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일본 도쿄 나가타초(永田町) 중앙합동청사 8호관. 10층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우치 미노루(城内実·60) 일본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이 한국어로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인공지능(AI) 관련 법안으로 국회 일정이 빠듯한 상황이었지만 잠시 짬을 내서다.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일본 내 한국어 확산에 기여한 인물이다. 한국의 수능시험에 준하는 일본의 대입 센터시험에 한국어를 도입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기우치 미노루 일본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이 지난 18일 일본 도쿄 중앙합동정부 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그는 시즈오카(静岡)현을 지역구로 둔 7선 의원(중의원)이다. 시즈오카현 서부 하마마쓰(浜松)에 본적을 두고 있다. 어린 시절 독일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외무성 시절엔 일왕의 독일어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안보상에 임명됐다. 일본은 미·중 간 '경제 전쟁'이 격화하자 2021년 경제안보상을 신설했다. 2022년 경제안전보장법이 각의(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경제안보상이 반도체와 전기차용 배터리, 희토류 등 주요 물자와 기술에 대한 규제를 책임지고 있다.
기우치 경제안보상은 짧은 대면·서면 인터뷰, 외신 대상 강연(지난 22일) 등을 통해 일본의 경제안보 정책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특정 국가명’을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기업들이 코스트(비용)를 중시하면서 해외 사업을 전개하며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상황을 맞이했다”며 “정치적 의도를 갖고 주요 물자를 내세워 위협하는 국가가 있다”고만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안보 정책이 필요한 근거도 들었다. 2년 전 나고야 항 컨테이너 관리시스템이 사이버 공격을 받아 작업이 3일간 중단된 바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일로 안전보장과 경제를 일체화한 정책이 없으면 국민의 안전보장을 지킬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기우치 미노루 일본 경제안보담당상이 지난 18일 일본 도쿄 내각부 청사에서 한국어로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의료산업 보호도 언급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마스크 부족을 겪었던 점을 들었다. 또 항생제가 주요 물자에 포함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동맹국, 동지국, 우호국과 연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도 밝혔다. 그는 “미국 정부의 광범위한 무역 제한 조치는 일·미 양국의 경제 관계, 나아가 세계 경제 및 다자간 무역
체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다. 그러면서도 미·일 협상이 진행 중인 사정을 들어 관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안보가 지향하는 바는 광범위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기준을 확립해 필요한 경제적 조치를 통해 국익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대표 기업 8곳이 뭉쳐 만든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는 라피더스에 대해 기존 9조원대 지원에 더해 추가로 약 8조원에 달하는 자금 지원을 결정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그는 “반도체는 경제안보상 중요한 특정 중요 물자로 지정돼 있다”며 “라피더스 프로젝트는 세계 최고 수준의 2나노(1억분의 1m) 세대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우치 경제안보상은 또 “해외의 선도적인 제조사들도 아직 양산에 이르지 못한 매우 도전적 시도”라며 “일본 국내에 반도체 생산 기반을 보유하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과 같은 동맹국에도 첨단 반도체 공급망 강화 측면에서 경제안보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어 “경제 구조의 자율성과 기술 우위성, 기본 가치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유지·강화를 지향해 경제안보 정책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