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아의 전기차 생산 기지로 탈바꿈한 ‘오토랜드 광명(옛 소하리공장)’. 기아의 ‘승합차 신화’를 쓴 봉고, ‘국민 소형차’로 불린 프라이드, 카니발 등이 줄줄이 여기서 탄생했다. 1970년 설립 허가를 받아 공장을 착공했지만, 이듬해 느닷없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지정돼 공장으로서 ‘성장판’이 막혔다. 공장을 증·개축할 때마다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를 거치는 건 물론이고 보전 부담금까지 내야 해서다.
정부가 최근 부담금을 낮춰주기로 했지만, 그린벨트는 여전히 걸림돌이다. 수도권에 오토랜드처럼 설립 허가를 받은 뒤 그린벨트로 묶인 공장이 여러 곳이다. 일본이 대만 TSMC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려고 50년 이상 묶었던 그린벨트를 풀고 수조 원대 보조금을 쏟아붓는 것과 대비된다.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셈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회원사 의견을 수렴해 정리한 ‘2025 규제개선 종합 과제’를 국무조정실에 건의했다고 24일 밝혔다. 고용노동부 12건, 공정거래위원회 11건, 국토교통부 8건, 환경부 8건, 금융위원회 5건, 기획재정부·조달청 4건 등 71건이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규제 완화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건의한 과제에는 그린벨트 지정 이전에 설립한 공장 부지의 그린벨트 지정을 해제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그린벨트 지정 이전에 설립한 공장이라도 시설을 증축·증설할 경우 엄격한 연면적 제한, 건폐율 등 규제를 적용한다. 기초자치단체장으로부터 허가도 받아야 한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규제 때문에 기업이 공장을 분리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며 “물류·전기·가스 비용이 중복되고, 산업 환경 변화에 따른 시설 개선 등 유연한 경영전략을 펼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공입찰 낙찰자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고사망 만인율’(연간 근로자 수 1만명당 사고 사망자 수 비율)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만인율 산정 시 포함하는 사고의 범위가 넓어 안전 관리를 충실히 이행한 업체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다. 현재는 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하지 않은 동시에, 사고가 업무와 무관한 경우만 만인율 산정에서 제외한다. 이상호 본부장은 “(작업자 간 과실 등) 사업주의 법 위반이 없는 사고는 만인율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과제에는 이 밖에도 ▶대형마트 문화센터 학원법 적용 규제 완화 ▶화약류 제조 허가 신청 시 제출 서류 간소화 ▶대기업 언론사 소유제한 규제 완화 등이 담겼다. 한경협은 한국은 규제 강도를 나타내는 상품시장 규제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0위에 머물렀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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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