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조선업에 돈 쓰겠다"는데…업계 "정부가 일감 확보해줘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선업 재건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국내 조선업계에선 정부간 협상을 통해 일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 해군 발주 사업을 마냥 기다리다간 수익성이 더 좋은 상선 건조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0일 조선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미국의 해상 지배권을 복원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조선업에 많은 돈을 쓸 것”이라며 “미국은 예전에 하루에 1척의 배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1년에 1척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해양 산업 활성화를 위한 행동 계획 수립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미국 미시시피 잉걸스 조선소에서 선박이 건조되는 모습. 헌팅턴잉걸스가 운영하는 해당 조선소는 미국에서 가장 큰 수상함 건조 시설이다. 사진 헌팅턴잉걸스

미국 미시시피 잉걸스 조선소에서 선박이 건조되는 모습. 헌팅턴잉걸스가 운영하는 해당 조선소는 미국에서 가장 큰 수상함 건조 시설이다. 사진 헌팅턴잉걸스

백악관이 공개한 행정명령에는 국방물자생산법(DPA)을 통한 해양 산업 인프라 확대를 검토하라는 지시가 포함됐다. DPA는 대통령에게 안보 물품의 생산을 지시할 권한을 부여하고 재정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으로, 6.25 한국전쟁 당시 철강 생산을 늘리기 위해 제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였던 2020년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의료 물자 생산에 DPA를 발동한 바 있다. 이날 백악관은 “미국은 전 세계 선박의 0.2%를 건조하는 반면, 중국은 74%를 건조한다”라며 “경제 안보를 위해 미국 국기를 내걸고 무역을 하는 상선의 규모를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러브콜을 받는‘K조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첫 통화에서 조선업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미 해군 함정에 대한 유지·보수·정비(MRO) 사업과 신규 함정 건조 사업이 협력 대상으로 점쳐진다. 중국 선박에 대한 규제가 본격화하면 글로벌 선주들이 한국산 상선 발주를 늘릴 거라는 기대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행정명령에서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의 반경쟁 행위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한화오션이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유지·보수·정비(MRO)한 미 해군 7함대 소속 '윌리 쉬라호'가 정비를 마치고 경남 거제 한화오션 사업장을 출항하는 모습. 사진 한화오션

한화오션이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유지·보수·정비(MRO)한 미 해군 7함대 소속 '윌리 쉬라호'가 정비를 마치고 경남 거제 한화오션 사업장을 출항하는 모습. 사진 한화오션

하지만 조선업계는 정부 차원의 협상을 통해 최소한의 일감이 확보돼야 협력을 지속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처럼 미 해군이 1~2척의 MRO 물량을 경쟁 입찰 방식으로 발주하면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언제 수주할 수 있을지 모르는 200억~300억원 짜리 MRO 사업을 위해 2000억~3000억원짜리 상선을 건조할 수 있는 도크를 비워둬야 하는 상황”이라며 “수주 물량과 일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장기적인 협력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비역 해군 준장 출신인 신승민 부산대 선박해양플랜트기술연구원 초빙교수는 “최소 2~3년 치 일감을 (미국이)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보장이 있어야 국내 조선사가 협력을 이어갈 수 있다”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관련 주제를 함께 논의하는 등 정부간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