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리 매킬로이. 로이터=연합뉴스
그의 이름은 로리 매킬로이였다. 그래서 아일랜드를 여행할 때 벨파스트 교외에 있는 그의 홈 클럽에도 찾아갔다. 허름한 홀리우드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걸린 매킬로이의 어릴 때 사진은 너무나 순박했다.
그의 어릴적 동영상도 인상적이다. 주근깨투성이 아홉 살 소년이 칩샷으로 드럼형 세탁기의 동그란 구멍에 볼을 넣는 영상이었다. 아이는 매우 긴장한 것처럼 보였고 실력으로 봐서는 별로 어렵지 않은 미션을 네 번 만에 성공했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소년이었다.
타이거 우즈는 두 살 때 TV에 나왔다. 조그만 캐디백을 메고 신나게 걸어 나온 꼬마는 드라이버로 호쾌하게 티샷을 했다.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화려한 조명과 방청객들의 눈길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했다.
위대한 선수들은 아슬아슬한 벼랑 끝 승부를 즐긴다. 마이클 조던은 쉬운 슛을 놓칠 때도 있지만 챔피언 결정전 1점 차 시소 승부에서 던진 결승 슛을 거의 실수하지 않았다. 우즈도 답답하게 경기하다가도 승부가 걸린 중요한 순간, 꼭 넣어야 하는 퍼트는 반드시 넣었다.
매킬로이의 스윙은 훌륭하지만 가장 중요할 때 실수하는 선수였다. 매킬로이가 프로가 된 후 한국에서 경기할 때 호텔방에서 외로워 엉엉 울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기자가 마스터스에 처음 간 2011년, 마침 매킬로이가 우승 기회를 잡았다. 최종라운드를 최경주 등 공동 2위 그룹에 4타 차 선두로 시작했다. 그러나 10번 홀부터 트리플 보기, 보기, 더블보기를 하면서 무너졌다. 아멘코너 한 가운데인 12번 홀 그린에 쭈그려 앉아 난감해 하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승을 확정짓는 퍼트를 넣은 후 로리 매킬로이. AFP=연합뉴스
그는 지난 50년간 마스터스와 디 오픈 우승자를 다 외운다. 지식도 많고 사려 깊고 위트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약한 인간의 마음을 솔직히 얘기해 준다는 거였다. 매킬로이는 골프를 넘어 인간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매킬로이는 2014년까지 마스터스를 제외한 3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다. 마스터스만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엔 실력 발휘를 못했다. 마스터스에서 가장 움츠려 들었다. 그랜드슬램에 대한 부담을 짊어지고 경기했을 것이다.
2018년 패트릭 리드와 챔피언조에서 경기할 때도 가슴이 아렸다. 리드는 부정행위 전과가 있고 골프장에서 부모님을 쫓아내는 등 논란이 많은 선수였다. 관중들은 다들 착한 사람 매킬로이를 응원했다.
그러나 2번 홀에서 1미터 남짓한 이글 퍼트를 넣지 못한 후 샷을 제대로 못했다. 반면 리드는 적대적인 분위기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부정적인 힘을 자신이 유리하게 이용하는 듯도 했다.
‘착한 사람은 꼴찌’라는 미국 격언이 연상됐다. 매킬로이는 못된 사람에게 번번이 당하는 평범한 우리 주위 소시민 같은 선수였다.
매킬로이가 14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끝난 마스터스에서 연장 끝에 우승했다. 결국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본능적으로 상처 받을까 두려워 가끔 주저한다. 그러나 막상 겪고 나면 생각했던 만큼 아프지 않았다”고 했다. 왜 아프지 않겠는가. 재미교포 선수 마이클 김은 “매킬로이는 셰익스피어”라고 했다. 골프라는 무대에서 슬픈 비극을 쓰는 작가다.
그러나 계속 다시 일어나 도전해 결국 이겼다. 골프에서 여섯 명뿐인 그랜드슬래머가 되면서 골프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 이름을 남겼다. 그가 쓴 건 비극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낸 인간 구원의 대작 드라마가 됐다.
매킬로이는 우승 후 인터뷰룸에 들어오자 마자 “여러분, 먼저 나에게 할 말이 있다. (우승했으니) 내년에는 여기서 무슨 얘기를 할 거냐”고 했다. 마스터스 때마다 “올해는 될 것 같냐”, “어떻게 준비했냐”라는 질문에 끝없이 답변해야 했던 그가 기자들에게 던진 농담이다. 기자들이 매킬로이가 잘 되기를 바라고 한 것들이지만 그에게는 압박감을 줬을 거다. 그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게 해준 매킬로이에게 감사한다.
오거스타=성호준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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