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국방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평양에 침투한 무인기의 잔해를 분석한 결과 한국 국군의 날 기념행사 때 차량에 탑재됐던 무인기와 동일한 기종이라고 밝혔다. 노동신문=뉴스1
17일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1일 ICAO 이사회에서 북한이 제기한 주장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사회는 총의로 동 건(평양 무인기 침투 주장) 관련 어떤 조치도 필요하지 않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ICAO가 정확한 기각 이유를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민간의 항공 안전 등을 다루는 기구라는 ICAO의 성격상 해당 안건을 다루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ICAO는 각종 항공 분쟁에 관여해 회원국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유엔 전문 기구로 한국과 북한 모두 ICAO의 회원국이다.
기각 결정은 해당 사안이 사실상 종결됐다는 의미로 북한이 재심의를 요청하거나 추가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 또 북측은 이번 이사회에 참석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한국이 평양에 무인기를 보내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며 무인기 사진과 항적을 공개했던 북한은 올해 초 ICAO에 이를 안건으로 다뤄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첫 문제 제기 이후 3개월여나 지나 국제기구에 이 사안을 넘긴 것을 두고 북한이 한국의 계엄·탄핵 국면을 노려 사안을 정치화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대한민국발 무인기에 의한 엄중한 주권 침해 도발 사건의 최종조사 결과를 발표"한다며 남한에서 보낸 무인기가 백령도에서 출발해 평양에 도착했다는 '비행 기록'을 공개했다. 북한은 평양 인근에서 발견한 무인기의 잔해를 통해 이같은 기록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노동신문=뉴스1
이에 지난 2월 외교부는 "정부는 북한이 명확한 근거 제시 없이 ICAO를 정치화하는 데 반대한다"며 "나아가 북한은 국제 규범을 위반한 채 우리와 국제사회 민간 항공 안전에 심대한 위협을 자행하는 위성항법장치(GPS) 교란부터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북한의 주장에 맞서 'GPS 교란'으로 역공에 나선 셈이다.
실제 ICAO는 지난해 6월 북한의 GPS 교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그동안 ICAO는 북한의 GPS 교란은 물론 거듭된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2017년, 2022년, 2023년 등 수차례에 걸쳐 규탄 성명을 냈다.
ICAO가 북한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평양 무인기 사건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키려던 북한의 시도는 결국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ICAO의 기각 결정으로 북한의 주장에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한국의 대응 논리에도 힘이 실릴 여지도 생겼다. 군은 이와 관련해 시종일관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앞서 2022년 12월 북한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켰을 때 한국 정부도 ICAO에 안건 상정을 검토했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진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