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차출' 기쁨도 잠시…낡은 건물에 달랑 '쏘련 교육지침서'뿐 [월간중앙]

새 연재|한진명의 평양 랩소디
맨땅 일군 북한군 드론 부대의 과거, 그리고 오늘

1996년 김정일 지시로 ‘7·24 중대’ 창설해 저비용 고효율 무인기 개발 시작
모터 소형화도 허덕이던 초기 어려움 딛고 정찰·공격용 자력 개발 성공
무인기 이용 국지 도발·테러 등 전술 변화 대비 이동 탐지 능력 확보해야

러-우 전쟁의 북한군 포로는 “마귀드론에 많은 동지들이 희생됐다”며 드론의 위력을 언급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개한 생포된 북한 군인의 모습. [사진 젤렌스키 대통령 엑스(X)]

러-우 전쟁의 북한군 포로는 “마귀드론에 많은 동지들이 희생됐다”며 드론의 위력을 언급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개한 생포된 북한 군인의 모습. [사진 젤렌스키 대통령 엑스(X)]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現代戰) 양상 변화의 시사점을 제시한다. 러-우 전쟁은 특히 군사용 드론의 활용법과 전투 방식에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러-우 전쟁의 직접적 피해자인 북한군 포로들은 다음과 같이 실토한다.

“마귀드론을 아십니까?”, ”마귀드론에 많은 동지들이 희생됐습니다.”

드론에 대한 대응 능력이 부족한 북한군은 러-우 전쟁에서 자폭 드론의 공격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됐다. 1990년대부터 무려 30년째 전투용 드론을 개발·연구한 북한이 드론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김정은식 국방발전계획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필자는 1996년 8월 북한의 무인기(드론)부대 창설에 참여했다. 이 글은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북한 무인기 부대의 과거와 현재에 관해 쓴 글이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사이에 벌어진 소련의 붕괴와 동구권 해체는 북한에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국제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물론, 이념적 테두리 안에서 소극적으로나마 지속되던 군사·경제적 협력·지원마저 차단됐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도 심각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경제 파탄은 곧 군사적 열세를 의미한다. 북한은 일찌감치 대한민국과의 군사력 경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북한이 군 현대화를 포기하고 핵무기나 무인기처럼 ‘생존형 비대칭 무기’에 집착하게 된 배경이다.

이 중에서도 북한은 무인기에 집착했다. ‘부국강병 남조선’과 군사적 균형을 맞추는 데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무인기는 개발·운용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북한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무인기 개발에 나섰다. 문제는 마음만 앞섰다는 것이다. 가난의 비애(悲哀)다.

북한군은 부대를 신설할 때 항상 거치는 과정이 있다. 바로 신무기의 기술적 완비가 끝나기도 전에 해당 분야 군사 전문인력을 모집해 병사들을 교육하는 거다.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이론을 먼저 익히는 셈이다. 이는 북한 당국이 의도적으로 ‘긴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이 같은 방식이 경쟁하는 사회를 조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공산주의를 표방한 북한이 경쟁을 창출하기 위해 도입한 ‘선전·선동 방식’이다.

급조된 드론부대, 교육할 소대장도 우왕좌왕

실제로 김정일은 무인기 부대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1996년 7월 24일, 군부에 “무인기 부대를 조직하라”고 지시했다. 새로 만들어진 무인기 부대의 이름은 김정일이 지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7·24 중대’로 명명했다.

당시 필자는 평안북도 태천군 공군사령부 5사 79습격비행여단에서 ‘안-2 무선장비’를 전담하고 있었다. 김정일의 지시가 떨어진 지 며칠이 흐른 1996년 8월 어느 날, 여단 지휘부는 필자를 호출했다. 필자는 동료 병사 7명과 함께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는 2시간을 내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 노동자구에 위치한 ‘881 비행기 수리공장’이었다. 이미 해는 기울기 시작했다. 눈앞에 커다란 공장이 보였다. 내부에는 낯선 군인 100여 명이 집합해 있었다.

