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마비 맞을 뻔한 한국…독일은 후임 올때까지 일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파면 결정이 내려진 4일 대전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오전 대심판정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사건 선고 재판에서 재판관 8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 대통령 탄핵심판청구를 인용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파면 결정이 내려진 4일 대전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오전 대심판정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사건 선고 재판에서 재판관 8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 대통령 탄핵심판청구를 인용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은 재판관 공백 해결이라는 숙제를 남겼다. 재판관 9명이 정원인 헌법재판소가 심리정족수(7인)도 못 채운 6인으로 윤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접수해 우여곡절 끝에 8인 체제를 갖춰 파면 선고까지 내렸다. 하마터면 재판관 공백으로 대통령 직무정지 상황에서 아무 결정도 못 하는 헌정 마비 사태를 맞을 뻔한 것을 놓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갈등 속 ‘6인 체제’…그러다 넘어온 尹탄핵심판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진공동취재단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진공동취재단

재판관 공백은 지난해 10월 17일 국회 선출 몫인 이종석·이영진·김기영 전 재판관의 퇴임하면서 벌어졌다. 여야가 몫을 다투면서 후보자 추천을 못하면서 두 달의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국회가 조한창·정계선·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3명 놓고 최종 검토하던 중 12·3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 헌재에 접수됐다. 그제야 국회는 재판관 선출에 속도를 내고 12월 26일 선출안을 통과했지만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는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이튿날 한 총리가 탄핵소추되고 권한대행을 이어받은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같은 달 31일 3인 중 조한창·정계선 재판관을 임명하면서 헌재는 8인 체제를 갖춰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를 할 수 있었다.  

2014년 헌재 “국회는 후임자 선출 의무 부담” 명시

 

지난해 12월 23~24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와 정계선·조한창 재판관.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3~24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와 정계선·조한창 재판관. 연합뉴스

헌법재판관 장기 공석 사태는 처음이 아니다. 2011년 7월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이 퇴임한 뒤 여야 대립으로 1년 넘게 후임자를 정하지 못하면서 헌재는 14개월간 ‘8인 체제’로 운영됐다. 2017년 1월에는 대통령 추천 몫인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퇴임한 뒤 후임이 임명될 때까지 10개월간 8인으로 운영됐다. 

국회의 재판관 미임명이 헌재 판단을 받기도 했다. 2012년 1월 한 변호사가 “국회가 조대현 재판관 후임자를 선출하지 않아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에서다. 헌재는 그사이에 재판관이 선출됐다는 이유로 2014년 4월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각하 결정하면서도, 결정문에서 “국회는 공정한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을 위해 공석인 재판관의 후임자를 선출해야 할 헌법상 작위의무를 부담한다”고 명시했다.


헌재의 공백은 현재진행형이다. 한덕수·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3인의 후보자 중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보류했다. 야당은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마 후보자 임명을 강하게 요구하며 임명을 압박하기 위한 탄핵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헌재는 한 총리 탄핵사건을 기각 결정하면서도 재판관 3인 미임명은 위헌·위법하다고 짚었다.

독일은 직무계속제도, 오스트리아는 예비재판관 제도

 

지난 1월 14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들이 판결 선고를 진행하고 있다. EPA

지난 1월 14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들이 판결 선고를 진행하고 있다. EPA

재판관 공백 사태가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선 독일처럼 재판관 계속 근무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헌법재판관 공백 방지를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 등 보고서에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 4조가 재판관의 임기를 12년으로 정하면서 “재판관은 임기가 만료된 후에도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계속 수행한다”고 규정한다고 소개했다. 동시에 같은 법 7a조는 재판관 임기가 만료된 뒤 2개월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하지 못하면 헌법재판소가 직접 후보를 추천토록 했다. 1951년 연방정부와 의회의 정치적 대립으로 2년간 재판관을 선출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으로 신설한 제도다.  

예비재판관 제도를 두는 국가도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정부와 국회가 헌법재판소장·부소장을 포함해 14명의 재판관 외에도 6명의 예비재판관을 함께 임명한다. 재판관과 마찬가지로 법관, 행정공무원, 법학교수 출신이어야 한다. 예비재판관은 재판관 궐위 시에 바로 직을 이어받아 수행한다. 이밖에도 튀르키예·볼리비아 등이 예비재판관 제도를 뒀다. 예비재판관 제도는 임기만료뿐만 아니라 재판관의 사망·장기출장 등에도 대응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선거관리위원회 '채용비리 감사' 권한쟁의심판 공개변론에서 재판관 9석중 3석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선거관리위원회 '채용비리 감사' 권한쟁의심판 공개변론에서 재판관 9석중 3석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다만 이같은 제도 도입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2년 7월 이춘석 의원이 직무계속제도를 골자로 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냈지만 국회사무처는 “헌법에서 보장한 임기 규정(6년)에 위배되고 임기 제도의 취지에 반할 우려가 있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 이 법안은 당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한 전직 재판관은 “국회가 임명을 하지 않으면 헌재는 손을 쓸 수가 없다. 입법이나 개헌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국회 갈등이 점점 더 깊어지는 국면에서 헌재가 국회 사정에 마냥 휘둘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헌재 스스로도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직무대행 제도를 언급했다. 헌재는 지난해 10월 이진숙 위원장이 제기한 가처분 인용 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에서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하여야만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직무대행제도와 같은 제도적 보완 장치는 전무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