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이를 찾습니다"...국립창극단 '심청' 오디션 현장 가 보니

"후원에 단을 묻고, 북두칠성 자야반에 촛불을 켜고 정화수를 바쳐 놓고 두 손 합장 무릎을 꿇고, 비나니다. 비나니다. 하나님전에 비나이다."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심청' 공개오디션에서 참가자가 즉흥무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심청' 공개오디션에서 참가자가 즉흥무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1번 참가자가 판소리 '심청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장내가 일순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이날 오디션 지정곡인 '후원 기도' 대목은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를 위해 제사를 올리며 시작된다.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심청이 하늘에 공양미를 내려달라며 소원을 비는 대목이다.

약 3분 간의 후원 기도 대목을 마친 참가자는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 직전의 심청을 연기했다. 뱃사람들이 제물 심청을 앞세워 북을 치는 이 대목에서 심청은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울린다며 장단을 탄다. 심청의 소리와 고수의 북장단만으로 채운 무대였지만 "심낭자 물에 들라" 재촉하는 뱃사람들의 외침이 눈에 그려졌다. 두 번째 오디션 지정곡 '심청 물에 빠지는 대목'이다.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심청' 공개오디션에서 참가자가 '심청가'의 한 대목을 부르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심청' 공개오디션에서 참가자가 '심청가'의 한 대목을 부르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10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는 국립창극단 신작 창극 '심청'의 주인공을 뽑는 공개 오디션이 열렸다. 1차 심사를 거친 뒤 이날 최종심에 올라온 심청 후보는 총 6인. 후원 기도 대목과 심청이 물에 빠지는 대목을 연달아 부른 참가자들은 이어 고수의 굿거리 자진모리 장단에 맞춘 즉흥무를 2분 가량 선보인 뒤 퇴장했다. 이어 노인이 된 심청 역에 지원한 4인과 심봉사 역에 지원한 1인이 차례로 무대 위에 올랐다. 심사위원은 요나 김 연출과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최우정 작곡가, 왕기석 명창이 맡았다. 

오는 8월 13일과 14일 전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거쳐 9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되는 창극 '심청'은 국립극장과 전주세계소리축제위원회가 공동 제작하는 작품. 국립창극단 전 단원을 포함해 총 130여 명이 출연하는 대작으로 극본과 연출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연출가 요나 김이 맡았다. 2017년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가 선정하는 '올해의 연출가'로 이름을 올리고 2020년 독일의 권위 있는 예술상인 파우스트상 후보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해온 그에게도 창극은 새로운 도전이다.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심청' 제작발표회에서 요나 김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심청' 제작발표회에서 요나 김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이날 공개 오디션에 앞서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요나김은 "판소리 '심청가'뿐 아니라, 유사한 한국의 설화와 어린이용 동화까지 폭넓게 읽으며 극본을 구상했다"며 "심청이라는 인물은 매우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존재"라고 했다. "그리스 신화에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안티고네, 엘렉트라 같은 인물이 있다. 이번 작품은 겉으로는 심청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다"면서다. 

국립창극단은 앞서 2018년(초연)과 2019년(재연) 창극 '심청가'를 무대에 올렸다. 당시 한국 연극계의 대부 손진책이 극본과 연출을, 안숙선 명창이 작창을 맡아 화제가 됐다. 

'효' 사상을 강조하는 2018년 버전 '심청가'와 달리 이번 작품은 유교적 가치관에 저항하는 인물로 심청을 재해석했다. 기존처럼 효녀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재로 심청을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어쩌면 심청은 모든 약자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심봉사 역시 한 명의 개인이 아닌 가부장제 그 자체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단순한 부녀 관계를 넘어선, 훨씬 더 큰 스케일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요나 김)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심청' 오디션에서 요나 김 연출(왼쪽)과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심청' 오디션에서 요나 김 연출(왼쪽)과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그는 이어 "특정한 시대나 장소로 이 이야기를 한정짓고 싶지 않다"고 했다. "판소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국적이나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2시간 동안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의 바다에 푹 빠졌다가 자기만의 생각을 하나쯤 품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다. 

등장 인물들의 의상을 한복으로 제한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요나 김은 "의상 콘셉트는 특정한 장소나 시대를 규정하지 않는다"며 "의상 역시 유니버설한 감각을 추구했다"고 부연했다. 

판소리는 심청가 유파 중 동초제와 강산제를 가져다 썼다. "가사는 그대로 가져가되 그사이 공간에 재해석을 덧붙이는 식"으로 극본을 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새로운 '심청'의 음악은 창극 '보허자', '리어' 등에서 음악감독으로 활약한 한승석과 실험적인 현대음악을 포함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 온 작곡가 최우정이 함께 제작한다.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 요나 김과 협업해 무대 디자이너 헤르베르트 무라우어, 의상 디자이너 팔크 바우어 등 독일의 창작진이 힘을 합쳤다. 

이번 오디션에서는 주인공인 심청과 노인 심청, 심봉사 역할의 배우를 뽑는다. 각 배역은 더블 캐스트로 구성돼 선발된 일반 배우들과 국립창극단 단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