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찬반 집회가 각각 열린 모습. 뉴스1
정치 성향에 따라 청년들의 출산 의지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의 ‘정치적 사건에 따른 혼인·출산 의향’ 설문조사(20·30대 미혼자 1794명 대상)에 따르면 향후 출산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청년은 전체의 31.2%에 불과했다. ‘없다’는 청년이 39.2%로 가장 많았고, 아직 확실하지 않다(‘보통이다’)는 청년은 29.6%였다. 결혼 의향의 경우 ‘있다’는 청년이 38.9%로 많았는데, 출산 의향은 이에 못미쳤다.
연구진은 청년이 스스로 생각하는 정치적 성향을 묻고, 그에 따라 결혼·출산 의향을 분류했다. 설문에 참여한 청년 중 자신이 진보적 성향이라고 답한 사람은 24.1%, 중도 47.9%, 보수 16.5%, 정치 무관심층 11.4%였다.
진보 성향 청년 중에는 출산 의향이 있는 사람이 29.7%에 그쳤는데, 보수 성향 청년은 42.8%가 출산 의향이 있다고 응답해 13.1%포인트의 격차가 있었다. 결혼의 경우 보수 청년 50.8%가 의향이 있다고 했는데, 진보 청년 중에선 38.9%만이 하겠다고 응답했다. 중도 청년은 대체로 진보 청년과 비슷한 응답 비율을 나타냈다.
이런 차이는 사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고우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연구교수는 “진보 청년은 정부의 제도적 지원 등을 통해 사회구조적 문제가 얼마나 개선될지를 중시해 결혼·출산 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보수 청년은 정책 지원보다는 개인적인 환경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개선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녀 청년의 정치 성향이 갈라진 점은 향후 결혼·출산의 ‘미스매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이번 조사에서 여성은 진보 성향의 비율이 26.5%로 보수(12.2%)보다 2배 이상 높았는데, 남성은 보수 비율이 23.1%로 진보(20.6%)보다 높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한국의 극단적 상황은 젊은 남녀가 (정치적으로) 갈라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다른 나라에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며 “한국 사회는 둘로 갈라져 혼인율과 출산율이 급락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최근의 정치적 혼란은 향후 결혼·출산 계획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 청년이 많았다. ‘탄핵 심판 후 미래 사회는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본 청년은 52.2%였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직후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한 명선(여·32)씨는 “이번 탄핵 정국으로 정치적 혼란을 다시 목격하니, 아이 생각을 하기에는 어려운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또래 남성과 나의 결혼·출산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경우를 자주 본다”며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 청년은 ‘내가 원하는 삶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는 문항에는 45.4%가 ‘그렇다’고 답했다. 김민섭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연구원(보건복지부 2030자문단 보건의료분과장)은 “정치 성향을 떠나 청년이 얼마나 ‘미래 주도력’을 느끼는지에 따라 결혼·출산이 높아질 수 있다”며 “청년이 미래 주도력을 느낄 수 있도록 정치권에선 청년 세대가 저출산 정책 등에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버넌스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