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 '민감국가' 지정 결국 15일 발효…배경 여전히 모른다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미국 에너지부의 조치가 오는 15일 발효된다. 한·미 양국은 과학기술 협력에 제한이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여전히 지정 배경이 불분명한 데다 이전에 없던 절차적 제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 교류 협력에 차질이 없도록 후속 관리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최근 공개된 1993년 미국 에너지부 내부규정 문서. 정부가 30년 전 한국이 미국 에너지부(DOE)의 민감국가 명단에 올랐을 당시 이 문제가 "한·미 협력에 장애요인"이라고 판단하고 해제를 위해 고심했던 정황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외교부

최근 공개된 1993년 미국 에너지부 내부규정 문서. 정부가 30년 전 한국이 미국 에너지부(DOE)의 민감국가 명단에 올랐을 당시 이 문제가 "한·미 협력에 장애요인"이라고 판단하고 해제를 위해 고심했던 정황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외교부

각급서 협의했지만 해제 실패 

14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0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방미를 포함해 각급에서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위해 협의했지만, 결국 발효 시점 전 해제에는 실패했다. 앞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감국가에 등재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과학기술 협력에 새로운 제한은 부재하다는 것이 에너지부 설명"이라며 "에너지부를 포함해 국무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등으로부터 한·미 협력과 파트너십은 굳건하다는 일관된 메시지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부와 연구개발 등 과학기술 교류 과정에서 더 까다롭고 엄격한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국 출신 연구자가 미국 연구소를 방문하려면 최소 45일 전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별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미국 에너지부 직원이나 소속 연구자가 한국을 방문하거나 접촉할 때도 추가 보안 절차가 필요하다. 정부의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첨단 분야에서 한·미 간 협력에 차질이 생길 거란 우려가 여전한 이유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미국 출국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 장관은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국 상무부, 에너지부 장관 등을 만나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 문제와 통상 정책 등에 대해 논의했다. 뉴스1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미국 출국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 장관은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국 상무부, 에너지부 장관 등을 만나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 문제와 통상 정책 등에 대해 논의했다. 뉴스1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배경이 여전히 불투명하단 점도 문제다. 정부는 정치나 외교 문제가 아니라 연구 보안과 관련된 기술적 이유로 보고 있지만 미국은 아직도 지정의 근거가 된 구체적인 사례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간 거론된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 직원의 유출 사고 등도 "하나의 예시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사건 하나 때문은 아니다"(조태열 장관, 지난달 24일)라고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원인 여전히 미궁…실제 차질 우려

미국 에너지부는 "신흥 과학기술 부상으로 기술 지형이 변화하는 데 따라 기술 보안을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강화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조치"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조셉 윤 주한 미국 대사 대리도 지난달 18일 민감정보를 잘못 취급한 사례가 있었다고 시사하면서도 "큰일(big deal)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태열 외교부장관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미국 에너지부 민감국가 지정 관련 긴급 현안보고에 출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스1

조태열 외교부장관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미국 에너지부 민감국가 지정 관련 긴급 현안보고에 출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이런 미국의 모호한 설명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에서 시정 조치가 필요한지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근거 없는 추측이 난무하면서 국내적 논란만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내 일각에선 여전히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관련 지식재산권 분쟁이나 국내 핵무장론이 민감국가 지정으로 이어졌다는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핵심 동맹인 한국이 중국, 러시아, 시리아, 북한, 이란 등이 이름을 올린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된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의 경우 비확산과 테러 방지에 중점을 둔 1·2등급이 아니라 민감국가 중 가장 낮은 범주인 3등급(기타 지정국가)에 해당한다는 정부의 해명도 우려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실제로 과학기술 교류 협력에 차질이 발생하면 민감국가 논란은 언제든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단기간 내 지정 해제도 쉽지 않을 수 있다. 과거 1981년 민감국가 제도가 처음 시행됐을 당시 미국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 이를 뒤늦게 인지한 한국이 1993년 12월 해제 요청을 했지만, 실제 해제까지는 7개월이 걸렸다. 이와 관련,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14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실무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에너지부 내부 절차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