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원스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주요 장면을 시연하는 모습. 이 작품에서 배우들은 본 공연 시작전 '프리쇼'를 진행한다. 관객들은 직접 무대 위를 밟으며프리쇼 장면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연합뉴스
미동도 하지 않고 숨죽여 공연을 보는 것이 당연시된 소위 ‘시체 관극’ 문화에 반기를 든 뮤지컬 작품이 속속 관객을 찾고 있다. 관객과 무대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며 관객들이 보다 자연스럽게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시도다.
다음 달 31일까지 뮤지컬 ‘원스’의 공연이 이어지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티움에는 다른 뮤지컬 공연장에선 보기 어려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자신의 자리 대신 무대로 향하는 관객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원스’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관객들은 직접 무대 위를 밟을 수 있다. 무대 위에 설치된 바에서 음료도 살 수 있다. 본 공연 10분 전에는 배우들이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프리쇼’(Pre-show)를 연주한다. 프리쇼 이후에 관객들이 내려와 자리를 잡은 뒤 자연스럽게 본 공연으로 이어진다.
‘원스’의 협력연출가 코너 핸래티는 지난 2월 서울 양재동 신시컴퍼니 연습실 공개 자리에서 “프리쇼를 통해 본 공연 시작 전 관객이 무대 위 배우와 밀접한 관계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던 ‘떼창’ 장면이 뮤지컬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판소리 뮤지컬 ‘적벽’은 지난 2, 3일 ‘싱어롱(Sing-along) 데이’로 정해 배우와 관객이 뮤지컬 넘버 ‘도원결의’를 커튼콜 종료 후 함께 부를 수 있도록 했다. 20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리는 이 작품은 공연 중 관객이 추임새 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극장 측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추임새를 넣으며 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관람 팁 영상을 게재하기도 했다.

뮤지컬 '적벽' 장면. 다른 뮤지컬과 달리 '적벽' 관객들은 작품을 보며 추임새를 넣을 수 있다. 사진 국립정동극장
프리쇼나 커튼콜 이후가 아닌 본 공연 무대에서 관객이 보다 자유롭게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 시대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쉐도우 : 더 비기닝’은 지난달 22, 23일 열린 쇼케이스에서 다른 뮤지컬과 달리 객석 내 의자를 없앴다. 록 콘서트와 같이 ‘스탠딩 무대’ 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오픈런(open run·폐막일을 정하지 않고 무기한 상연) 형태로 열리고 있는 뮤지컬 ‘런던 레코드’의 경우 관객들이 공연을 보면서 자유롭게 촬영하고 음료수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관람 문화가 비교적 자유로운 무용과 같은 장르에서는 무대와 관객 간의 경계를 없앤 작품들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3년 이후 올해 6번째로 내한한 아르헨티나 무용단 ‘푸에르자 부르타’는 공연장 전체를 무대로 무용수와 관객이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이머시브형(관객 몰입형)’ 공연으로 유명하다. 올해는 6월 22일까지 신작 ‘아벤’을 공연한다.
최근 막을 내린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의 경우 관객이 직접 무대에 올라 무용수와 호흡을 맞추며 춤을 춘다. 공연에서 무대에 올랐던 한 관객은 “춤을 전혀 못 추는데, 무대에 오르니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게 되더라”라고 전했다.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 공연 장면. 관객이 무대에서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연극에선 관객의 참여에 따라 줄거리가 달라지는 작품도 있다. 대학로에서 오픈런으로 공연 중인 연극 ‘쉬어 매드니스’는 살인 사건의 범인을 관객의 추리를 통해 밝혀낸다. 배우와 관객 간 상호작용 결과에 따라 다른 결말이 맺어진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한국의 뮤지컬 등의 관람 문화는 해외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경직된 측면이 있다”라며 “혼자가 아닌 여러 관람객이 함께 즐기는 무대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공연이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한 시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