우리는 또다시 이동했다. 한 시간을 걷자 잡초가 무성한 은양 비행장이 보였다. 바로 앞에 다 쓰러져 가는 낮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허름한 그 건물이 앞으로 우리가 생활하게 될 생활관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필자와 동료들은 “특수요원으로 선발됐다”는 교관의 말을 듣고는 기쁨에 도취해 있었다.

다음 날, 새로운 중대장과 소대장들이 건물에 도착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881 비행기 수리공장 엔지니어” 혹은 “국방대학 졸업생”으로 소개했다. 중대장, 소대장까지 모이자 그럴듯한 무인기 부대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중대장은 병사들을 4개소대로 분류했다. 이후 진행된 집중 훈련은 놀라울 정도로 부실했다. 무인기 전문병 교육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과거 소련에서 쓰던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기 교육지침서’를 따라 읽는 것이 전부였다. 교육을 담당하는 소대장들도 내용을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김정일의 지시로 급히 부대가 꾸려졌으나, 상부에서는 제대로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을 재건하기 위해 우리 부대원들은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다. 자연스레 교육지침서를 읽는 날도 줄었다. 나무를 하다 잠시 휴식 시간이 생기면 필자를 비롯한 동료들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갱도로 달려가 교육을 받고는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무인기 연구·개발도 난관에 봉착했다. 상부에선 무인기 핵심부품인 발동기(모터)를 하루빨리 제작하라고 독촉했다. 국방성 산하 연구기관들과 군부대들의 경쟁을 부추겼다. 이에 국방성, 국방대학, 공군사령부는 전력을 다해 발동기 제작에 돌입했다.

문제는 의욕만 앞섰다는 것이다. 가장 큰 난관인 발동기 경량화 방안을 그 누구도 찾지 못했다. 발동기 무게를 못 이긴 무인기 무게중심은 두부 쪽으로 쏠렸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있듯, 군 수뇌부는 색다른 아이디어를 내놨다. 병사들이 무인기의 꼬리 부분을 손으로 잡고 달리다가, 일정한 거리에서 놓아주는 방식이다. 881 비행기 수리공장에서 주야없이 발동기 전문가들이 노력했으나 경량화에 실패하자 내놓은 ‘특단의 조치’라는 게 고작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발동기 경량화 뿐 아니라 발동기 덮개가 파손되는 현상도 극복하지 못했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자 북한은 결국 ‘밀반입’ 카드를 꺼내 들었다. 881 비행기 수리공장 소속 군인들은 러시아에 건너가 정찰용 무인기를 밀반입해 왔다. 러시아산 무인기를 뜯어서 발동기를 모방했다. 그 결과 2년 만에 발동기 경량화에 성공했다. 물론 발동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다. 무인기 스스로 이착륙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상부에서는 이번에도 “극복 방안을 내놓으라”고 지시를 하달했다. 고심 끝에 개발 당국은 일정 고도에 진입한 후 자체 추진력으로 비행하는 무인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인기 소형화가 필수였다. 1997년 당시 북한 공군이 보유한 무인기의 길이는 대부분 10~12m였다. 소형화가 늦어진 이유는 기술적 제약이 크지만 공군 장비 부처들의 본위주의(부처 이기주의)가 큰 영향을 미쳤다.

북한 공군 기술 장비 부처들은 크게 비행기 발동기, 특수 장비, 무선 장비, 탐지 장비, 무기 장비로 구분된다. 이 모든 부처들이 자기들의 장비를 무인기에 장착하려고 고집한 탓에 도저히 기체 크기를 줄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국방성은 특단의 조치를 내놓았다. 국방대학이 민간 항공부문과 협력해 생산하는 무인기는 정찰·감시 임무를 주고, 공군이 생산하는 무인기는 운송·공격 위주로 임무를 분리해 개발 방향을 다르게 한 것이다. ‘혁명의 원수’ 본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1월15일 김정은이 무인항공기술연합체 산하 연구소와 기업소들에서 생산한 각종 자폭 공격형 무인기들의 성능시험을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1월15일 김정은이 무인항공기술연합체 산하 연구소와 기업소들에서 생산한 각종 자폭 공격형 무인기들의 성능시험을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흩어져라”…무인기 부대에 떨어진 긴급 지시

2000년대 북한 ‘무인기 전투부대’는 재편과 주둔지 이동을 반복했다. 자연스레 인적, 기술적으로 큰 변화를 거쳤다. 기존 복잡한 명령 지휘 체계도 빠르게 정돈됐다.

