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복 "중앙정부 흔들릴 때 지방정부가 민생, 경제 챙겼다" [월간중앙]

[특별 인터뷰] ‘탄핵 정국의 국정 안정판’ 시도지사협의회 유정복 회장
 
“대한민국은 ‘부처 보조금 공화국’, 통합 보조금 체제로 전면 개편해야”
“저출생 정책 등 중앙 부처 과당 경쟁이 국가 자원 배분 비효율 초래”

유정복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은 4월 8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국정 난맥상이 노출되더라도 지방정부가 굳건히 민생을 챙기면 사회는 안정된다”고 자신했다. 최영재 기자

유정복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은 4월 8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국정 난맥상이 노출되더라도 지방정부가 굳건히 민생을 챙기면 사회는 안정된다”고 자신했다. 최영재 기자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기점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존재감은 사뭇 달랐다. 중앙정부는 대통령, 대통령 권한대행이 잇따라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면서 ‘대행의 대행’ 체제라는 거버넌스 혼란 국면에 빠져들었다. 지방정부는 어수선해진 지역의 민심을 다독이고,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등 탄핵 정국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했다. 중앙정부가 흔들릴 때 지방정부는 각자의 자리에서 본연의 의무를 다했다고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유정복 회장은 자부한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들이 모여 만든,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공적 단체이다. 유정복 회장은 4월 8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지방정부의 수장인 시·도지사들은 혼란기의 사회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민생 안정에 만전을 기했다”고 지방정부 역할론을 제기했다. 나아가 “차기 대선이 치러지는 6월 3일까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중앙정부의 공백을 메우는역할에도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계엄 및 탄핵 국면에서 지방정부는 어떻게 움직였나요?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17개 시·도의 시장과 도지사들은 지역의 안정 및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부었죠. 시·도지사는 지역을 지켜야 하는 공통된 책무를 안고 있죠. 중앙정부가 혼란을 겪고, 국정 난맥상이 노출되더라도 지방정부가 굳건히 민생을 챙기면 사회는 안정됩니다. 17개 시·도가 곧 대한민국이니까요. 지방자치법에 따라 설립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도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과 긴밀한 소통 채널을 구축해 국정 현안과 지역의 국책 사업에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긴밀히 협조했습니다,”
 

당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 사례를 든다면?
“시도지사협의회 임원단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올 1월 17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민생 경제 회복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정을 신속히 집행하고, 지역 소비와 투자 활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데 협력하기로 했지요. 시도지사협의회는 16개 시·도가 요청한 신속 추진 사업 73건을 최 권한대행에게 전달했습니다. 2월 25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탄핵 정국으로 인해 지연된다고 판단되는 18개 프로젝트에 대해 신속 추진을 결정하게 됐어요. 투자 이행 효과가 약 49조원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정부는 또 부산, 대구, 광주 등 6개 권역 15개 사업에 걸쳐 그린벨트 해제 총량 예외를 두기로 했어요. 나아가 태안-안성 민자고속도로 적격성 조사 의뢰 심사 신속 진행, 신안 해상 풍력 집적화 단지 평가 절차 신속 추진 결정 등의 성과도 얻었습니다.”
 


시도지사협의회의 정책 제안이 중앙정부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나요?
“예. 광역형 비자 도입, 지역 특화 비자 제도 전국 확대, 지방 소멸 대응에 빈집·폐교 활용, 외국인 유학생 졸업 후 인턴 허용 기간 확대 등의 정책 제안이 중앙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거나, 추진을 앞두고 있습니다.”
 

1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 임원단과 최상목(오른쪽 셋째) 대통령 권한대행의 오찬 간담회. [연합뉴스]

1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 임원단과 최상목(오른쪽 셋째) 대통령 권한대행의 오찬 간담회. [연합뉴스]

“중앙지방협력회의 올 2분기 개최 가능”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1991년 지방자치법에 따라 설립된 광역지자체장들로 구성된 협의체다. 2022년 ‘중앙지방협력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법’이 시행되면서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공적 단체의 위상을 다졌다.

이 법은 중앙지방협력회의를 분기별로 한 번씩 개최토록 하고 있다. 의장은 대통령, 공동부의장은 국무총리와 시도지사협의회 회장이 맡으며, 각 시·도지사, 중앙 부처 장관 등이 멤버로 참여한다. ‘지방시대’를 표방한 윤석열 정부는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제2의 국무회의’ 수준으로 활성화했고, 시·도지사들의 발언권도 강화됐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중앙지방협력회의는 다시 탄력을 받을까요?
“당연하죠. 대통령 부재 중에도 대통령 권한대행이 열 수는 있어요. 지난 1월 최상목 권한대행과의 간담회에서도 중앙지방협력회의 내실화를 기하자는데 뜻을 같이했습니다. 지금도 협의만 되면 2분기 개최도 가능합니다.”
 

중앙지방협력회의 활성화 이후 시·도지사 일부 예우가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됐습니다.
“시·도지사는 정무직이자, 정치적 신분입니다. 장관급이니, 차관급이니 하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인천시장은 정무직 인천시장이고, 서울시장은 정무직 서울시장일 뿐입니다. 30년 전 지방자치를 하기 전에는 중앙정부 1급이 인천시장에 임명되곤했어요. 지방자치 시행 이전의 관료적 사고에 젖어 차관급이니 하는 예우 규정을 적용하는 거죠. 정무직에 무슨 급(級)이 있으며, 어떻게 정부 부처의 장관, 차관급에 갖다 맞추겠습니까. 시·도지사는 선출된 정무직인 만큼, 예우와 지위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필요합니다.”
 

