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5월 금리인하 불가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발 관세전쟁 여파에 한국 경제가 저성장 터널에 갇혔다. 한국은행마저 올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예고했다. 1분기 수치가 연간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1%대 초반 성장률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암울한 전망이다. 

17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2.75%로 유지하기로 했다. 물가나 경기 상황만 보면 금리를 인하하는 게 맞다. 하지만 최근 달러당 원화가치가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등 변동성이 커진 데다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일시 해제 여파에 따른 가계대출 흐름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게 주된 동결 배경이다. 이번 결정은 이창용 한은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찬성했다. 신성환 금통위원은 0.25%포인트 인하해 경기 둔화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한은은 대내외 불확실성과 환율 불안이 다소 완화하면 오는 5월 추가 인하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수출ㆍ내수 동반 약세에 저성장 고착화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은은 5월 수정 경제전망 발표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중간 평가 성격의 경제 진단을 내놨다. 한은은 이날 경제상황 평가 보고서에서 “1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은 2월 전망치인 0.2%를 밑돈 것으로 추정되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로는 12ㆍ3 비상계엄 이후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예상보다 장기화했고, 미 관세정책에 대한 우려로 경제 심리 회복이 지연됐다는 점을 들었다. 여기에 3월 대형 산불, 일부 건설 현장의 공사 중단, 고성능 반도체(HBM) 수요 이연 등 일시적 요인도 경기 하방 위험을 키웠다.  

문제는 1분기 성장률이 다른 분기보다 연간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일시적 침체 후 2분기에 반등할 가능성도 현재로선 크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은은 미 관세정책 등 영향으로 상품수지가 축소되고, 상품교역 감소로 운송수지 흑자가 줄면서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2월 전망치인 750억 달러를 하회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2월 전망은 너무 낙관적이었다”고 고백하면서 “1분기 성장 부진을 고려하면 올해 성장률도 지난 2월 전망치인 1.5%를 하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은 관계자는 “1분기 성장률이 -0.1%이고, 올해 내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성장률 전망치도 0.3%포인트 하향 조정한 1.2%에 그칠 수 있다”면서도 “관세 정책의 영향 등 불확실성이 매우 커서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부연했다.    

주요 전망 기관도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낮추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주요 40여 개 투자은행(IB) 등 시장 참가자들의 전망치 중윗값은 1.4%, 하위 25% 값은 1.1%로 기존 전망보다 하향 조정하는 추세다. 1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주요 예측기관의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지난 2월 2.9%에서 최근 2.8%로 낮아졌다. 이 총재는 “다음 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할 한국 성장률 전망치도 상당 폭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경기 하강 신호가 뚜렷한데도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건 여전히 경기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데다 환율 변동성도 심화하는 추세라서다. 이 총재는 “미 관세정책 변화 이후 한국 경제가 어두운 터널로 확 들어온 느낌”이라며 “(금리 인하) 스피드를 조정하면서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주부터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본격화하는 만큼 이를 지켜본 후 대응하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물가 재상승 우려에 미국의 금리 인하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점도 한은이 금리 인하 결정을 내리는 데 걸림돌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16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이코노믹 클럽에서 한 연설에서 “관세는 최소한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증가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물가 안정을 위한 금리 동결, 고용 확대를 위한 금리 인하 중 당분간 전자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ㆍ미 기준금리 격차는 현재 최대 1.75%포인트로, 더 벌어질 경우 외국인 자금 유출이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다만 5월에는 대폭 하향된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으면서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을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금통위원 6명 모두 향후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선 금리 인하 시그널을 주는 것만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며 “환율 변동성이 완화한다면 1400원대의 다소 높은 수준이 유지되더라도 감내하면서 금리 인하로 경기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올해 한은의 금리 인하 횟수가 예상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미국의 금리 인하가 늦어지면서 올해 2회 인하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젠 지난 2월을 포함한 연내 3회 이상 인하 전망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