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에 잠든 최고령 해녀 “폭싹 속았수다”…내륙에 해녀 추모비

내륙 도시인 충북 제천에 제주 출신 해녀인 고 김화순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제천 지적박물관은 타향살이 끝에 2020년 제천에서 세상을 떠난 김화순(당시 99세) 할머니를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다고 15일 밝혔다. 추모비는 김 할머니가 잠든 개나리추모공원 묘 옆에 1.7m 높이로 제작됐다. 비석에는 “삶의 터전으로 울릉도·독도 바다를 일군 제주 출향 해녀 제천에 잠들다”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의로운 정신 기리자” 김화순 해녀 추모비

고 김화순 해녀는 2020년 제천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진 지적박물관

고 김화순 해녀는 2020년 제천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진 지적박물관

이범관 지적박물관장은 “섬과 바다만으로 둘러싸인 제주에서 태어나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청풍호에 영원히 잠든 김화순 해녀를 기억하기 위해 추모비를 세웠다”며 “김씨는 일본의 제주 연안 침탈 과정과 출향 해녀의 삶을 조명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1921년 제주 한림읍 귀덕리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생전 우리나라 최고령 해녀로 이름을 알렸다. 일제강점기인 16세에 물질을 시작해 24세 때 제주를 떠났다. 이 관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잠수부들이 제주 바다를 훑다시피 해버리는 바람에 해녀들의 어업활동이 크게 위축됐다”며 “김 할머니는 제주를 떠나 전북 군산과 부산, 강원 속초를 거치며 유랑 해녀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속초에 거주할 당시 “울릉도에 해산물이 많이 잡힌다”는 말을 듣고 1974년 남편과 함께 울릉도로 이주해 울릉도 연안과 독도를 오가며 해녀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1982년 11월 실종된 독도 경비대원 2명을 인양하는 데도 기여했다. 당시 독도 경비에 나선 독도경비대 주재원 경위와 권오광 수경이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실종된 상태였다. 이 소식을 들은 김 할머니는 “나를 독도에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독도 데려가 달라” 실종 대원 찾아

고 김화순 해녀 추모비. 사진 지적박물관

고 김화순 해녀 추모비. 사진 지적박물관

이범관 관장은 “김씨는 ‘내가 독도에서 물질을 많이 해봐서 물 흐름이나, 바닥 지형을 잘 안다’면서 동료 해녀 3~4명과 함께 수색을 자청해 실종 대원을 찾았다”며 “김씨의 용기 있는 행동은 의병의 고장인 제천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90세인 2011년까지 울릉도 인근에서 해녀의 삶을 살며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해 건강이 나빠지면서 물질을 그만뒀다고 한다. 약 74년간 물질을 한 최고령·최장수 해녀로 기록됐다.

이 관장은 “김씨가 맹장염 수술을 한 뒤 ‘이제 깊은 물 속에 들어가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의사 조언을 듣고, 해녀 생활을 접은 것으로 안다”며 “2016년엔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큰아들이 사는 제천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4년 동안 제천에 거주하다 2020년 10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9년 설립한 지적박물관은 독도·대마도·연해주·간도 등 고토 연구를 위한 자료를 수집·전시를 하는 기관이다. 김화순 할머니 추모비 건립을 계기로 해녀와 독도를 주제로 한 기념사업을 진행한다. 제천학연구원과 함께 ‘김화순 해녀를 통한 청풍호 개발 방향’에 대한 세미나와 간담회를 연다. 제천 대표 관광지인 청풍호에 독도 모형 설치, 김화순 해녀 등대, 김화순 해녀 기념관, 독도영토 전시관 건립 등 사업을 제안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