기존 7·24중대는 조선인민군 881군부대(881 비행기 수리공장) 소속이었으나, 2000년대 초반 공군사령부 직속 ‘무인기 전투부대’로 소속이 변경됐다. 병사들은 좋아했다. 은양 비행장 근처의 낡아 빠진 건물을 떠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 숙영지인 압록강 공장(881군부대 부속 공장) 경비중대 생활관은 전과 비할 바 없이 아늑했다.

당시 우리 중대는 10여 대의 무인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야 거리가 짧은 은양 비행장 대신 광활한 과수원이 밀집한 황해남도 과일군에서 시험 비행을 했다. 과수원의 효과는 컸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7·24중대’는 공군사령부 직속에서 조선인민군 무력부(현재는 국방성) 직속으로 편제가 수직 상승했다.

부대 규모도 중대급에서 대대급으로 확장됐고, 병력도 약 네 배로 늘었다. 초기 전문병들은 어느덧 군관(장교)과 초기복무(부사관)로 승진했다. 군부대는 기존의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평양시 미림구역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 무인기 군부대는 공군사령부의 지휘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자적인 지휘 체계를 확립하게 됐다. 부대 지휘관들은 현대적인 평양시 만경대구역 축전동의 지정지역에 주택을 배정받았다. 덕분에 국방성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미림비행장까지 출퇴근했다.

무인기 대대는 국방성과 국가 중앙부처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자연스레 민간 무인기 연구로 반경을 넓혔다. 덕분에 우리 대대는 기존의 전투 무인기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무인기들을 보유하게 됐다. 대대는 평양에 주둔하는 동안 연대급으로 격상됐다. 정찰, 감시, 타격 등 보유한 무인기 종류도 다양해졌다. 말 그대로 북한 최고의 독자적 전투단위로 거듭난 것이다.

이후 무인기 연대의 명칭은 ‘조선인민군 제1501군부대’로 변경됐다. 200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1501군부대는 또 한번의 주둔지 이동 명령을 하달받았다. 그러나 당시 부대 재배치는 기존의 ‘집중배치’가 아닌 대대 단위 ‘분산배치’라는 차이가 있었다. 또 후방의 비행장 인근에서 활동하던 부대들이 최전방 군사분계선 지역의 군단들에 전진 배치됐다.

그 이유는 ‘남조선’의 선제타격에 궤멸적 피해를 입을 것이란 짙은 두려움 때문이다. 이에 군 수뇌부는 휴전선 전방 군단, 특히 예측 불가능한 지역에 드론 전력을 분산 배치했다. 그러나 군 수뇌부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당시 북한이 보유 중이던 무인기들은 모두 근거리에 수리 기지를 갖고 있어야 했다. 쉽게 망가지기 일쑤여서 발동기 점검·수리는 필수였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 최대 규모 비행기 수리·보수 기지는 881 비행장 수리공장뿐이다. 즉, 881 비행장 수리공장 근거리에 핵심 무인기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881 비행장 수리공장에서 수리한 뒤 야밤에 윤전(輪轉) 기재로 운반하는 계획도 세웠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한·미 전략자산에 노출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에 북한은 유사시에 사용하려고 은폐해 온 황해남도 임시비행장에 이동식 임시 수리기지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무인기 고장 퇴치와 기술 정비를 단행했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2023년 7월 28일 오후 3시부터 전날 밤에 열린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열병식을 녹화 방영했다. 사진은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 무인기. [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2023년 7월 28일 오후 3시부터 전날 밤에 열린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열병식을 녹화 방영했다. 사진은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 무인기. [조선중앙TV=연합뉴스]

 