지방정부를 대하는 중앙정부의 자세를 말하는군요.
“우리가 역사적으로 중앙 집중적 권력 체계, 관료적 서열 문화에 젖다 보니 중앙과 지방을 마치 상하(上下) 개념인 양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앙지방협력회의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 1조를 볼까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등하고 협력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지방자치 발전과 지역 간 균형발전 정책의 효과를 제고한다’고 나옵니다. 이 부분부터 우리가 정확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총합입니다. 우리가 중앙집권적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국민 주권 시대를 열어 갈 수 있습니다. 중앙집권적 사고가 빚는 폐단이 적지 않아요.”
 

“산발적 보조금 체제 바꾸면 출생률 오른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든다면?
“제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쭉 일해온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가 중심이 돼서 재원을 배분하는 보조금 중심 국가, 보조금 공화국이라고 하겠습니다. 행안부나 교육부 등의 교부금을 통해 지방정부를 관리하는 시스템이죠. 행안부는 아직도 지방의 조직, 인사권을 행사하죠. 인천시를 위시해 전국 광역지자체의 부시장, 부지사가 국가직이고, 기획조정실장도 국가직입니다. 이래서는 지방자치를 자치권에 맞게 실행한다고 보기 어려워요. 개발만능주의 시대라면 국가가 국민을 하나로 묶은 통합 역량으로 국가 발전을 꾀했겠죠. 중앙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성장을 주도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잖아요. 지방자치를 시행한 지가 30년이 지났습니다. 지역마다 환경과 특징이 다 달라요. 과거의 개발만능주의 시대 행정 시스템은 이제 낡은 방식이 된 겁니다.”
 

그런 견지에서 중앙정부는 당장 무얼 해야 할까요?
“중앙정부는 외교·안보·무역·환경, 이런 거대한 어젠다만 주도하면 됩니다. 일반적인 민생·복지·사회·안전 분야는 지방정부가 지역 현실에 맞게 일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보조금 공화국이라고 했었죠?
“개별 중앙 부처들이 각종 국고 보조 사업과 특구 등을 각기 따로 계획·운영하고 있습니다. 중앙 부처가 과도하게 경쟁하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지요. 복지 분야를 예로 들겠습니다. 모든 복지 정책은 중앙정부가 수립하고, 지방정부는 중앙의 예산에 지방비를 매칭해서 집행하는 구조에 그치고 있습니다. 지역 실정과 무관한 보조금이 획일적으로 나가는 겁니다. 어떻게 인천하고, 제주, 울산의 사정이 같겠습니까?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국고보조금 사업은 지방정부를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합니다, 중앙 의존성이 커지면서 결국엔 스스로 기획하고 발전하는 역량을 키울 기회도 잃게 되는 것이죠. 저출생 예산도그래요. 매년 50조원을 전국에 똑같이 나눠줍니다, 그 결과 합계 출산율에서 대한민국이 통계를 내는 세계 236개국 중 꼴찌입니다. 나라가 이 보조금 공화국의 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해요.”
 

결국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쓰이고, 성과도 변변찮다는 말이군요?
“제가 저출산 예산 50조를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 누차 얘기했어요. 현행 산발적 보조금 체제는 너무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에서, 행정안전부에서, 농림부에서, 법무부에서 다 저출생 정책과 예산을 수립합니다. 같은 부처 안에서도 이 과(課), 저 과 저마다 저출생 정책을 세워요. 실제 현장에서 보면 체감 지수가 전혀 없는 정책들이 양산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다 걷어치우고, 통합 보조금으로 가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대통령실에 저출생 담당 통합 수석을 둬야 한다고 했고, (대통령실은) 실제로 저출생 대응 수석을 뒀어요. 중앙정부에도 이를 다룰 통합 부서를 둬야 한다고 했어요. 이에 정부가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처리가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확신하는데, 통합 보조금 체제로 가면 출생률이 확 올라갈 겁니다. 이런 내용들이 우리가 이번에 만든 분권형 개헌안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 개헌도 국민의 관심사로 부상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또 시도지사협의회장 자격으로 개헌안을 공표하고, 국회에서 토론회도 개최하는 등 개헌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시도지사협의회 개헌안은 지방정부의 입법권, 계획권, 자주 재정권을 부여하는 등 자율적인 분권 성장 조항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이에 정치권도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선과 개헌 동시 투표를 제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유정복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은 “대한민국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총합”이라며 “우리가 중앙집권적 사고체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국민 주권 시대를 열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영재 기자

유정복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은 “대한민국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총합”이라며 “우리가 중앙집권적 사고체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국민 주권 시대를 열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영재 기자

“자율적 분권 성장 개헌에 공감대 형성”

제1당인 민주당이 시큰둥한 상황이죠.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는 데는 모두 공감하는 상황입니다. 국회만 동의한다면 한두 달 이내에도 개헌이 가능한 겁니다. 다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여기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 논의에 진전을 못 보는 겁니다. 개헌은 국회에서 표결해야 하는 사안인데 (다수당을 이끄는) 이재명 대표의 스탠스가 모호합니다. 개헌을 반대하는 건 아닌데 대선 후에 하자는 식입니다. 대통령이 선출되고 나면 개헌이 쉽지 않다는 게 우리 역사의 경험칙인데 말이죠.”
 

이 대표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고, 계엄 요건을 강화하는 정도의 개헌안 처리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죠?
“그건 특정 정치인을 위한 개헌을 하자는 것인데 안 되죠. 개인의 유불리를 따진 개헌은 진정성이 없는 겁니다. 계엄, 탄핵 인용이 헌법 조문이 잘못돼서 생긴 문제인가요? 정 그렇다면 저는 헌법 제84조 하나만 고치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입니다. 재판을 받는 범죄자가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거든요. 그걸 명확하게 하자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이 대표가)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해야죠. 84조 개정에 선뜻 나선다면 이 대표에게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겠죠.”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