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석탄의 구세주? “2030년 AI 칩 전력 수요 최대 170배 증가”

미국에서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AP=연합뉴스

미국에서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AP=연합뉴스

인공지능(AI)이 사양길을 걷던 석탄 산업의 구세주 역할을 하고 있다. 전력 수요를 폭증시키면서 화석연료 시대가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 산업 부흥에 가장 적극적인 건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침체된 석탄 산업 확대를 위한 여러 행정 명령을 승인했다. 폐쇄될 예정이었던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계속해서 가동하도록 허용하고,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추진한 석탄 감축 정책을 중단하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AI 산업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면 석탄이 필수”라며 “가동 중단된 발전소는 다시 가동하거나, 철거 후 새로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석탄을 ‘중요 광물’로 지정하는 동시에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추가 가동하는 방안을 연구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탄소배출 주범으로 퇴출 추세…AI로 부활 명분 

석탄 발전은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꼽힌다. 또 이산화황 등 각종 대기오염 물질을 뿜어낸다. 이에 미국은 2000년대 이후 ‘석탄과 전쟁’을 벌이면서 석탄 발전의 비중을 빠르게 줄였다. 2010년에 45%였던 석탄 발전 비중은 2023년에는 16%로 3분의 1 가까이 줄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석탄 산업 활성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C(Coal) 제스처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석탄 산업 활성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C(Coal) 제스처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가 석탄 부활의 명분으로 내세운 건 AI다.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전력 소비 증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AI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AI 데이터센터를 구동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냉각 시스템에도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 에 따르면, 2021년 약 2600개였던 미국 내 데이터센터는 지난해 5300여 개로 늘었다.


화석연료로 AI 칩 생산 “2030년 최대 170배 증가”  

AI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탄소 감축 전략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I 구동에 필요한 반도체 칩을 제조하려면 많은 전기를 써야 하는데, 이 전기의 절반 이상이 석탄 등 화석연료로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 일본은 대표적인 AI 반도체 칩 생산 국가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10일 발표한 ‘AI 시대의 그림자’ 보고서에서 주요 AI 칩의 제조 과정에 들어간 전력 소비량을 분석했다. 그 결과, AI 칩 제조로 인한 전력 소비가 2023년 218GWh(기가와트시)에서 2024년 984GWh로 1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맥킨지의 '2030년 글로벌 로직 및 메모리 웨이퍼 수요와 공급'에서 예측한 세 가지 시나리오를 토대로 AI 관련 칩 제조에 소비되는 전력량을 추정했다. 그린피스 제

맥킨지의 '2030년 글로벌 로직 및 메모리 웨이퍼 수요와 공급'에서 예측한 세 가지 시나리오를 토대로 AI 관련 칩 제조에 소비되는 전력량을 추정했다. 그린피스 제

2030년에는 AI칩 제조를 위한 전력 수요가 최대 3만 7238GWh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는데, 이는 2023년 대비 170배 증가한 수치다. 아일랜드의 연간 총 전력 소비량(3만 581GWh) 이상의 전기가 AI 칩을 만드는 데 쓴다는 뜻이다. 

AI 칩은 고성능 그래픽 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핵심요소인데, 주요 AI 칩 제조사에 공급되는 GPU와 HBM의 98% 이상(2023년)을 동아시아에서 생산한다. 그린피스 동아시아 공급망 프로젝트 책임자 카트린 우는 “AI 칩 제조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화석연료를 이용한 신규 발전 용량 증대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신규 원전과 LNG 발전소를 건설해 AI 산업 활성화에 따른 전력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양연호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LNG는 탄소 배출이 많은 에너지원으로 탄소중립의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반도체 제조 시설에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