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자체브랜드(PB) 대전을 펼치고 있다. 제조사나 브랜드의 제품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역할을 주로 해온 유통업체들이 직접 제품을 기획하고 주문 생산하는 방식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나 편의점 같은 유통업체가 간편식 등 먹거리를 중심으로 PB를 만들었다면 최근엔 옷, 화장품, 가전까지 전선이 확대됐다.
롯데하이마트가 만든 PB인 '플럭스' 가전제품들. 사진 롯데하이마트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21일 PB 브랜드인 ‘플럭스’를 공식 출시했다. 1년간 소비자 성향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주요 기능만 남기고 디자인은 단순화하고 용량은 축소해 가격을 낮췄다. 예컨대 플럭스 냉장고는 용량이 330리터로 작다. 에너지효율등급은 1등급이다. 대개 1~2년인 무상 수리 기간은 3~5년으로 확대했다.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나 너무 큰 용량을 개선해 선보이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착한 가격으로 제품을 출시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은 식품에 이어 화장품 PB를 내놓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 21일 LG생활건강과 손잡고 주름 개선 효과를 앞세운 ‘글로우:업 바이 비욘드’ 스킨케어 8종을 각각 4950원에 출시했다. 세븐일레븐도 이달 초 패션 PB인 '세븐셀렉트' 티셔츠 2종을 선보였다. 패션플랫폼인 무신사는 ‘무신사 스탠다드’를 통해 남성·여성복에 이어 키즈, 스포츠복까지 PB로 만들고 있다.
유통업체들이 PB를 강화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불황이 이어지며 내수 침체가 이어지자 괜찮은 품질에 값이 싼 PB를 찾는 수요가 늘었다. 이마트의 식품 PB인 ‘노브랜드’ 매출은 2015년 234억원에서 지난해 1조3900억원으로 급증했다. CU의 PB 매출은 매년 성장 폭이 커지고 있다. 2022년 16%, 2023년 17.6%에 이어 지난해 21.8%까지 전년대비 성장률이 늘고 있다.
특히 990원 핫바, 1900원 맥주같이 초저가를 내세운 PB인 ‘득템시리즈’ 상품 수는 지난해만 72% 증가했고 매출은 116% 늘었다. 유선웅 BGF리테일 상품본부장은 “990원 핫바는 기존 제품의 양이 부담스럽다는 고객 의견을 반영해 용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가격을 낮춰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소비자 취향을 바로 반영해 더 다양한 PB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제품과 동일한 수량을 팔았다고 가정할 때, PB상품은 수익이 높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체가 만든 브랜드 제품을 사서 판매하면 유통 마진만 남고 이마저도 입고가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PB는 제조원가 조절부터 판매가격까지 직접 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물량을 팔아도 마진이 더 좋다”고 말했다.
CU의 초저가 PB인 '득템 시리즈' 핫바(990원)와 맥주(1900원)를 고르고 있는 방문객. 사진 BGF리테일
PB 상품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전까지 가성비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은 기능이나 타깃 등이 명확하다. 이마트는 노브랜드 외에 1~2인 가구를 공략하기 위한 식품 PB인 ‘소소한 하루’를 내놨다. 양파(1~2입), 대파(200g), 깐마늘(80g), 계란(4구) 등 소분한 먹거리를 990원에 판매해 보관 부담을 줄였다. 롯데하이마트도 플럭스 이동형 QLED TV(43형)에 바퀴를 달아 이동이 편하게 디자인해 공간 활용도를 중시하는 1~2인 가구를 노렸다. 박병용 롯데하이마트 PB해외소싱부문장은 “PB 제품군을 더욱 확장해 PB상품이 고객들에게 새로운 브랜드로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