㏊ 영향…서울 75% 규모

28일 경북 영덕군 지품면 산불 피해지역에서 주택과 차가 불에 타 검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28일 경북 영덕군 지품면 산불 피해지역에서 주택과 차가 불에 타 검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11개 중·대형 산불은 크게 ▶경북의 경우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청송·영양·영덕 등으로 퍼져나간 산불과 봉화·경주 산불 등 7개 ▶경남 산청·하동 산불 ▶울산 온양·언양 산불 그리고 ▶기타 지역(충북 옥천, 전북 무주 등) 산불로 구분한다.  

이중 산불영향구역을 기준으로 가장 피해가 컸던 경북 지역 7개 산불이 발화 149시간 만에 꺼졌다. 경북 의성군 산불현장지휘소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임상섭 산림청장은 “경북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은 28일 오후 5시를 기준으로 주불 진화를 완료했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잠정 집계한 경북 지역 산불의 영향구역은 모두 4만5170㏊다. 서울시 면적의 약 74.6%에 해당하는 규모다.  


울산 온양·언양 산불을 27일 오후 8시경 진화한 상황이다. 27일엔 전북 무주, 25일엔 경주·봉화, 23일엔 충북 옥천에서 각각 발생한 산불도 모두 진화를 완료한 상태다.  

이제 경남 지역 산불만 남았다. 산림 당국은 지리산 권역 방어선 구축을 강화해 화선을 잡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때 불길은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에서 남쪽 4.5㎞까지 접근했다. 산림당국은 불길 앞에 2km 길이의 방화선을 구축해 천왕봉을 사수하고 있다. 다만 영덕·하동으로 번진 주불이 잡히면서 정부는 지리산권으로 인력·장비를 이동·배치해 진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28일 오전 11시30분 경남 산청군 한국수력원자력산청양수발전소 상부댐에서 육군, 공군의 치누크(CH-47) 헬기가 산불 진화 작업을 위해 물을 담고 있다. [사진 독자 제공]

28일 오전 11시30분 경남 산청군 한국수력원자력산청양수발전소 상부댐에서 육군, 공군의 치누크(CH-47) 헬기가 산불 진화 작업을 위해 물을 담고 있다. [사진 독자 제공]

2km 방화선을 구축해 천왕봉 사수

28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한 마늘밭 인근 비탈이 산불에 검게 타 있다. [연합뉴스]

28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한 마늘밭 인근 비탈이 산불에 검게 타 있다. [연합뉴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대규모 인명 피해를 양산했다. 28일 오후 9시 기준 인명피해는 사망 28명, 부상 39명 등 총 67명이다. 경북(3396개)·경남(72개)·울산(11개) 지역에서 총 4737개 주택·비닐하우스·창고 등이 피해를 입었다. 산청 동의보감촌 등 18개소로 대피한 이재민은 28일 기준 4911명에 달했다.

주불이 진화될 때까지 산불은 일주일간 경북을 초토화시켰다. 지난 25일 불어닥친 초속 27m의 태풍급 돌풍은 삽시간에 의성·안동을 넘어 청송·영양·영덕까지 치달았다. 시간당 평균 8.2㎞의 속도로 산불이 확산하면서 일부 지역은 전기가 끊기고 통신은 두절했다. 

안동·청송·영덕에 시·군민 대피명령이 떨어진 순간 차량이 일제히 도로로 나오면서 대피행렬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산불 피해 지역을 가로지르는 국도에 산불이 만들어낸 불길이 끼치고 매캐한 연기가 들어차면서 통행이 마비됐다.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바닷가까지 밀고 내려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영덕에서 사망자가 9명이나 나온 배경이다.

 경북 의성군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고 있는 25일 오후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서 관계자들이 화재에 대비해 초가지붕에 물을 뿌리고 있다. [뉴스1]

경북 의성군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고 있는 25일 오후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서 관계자들이 화재에 대비해 초가지붕에 물을 뿌리고 있다. [뉴스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한 문화유산도 산불에 위협을 당했다. 산불은 하회마을로부터 10㎞ 거리까지 다가왔고, 병산서원에도 산불이 직선거리로 4.9㎞까지 다가왔다. 산림 당국은 분당 4만5000L의 물줄기를 내뿜는 대용량 방사포를 설치하고 헬기를 이용해 마을 곳곳에 물을 뿌리며 대응했다.

