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희(朱熹). 바이두
북송(北宋)의 역사가 겸 정치가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은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조부와 부친 모두 진사(進士)였다. 사마광도 19세에 진사에 합격하고 일찍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중년까지 관료로 활동하던 기간은 북송 제4대 인종(仁宗) 통치기였다. 인종 시대에 송나라는 번영을 누렸다.

사마광(司馬光). 바이두
인종 통치기에 범중엄(范仲淹)에 의해 시도됐다가 채 7년도 넘기지 못하고 기득권층의 반발로 좌초했던 개혁을 19세 나이에 즉위한 제6대 신종(神宗)과 왕안석(王安石)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다. 사마광은 신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던 왕안석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입장에 섰다. 왕안석이 추진하는 '신법(新法)'에 반대하던 기득권 세력이 사마광 주위로 모여들었다.

왕안석(王安石). 바이두
사마광은 묵묵히 훗날 '자치통감'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역사서 편집을 총지휘했다. 사실 사마광도 북송 사회의 총체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상황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젊은 신종과 패기만만한 왕안석의 ‘신법’에 그도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방 정부의 허위 보고 등 개혁의 부작용을 직접 목도한 후, '신법'에 적극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선다.
정치가 사마광과 정치가 왕안석은 숙명의 라이벌처럼 불편한 관계였지만, 2살 차이인 둘의 인간적 유대는 매우 두터웠다. 사적으로 주고받은 편지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충만해 꽤 놀랍다. 신종, 왕안석, 사마광은 비슷한 시기에 생을 마감했다.

자치통감. 바이두
파옹구우. 이 일화의 주인공이 바로 어린 시절의 사마광이다. 하루는 가산(假山)에서 친구들과 놀던 사마광이 친구들의 다급한 고함 소리를 들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익사 사고 직전이었다. 가산 위에서 놀던 한 친구가 추락해 커다란 항아리에 빠진 상황이었다. 그 항아리에 물이 가득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마광은 잠시 생각하더니 침착하게 주변에서 돌멩이 하나를 찾았다. 그러고는 돌멩이로 항아리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신속하고 과감했다. 그의 기지와 민첩한 대처 덕분에 친구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다. '물이 찰랑거리는 커다란 항아리에 한 아이가 빠져 허우적댄다. 이 아이를 살릴 최선의 방법은 뭘까?' 이 질문에 인공지능이 과연 '파옹구우' 수준 이상의 참신한 대답을 바로 내놓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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