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중국을 향해 “145%의 관세는 농담이 아니다”라며 재차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결사항전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중국을 설득하기에 앞서 한국을 비롯해 영국, 일본, 호주, 인도 등 협상이 용이한 5개 우방국들과의 협상을 먼저 종료할 계획이다. 한국과의 협상도 당장 다음주부터 진행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곧 ‘물러날 정부’가 관세 협상의 주체로 나서게 된다는 뜻이다.

베센트 장관은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대중 관세율 145%를 언급하며 “이것은 매우 큰 숫자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농담을 한 것이 아니다”며 “아무도 이것이 지속 가능하다거나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센트 장관은 이어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있을 수 있지만 반드시 있을 필요는 없다”며 “중국과 언젠가는 큰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전쟁'에 맞대응하고 있지만, 결국 관세 압박에 못 이겨 협상 테이블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미다.

미국은 지금까지 중국에 누적 관세율 145%를 부과했고, 중국은 125%의 관세로 맞대응한 상태다. 이미 “무역이 가능한 관세 수준을 넘어섰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지만, 양국은 언제라도 상대의 보복에 대한 추가 보복 관세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베센트 장관의 이날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압력의 의미가 강하다. 동시에 중국에 가한 관세로 인해 중국에 제조업 분야를 의존하고 있는 미국 경제가 오히려 타격을 받으면서 중국을 향해 조속한 협상을 요청하는 의미가 담겼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강조해온 대중 관세 무관용 원칙을 지속적으로 허물고 있다. 지난 9일엔 주요 무역 흑자국에 대한 각국별 상호관세 부과 13시간만에 90일간 관세 부과를 유예했고, 11일엔 스마트폰 등에는 일시적으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상호관세 유예는 중국의 미국 국채 투매에 따른 투항이었고, 스마트폰 관세 제외 조치는 중국에 87%의 생산시설을 둔 애플에 대한 배려라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은 “자동차 업체 일부를 돕기 위한 무언가를 검토하고 있다”며 자동차 부품에도 당분간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뜻을 밝혔다. “미 자동차 회사들이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생산되던 부품을 미국에서 만들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자신이 부과한 관세 때문에 캐나다와 멕시코에 생산 기반을 갖춘 포드·제너럴모터스(GM)·스텔란티스 등 미 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상황을 막기 위한 후퇴에 가깝다.

미 상무부는 이날 스마트폰을 비롯한 반도체와 의약품 등에 안보 차원에서 필요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앞서 25%의 관세 부과가 시작된 철강과 자동차와 같은 방식의 관세를 적용할지 검토하기 위한 조치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날 관련 조사가 “아마 한두 달 내로 나올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절차상 상무부의 조사 기간은 270일이고, 대통령의 이행 결정 기간은 별도로 90일이 있다. 경우에 따라 관세 부과 여부가 1년 뒤에 결정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베센트 장관은 “중국은 우리의 최대 경제 경쟁국이자 군사적 라이벌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협상은 다른 나라들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협상은 결국 시 주석을 설득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톱다운’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 말로 풀이된다.

베센트 장관은 다만 중국 등 외국 정부가 미 국채를 투매하면서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는 관측에 대해 “외국 정부가 배후라는 증거는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달러는 여전히 글로벌 준비 통화이고, 만약 필요하다면 미국이 쓸 수 있는 수단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채 금리의 상승은 미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는 의미인 동시에 달러화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의미한다.

중국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과는 달리 우선 협상 대상자로 지정된 한국 등 우방에는 “먼저 움직이는 사람에게 이점이 있을 것이고, 보통 가장 먼저 협상을 타결하는 사람이 최고의 합의를 하게 된다”며 조속한 합의를 종용했다.

방식에 대해선 “실제 무역(협정) 문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는 원칙적인 합의를 할 것이고 거기서부터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당신들의 최선의 제안’을 가지고 오면, 뭘 들고 왔는지를 보고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이날 CNBC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이후 10개 이상의 국가가 미국에 놀라운 무역 거래를 제안해왔다”며 우방들과의 협상이 최대한 짧은 기간 안에 미국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특히 한국은 6월 3일 조기대선 이후 차기 정부로의 교체를 앞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정부가 중대한 관세 협상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최근 미국을 방문해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면담한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5일 특파원 간담회에서 “일단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는 현재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한덕수 권한대행도 미국과의 협상에 대해 여러 지침을 줬고, 그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