경북 지역 산불이 잡히기 시작한 계기는 27일이다. 이날부터 28일 새벽 사이에 경북 의성 등엔 1.5㎜ 안팎의 비가 내렸고, 안동(1㎜), 청송(2㎜), 영양(3㎜), 영덕(2㎜)에도 단비가 왔다. 안동 지역에는 자정이 지난 직후 우산이 필요할 정도의 비도 잠깐 내렸다. 특히 경북 영양군 영양읍 일원면 일대에는 기온이 하루 만에 10℃ 이상 낮아지면서 눈이 내리기도 했다.

바람도 잦아들었다. 28일 오전부터 평균 초속 3∼4m 수준으로 바람이 주춤해졌다. 진화 인력은 달라진 날씨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28일 동이 트자마자 산불 현장에 진화 헬기 88대와 진화 인력 5587명, 진화 장비 695대를 투입해 진화에 나섰다.

임상섭 산림청장은 28일 의성군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에서 “지난밤 내린 비로 연무가 적어져 시야 확보가 유리하고, 기온이 다른 날에 비해 낮아 산불 진화에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현장지원반 확대…175개교 학사 조정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대운산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엿새 만에 꺼진 가운데 28일 검게 탄 산불 지역에 핀 진달래가 시들어 있다. [연합뉴스]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대운산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엿새 만에 꺼진 가운데 28일 검게 탄 산불 지역에 핀 진달래가 시들어 있다. [연합뉴스]

다만 산림 당국은 지리산을 포함한 화재 지역에 강한 바람이 불면서 낙엽·나무둥치에서 잔불이 재발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5월 중순까지 봄철 산불대책 기간으로 지정하고 산불 예방·방지에 나선다.

산림청 중앙산불방지대책본부는 “봄철 건조한 날씨·강풍으로 작은 불씨도 대형산불로 확산 위험이 있다”며 불씨 관리를 당부했다. 사소한 부주의라도 화재가 발생하면 산불 원인 행위자는 산림보호법 제53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국가지정 유산 11건과 시·도 지정 유산 12건도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고운사의 국가 지정 문화유산 보물인 가운루·연수전 보물 2개는 전소했다. 국가유산청은 사찰·종가가 소장해 온 유물 23건(1566점)을 이동 조치했다.

정부는 산불 확산 저지와 함께 주요 시설 보호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남 하동 지역에선 모한재·청계사·법성선원을, 경남 산청 지역에선 대원사·석남안사지·덕산사를 각각 방염 처리했다. 

28일 경북 영양군청에 마련된 지역 산불 희생자 6명의 합동분향소를 찾은 산림청 특수진화대원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경북 영양군청에 마련된 지역 산불 희생자 6명의 합동분향소를 찾은 산림청 특수진화대원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민 수가 불어나면서 행정안전부는 산불 피해 현장 지원반을 확대·운영했다. 경북 안동·의성·청송·영양·영덕 등 5개 시군과 경남 산청·하동 등 2개 군 등 총 7개 지방자치단체에 각각 산불 피해 현장지원반을 편성했다.  

현장지원반은 시·군별 이재민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파악하고 시·군 차원의 제도 개선 건의 사항이나 애로사항을 파악하는 등 이재민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행정안전부는 또한 공공기관 연수시설 등을 임시거주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장기적으로 이재민에게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산불로 인해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된 지역의 고용 안정을 위해 실업급여와 생활안정자금 융자를 지원한다. 특별재난지역 실업급여 수급자의 경우 고용복지센터 방문 없이 온라인으로 실업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교육부도 산불 피해지역에 위치한 교육·보육시설 175곳의 휴업·등교 시간을 변경하는 등 학사를 조정했다.  

고기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피해 현장에서 필요한 사항을 빠짐없이 파악해 이재민과 산불 진화 작업자에게 신속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