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지는 완봉의 추억…낭만을 지키는 투수 KT 고영표

지난 20일 고척 키움전에서 통산 5번째 완봉승을 달성한 고영표. 사진 KT 위즈

지난 20일 고척 키움전에서 통산 5번째 완봉승을 달성한 고영표. 사진 KT 위즈

최근 프로야구에선 경기의 시작과 끝을 실점 없이 책임지는 선발투수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른바 완봉의 감소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매년 10개 안팎의 완봉이 나왔지만, 최근 들어선 수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7차례의 완봉이 나온 2021년 이후 이듬해에는 횟수가 3번으로 감소했고, 2023년에는 완봉을 기록한 투수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역시 단 4명만이 완봉 고지를 밟았다.

이러한 흐름에는 몇몇 이유가 있다. 최근 KBO리그는 뚜렷한 타고투저 양상을 띠었다. 그러면서 선발투수가 긴 이닝을 책임지는 날이 현격히 줄었다. 또, 새로 생긴 구장들이 포수 뒤쪽 공간을 좁히고, 파울 지역을 최대한 줄이는 등 타자친화적으로 바뀌면서 투수가 불리해졌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그렇다고 완봉의 낭만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KT 위즈 오른손 사이드암 고영표(34)는 지난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9이닝을 3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5-0 승리를 이끌었다. 개인 통산 5번째 완봉승. 남들은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완봉승을 벌써 5차례나 기록한 고영표를 지난 22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만났다.

고영표는 “사실 올 시즌 출발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다. 첫 번째 등판(3월 25일 수원 두산 베어스전)에선 5이닝도 채우지 못했고, 다음 경기에서도 안타를 7개나 내줬다”면서 “다행히 체인지업 감각이 살아나면서 힘을 받았다. 전력분석팀 이야기로는 체인지업 헛스윙 비율이 50%가 넘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최근에는 체인지업 구사 비중을 높이면서 타자를 상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갈수록 사라져가는 완봉의 낭만을 지킬 수 있어 기쁘다”고 웃었다.

고영표. 사진 KT 위즈

고영표. 사진 KT 위즈

요즘 KBO리그는 바야흐로 구속의 시대다. 시속 150㎞의 강속구를 넘게 던지는 투수들이 차고 넘친다. 반면 고영표는 130㎞대의 투심 패스트볼과 110㎞대 체인지업으로 타자들을 괴롭힌다. 매년 10승 안팎의 승리를 거두고 통산 5차례 완봉승을 달성한 대목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5회 완봉승은 8차례의 류현진(38·한화 이글스) 다음으로 현역 2위의 기록이다.


고영표는 “투수라면 당연히 빠른 공을 원할 것이다. 구속이 높을수록 아웃을 잡아낼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구속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면서도 “그렇다고 구속이 전부는 아니다. 결국에는 타자의 범타를 끌어내는 구위가 중요하다. 내가 많은 완봉을 기록할 수 있던 힘도 구위라고 생각한다. 후배들도 이 점을 잘 떠올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고척 키움전에서 통산 5번째 완봉승을 달성한 고영표. 사진 KT 위즈

지난 20일 고척 키움전에서 통산 5번째 완봉승을 달성한 고영표. 사진 KT 위즈

이강철(59) 감독이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진국인 선수”라고 매번 극찬하는 고영표는 지난해 1월 KT와 5년 총액 107억원의 다년계약을 맺었다. 창단 멤버로서 KT 마운드를 착실하게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8경기에서 6승 8패 평균자책점 4.95로 부진해 에이스로서의 체면을 구겼다.

고영표는 “모든 운동선수는 똑같다. 지고는 못 산다. 지난해 아쉬움을 곱씹으며 올 시즌을 준비했다. 다년계약 투수로서 많은 경기를 책임지지 못했던 만큼 올해에는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지면서 불펜진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 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프리미12에서의 부진도 꼭 씻고자 한다. 다시 국가대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온다면 꼭 태극마크를 달아 팬들에게 멋진 야구를 선물하고 싶다”고 더 큰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