김정은 목표는 정찰 위성과 드론의 결합

김정일 이후 집권한 김정은은 무인기를 군사작전에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2012넌 4월 김일성 생일 10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서 군사용 무인기를 공개한 이유다. 김정은은 이후 2013년 3월 25일 ‘인민군 제1501군부대’ 무인기 시험 발사장을 시찰하면서 “다양한 무인기를 활용한 적 중심 정찰 활동을 강화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이 보유 중이던 대표적인 무인기들은 ‘방현-1호’와 ‘방현-2호’였다. ‘방현-1호’는 무기를 장착하지 않고 탐지·감시·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방현-2호’는 ‘방현-1호’보다 기술력이 발전됐다. 북한이 무인기 명칭에 ‘방현’을 고집하는 이유는 군수산업 발전의 주요 거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노동자구에는 앞서 언급한 북한의 최대 공군수리기지인 881 수리공장이 있다. 직승기(直升機), 즉 헬리콥터 생산·수리공장도 이 지역에 있다.

김정은은 이후에도 무인기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했다. 김정은이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무인 공격기 개발을 예고하면서 “무인 타격장비들과 정찰·탐지 수단들, 군사 정찰위성 설계를 완성했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방증하듯 북한은2023년 군사 퍼레이드 당시 ‘샛별-9형’과 ‘샛별-4형’의 무인 공격기를 공개했다.

김정은의 무인기에 대한 애착은 2024년에도 관측됐다. 지난해 8월 24일, 김정은은 국방과학원 무인기연구소가 새로 개발한 무인기의 타격시험을 참관하며 “전략정찰 및 다목적 공격형 무인기뿐만 아니라 각종 자폭형 무인기도 많이 개발·생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은 이처럼 무인기를 ‘생존형 비대칭 무기’로 여긴다.

우리 국군이 특히 주목해야 할 무인기는 북한의 ‘정찰 무인기’다. 제대로 된 정찰위성이 없는 북한 입장에선 정찰 무인기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 2월 20일, 북한 전문매체 〈NK뉴스〉는 북한 방현공군기지 격납고 외부에서 날개 길이 40m의 새로운 모델 무인기가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북한이 위성급 정찰 무인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한다. 만리경 1호(북한이 2023년 11월 쏘아올린 정찰위성)의 능력이 의심되는 가운데 드론이 주력 정찰 수단으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2023년 5월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 발사장에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을 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2023년 5월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 발사장에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을 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한·미, 北드론 탐지 능력 강화해야

시계를 돌려 2017년으로 거슬러 가자. 북한은 2017년 11월, 화성-15형 ICBM 발사 시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2022년 12월 19일에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최종단계 시험을 강행했다. 이후 서울, 인천 일대를 촬영한 저해상도 사진을 공개했다. 물론 북한은 위성 주파수 및 궤도 정보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사전 통보하는 국제질서도 지키지 않고 있다.

정리해보면 김정은의 목표는 명확해진다. 그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정찰위성에 활용하고 싶어 한다. 향후 정찰위성과 무인기 고도화에 성공할 경우, 정찰위성과 무인기를 결합하려 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은 기타 ‘정상 국가’들과 달리 정찰위성을 단순한 정찰·감시 기능이 아닌도발과 교란 목적으로 사용하려 한다.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가 대한민국 영공에 침입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목표는 전면전이 아닌, 이러한 국지적 교란이다. 북한의 정찰위성과 무인기 결합이 발산하는 확장성을 우리 군당국이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사건은 2015년, 일본에서 발생했다. 당시 방사성물질을 탑재한 민간용 소형 무인기가 일본 총리 관저에서 발견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비슷한 일을 자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리 국군에는 북한의 무인기 위협을 사전에 감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강화하라고 권하고 싶다. 북한의 무인기 이동을 신속히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북한 내 소규모 무인기 이동은 기존 한·미 전략자산으로 탐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무인기를 이용한 모든 도발에 대비하는 것만이 한반도 평화와 역내 평화를 지켜내는 첩경일 수 있다.

한진명 김일성종합대학 불어과 졸업. 북한 외무성 6국(아프리카·중동·라틴아메리카 담당국)과 7국(주체사상 대외선전국), 주베트남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2015년 1월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을 나와 공장 근로자로 생활하고 있다.

 
한진명 前 주베트남 북한 서기관 maisonnatale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