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는 ‘건진법사’ 전성배 씨가 지난해 12월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 박건욱)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전씨의 실주거지에서 현금 1억6500만원을 압수했다. 이 중에는 ‘한국은행’ 발권국 표시와 바코드가 찍힌 인쇄 스티커와 함께 별도로 비닐 포장된 5000만원 신권 뭉치도 포함돼 있었다. 스티커에는 권종 50,000원권, 금액 50,000,000, 기기번호, 발권국 및 담당자와 책임자 각각이 부호와 일련번호로 표시돼 있고, 맨 아래엔 발권일과 시각이 분초까지 표기돼 있었다.
검찰은 이 중 ‘2022년 5월 13일 14시 05분’으로 발권 시점이 표시된 점을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3일 뒤 한국은행이 발권한 신권 5000만원이 건진법사에게 흘러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만남을 주선한다거나 유력 정치인에게 인사 청탁을 해주겠다며 관봉권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가 지난해 12월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전씨의 실주거지에서 압수한 ‘한국은행’ 표시가 된 5000만원 상당의 돈뭉치. '2022년 5월 13일 오후 2시 5분 59초'라고 써있기도 하다. 연합뉴스
출처를 파악하기 어려운 관봉권은 불법 정치자금 의혹 수사 과정에서 자주 등장한다. 지난 2022년 검찰은 노웅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하면서 한국은행 띠지로 포장된 돈다발을 발견했다. 다만 압수수색 영장 집행 범위에 현금이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지난달 대법원에서 압수 취소 판결했다. 노 전 의원은 이 혐의로 현재 1심 재판 중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2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도 입막음용으로 전달받았다며 5000만원 상당의 관봉권 사진을 공개했다. 이후 김진모 당시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하겠다며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5000만원을 요구해 받은 혐의(업무상 횡령) 등이 인정돼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번 돈뭉치도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와 연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사람들이 뭉태기로 돈을 갖다 주면 그냥 쌀통에 집어넣었다. (누구한테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부지법은 지난달 25일 해당 돈다발 등 압수한 현금에 대해 추징 보전 명령을 내렸다.
검찰은 특히 신권 포장 종이에 적힌 ‘2022년 5월 13일 오후 2시 5분’이란 문구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 날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3일 뒤다. 전씨가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만남을 주선한다거나 유력 정치인에게 인사 청탁을 해주겠다며 금품을 수수한 정황을 포착한 만큼 뭉칫돈을 받은 시기 등도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지난해 말 전씨의 강남구 역삼동 소재 법당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대기업 임원과 정치인, 법조인, 경찰 간부 등 수백여 명의 명함과 송금 영수증을 압수했다. 전씨는 검찰에서 “기도비로 최소 1000만원에서 최대 3억원에 달하는 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2017년 4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전씨 계좌에서 아내 계좌로 송금된 6억 4000여만원에 대해서도 “기도비로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