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동영 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가 2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특정 인물에 의해 사태 해결의 기회를 마련할 모든 논의가 가로막혀 있다.”
채동영(29)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홍보이사는 2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정갈등이 교착 상태인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채 전 이사가 비판한 '특정 인물'은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채 전 이사는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수련받던 중 사직한 젊은 의사다. 그는 기성 세대 의사들이 주축인 의협에 지난해 5월 임원으로 합류해 의정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했지만, 임현택 전 회장이 막말 논란 등으로 탄핵당하면서 함께 의협을 떠나야 했다.
뒤이어 지난 1월 출범한 현 의협 집행부는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을 부회장으로 품으며 사태 해결에 물꼬를 틀 거란 기대를 모았지만, 3개월 넘도록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택우(왼쪽)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전공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채 전 이사는 “박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도 모든 형태의 논의를 거부하면서 말도 안 되는 ‘7대 요구안’만 고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일대오’를 중시하는 전공의 집단에서 자신들의 대표를 향한 비판을 실명으로 내놓은 것은 채 전 이사가 처음이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의협 활동 등을 하며) 겪은 일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인터뷰에 나서게 됐다”며 “이제 의료계가 (강경파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욕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터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의대생들은 일단 학교에 등록을 마쳤는데, 전공의들은 어떤가.
“당장 복귀하겠다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지난 1년처럼 계속 가는 게 맞는지에 대한 걱정은 커지고 있다. ‘누워있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이전보다 확실히 많이 들린다.”
-그런 목소리가 왜 의협의 움직임에는 반영되지 않나.
“의협이나 대전협이 정부와 협상에 나서거나 투쟁의 방향을 바꾸려면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박 위원장은 이런 의견 수렴 과정을 전혀 거치고 있지 않다. 그는 1년 전 (당시 의협 집행부에서) 협상의 전권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거절했고, 전공의·의대생 단체와 소통하기 위한 협조 요청을 모두 거부했다. 자신이 의협 집행부에 있는 지금도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구성을 의료계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국회 측 제안을 거절하는 등 모든 형태의 논의 구조를 부정하고 있다. 특정 인물에 의해 의료계 내·외부 의사소통이 차단된 상태다.”
-전공의 ‘7대 요구안’ 중 무엇도 해결된 게 없는데 왜 정부와 대화해야 하냐는 시각도 있는데.
“반대로 정부는 ‘7대 요구안 대부분을 수용했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요구안이 구체적이지 않은 탓에 이런 인식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가령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라는 요구에 대해 정부는 대책을 마련했다고 주장하지만, 의료계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대책이 아닌 거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의협은 논의 테이블에 앉는 건 거부하고 있다. 두루뭉술한 요구안을 던져 놓고 디테일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정부가 마음대로 정책을 짜도록 방조한 것과 다름없다.”

전공의 '7대 요구안', 그 후 1년 상황은 그래픽 이미지.
-현실적으로 요구안을 어떻게 조정해야 한다고 보나.
“일단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요구는 법적으로 검토해 보면 정부가 결코 들어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요구다. 대신 업무개시명령 발동 요건 구체화를 요구해야 한다. 지금은 의료법상 보건복지부 장관이 원하면 언제든 발동할 수 있는데, 특정 상황에서만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밖에 진료비 지불제도, 전공의 수련제도, 비급여 관리 대책 등 불합리한 정책에 대한 세부적인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
-일단 대통령 탄핵 선고를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의료계가 대통령 탄핵 인용을 호재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는 착각이다. 이제까지는 교육부 장관 등 사태를 해결하려는 정부 인사가 있었지만, 탄핵 이후에는 진짜로 책임자가 없어질 수도 있다. 특히 내년도 의대 정원은 5~6월이 지나면 정부가 줄여주고 싶어도 조정이 불가능해진다. 그때까지 의대생이 수업을 거부하는 등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증원이 되면 2년이란 소중한 시간을 아무 소득 없이 날리게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의협이 정부와 협상에 나서야 한단 얘기인가.
“의협은 최근 브리핑에서 ‘의대생 개인의 선택을 존중한다’(김성근 대변인)고 말함으로써 사태를 풀어갈 주체가 되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이제는 해결 의지가 있는 누구든 목소리를 내고, 그런 목소리를 모아 요구를 정리해야 한다. 개별 전공의·의대생들은 목소리 내기를 두려워하는데, 그렇게 두려워만 하면 지난 1년처럼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의협이 아닌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지난 1년간 투쟁 과정에서 전공의·개원의·교수 등 의사 직역끼리도 분열됐는데, 뜻이 있다면 어떤 직역이든 모여 터놓고 논의하는 조직이나 구조가 꼭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배척하고 직역끼리 싸우는 건 진정한 단일대오가 아니다. 공개적으로 목소리 내는 사람을 찍어 누르는 의료계 분위기부터 없애야 한다.”
-지난해 의협 집행부도 사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현 집행부를 비판하냐는 지적도 나올 법한데.
“내가 비난받더라도 누군가는 이런 목소리를 낼 시점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의협에 있을 땐 의료계가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 사정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때 비겁하게 나서지 못했던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