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의지로 혁명과업 이행은 옛말…최고 존엄도 못 건드리는 언터처블 자본세력 등장”
“한국은 전 세계 대표적인 자본주의 성공 국가…북한 ‘혁명 3세’와 뜻 함께할 수 있어”
![북한 혁명 3세는 당보다 자본을 우선시한다. 사진은 지난 2023년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이 한쪽 무릎을 꿇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와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 [조선중앙TV=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5/e093967c-0112-4a5d-9dc3-b083b0ef5a4f.jpg)
북한 혁명 3세는 당보다 자본을 우선시한다. 사진은 지난 2023년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이 한쪽 무릎을 꿇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와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 [조선중앙TV=연합뉴스]
혁명 3세대는 빠르게 기득권층으로 올라서고 있다. 북한 당국이 사상교육사업에 주력하는 이유다. 사상교육사업이란 ‘혁명의 시련을 겪지 못한 새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사상교육’이다. 북한 당국이 계급별·계층별 세뇌교육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정은 정권 연장을 위함이다. 북한은 기득권층의 세대교체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김정은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연령별 교육이 대표적이다. 특히 유년기 기초교육에 심혈을 기울인다. 주요 분야마다 기초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을 두고 있다. 평양외국어대학 부속 평양외국어학원(외교 분야), 평양 제1고등중학교(경제 분야), 금성학원과 금성 제1고등중학교(예술 분야)가 대표적이다. 정치 분야에서는 군복무를 통해 혁명적 단련을 마친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을 엄선해 선발한다.
혁명 2세가 체감한 ‘상호 보호형 결집구조’의 한계
북한은 이처럼 ‘철저한 권력주의 왕정국가’다. 왕정국가답게 김씨 일가와 공생하는 기득권층의 권력은 세습되고 담보된다. 중요한 점은 권력 구조가 동향(同鄕)보다는 가족단위로 끈끈히 밀착된 ‘혈연형 구조’라는 것이다. 이를 북한에서는 ‘상호 보호형 결집구조’라고 말한다.
왜 ‘상호 보호형 결집구조’인가? 이는 북한 엘리트층이 권력을 세습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북한 엘리트층은 신분과 경제력이 비슷한 집안끼리 결혼한다. 같은 신분, 즉 ‘혁명투사 가족’ 사이 혼인관계가 형성되는 순간 엘리트층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굳건해진다. 정치적 경쟁 세력을 견제하는 효과도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엘리트층의 권력은 확대된다. 권력이 커지면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공고한 가족형 정치세력이 된다. 이는 북한 통치 시스템 특유의 ‘연좌제’를 어느 정도 견제하는 효과도 있다. ‘상호 보호형 결집구조’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결집구조는 심각한 취약성을 내포한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가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일명 반일투사로 불리는 혁명 1세대는 김일성 집권 시기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김정일이 집권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즉, 세대교체가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것이다.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세대교체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독재자를 위협하는 세력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김정일은 세대교체와 동시에 권력 강화에 나섰다. 김정일은 자신의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척결했다. 특히 독재를 위협하는 ‘결집형 가족 기득권층’에 대해 경계심을 가졌다.
김정일은 북한의 실세 부처인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반일투사(혁명 1세대) 자녀들의 입성을 철저히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일은 혁명 1세대 기득권층 자녀의 정계 진출(노동당 간부)을 제한하라는 인사정책 지침서를 당 행정간부 부(部)에 직접 하달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북한 주요 요직에 혁명 1세대의 자녀들을 보기 어려운 이유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최룡해(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를 제외하면 혁명 1세대의 자녀들이 혁명 2세대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다.
이처럼 엘리트층 간의 혼인을 통해 형성된 ‘상호 보호형 결집구조’는 최고지도자의 교체, 혹은 세대교체 앞에서 무력화된다. 혁명 1세대와 혁명 2세대 간의 다리가 끊어지자 북한 엘리트층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김정은 정권의 인사정책과 연좌제에 대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결혼 방식에 변화를 두기 시작했다. 과거 1세대 혼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면 안 된다고 느낀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북한의 기득권층, 즉 ‘혁명 2세’들은 자녀들에게 정계에 입문할 것을 권하지 않는다. 대신 경제와 기술 분야에 진출하라고 권한다. 자연스레 엘리트층의 결혼 문화도 바뀌었다.
오늘날 엘리트층 부모들은 사위, 며느리가 정치적·경제적으로 조금 어렵더라도 발전성(전망)이 담보되는 대학원생이기를 희망한다. 물론 ‘양호한 계급적 토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방점은 ‘미래’가 밝은 대학원생, 즉 경제·기술 분야를 전공하는 청년이 미래의 사위·며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2025 평양 최고의 남편·아내감은 대학원생”
두 번째는 정치적 상황이 악화돼 연좌제로 가족들이 불이익을 받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꼬리 자르기’하여 다음 세대의 불행을 면하기 위함이다. 즉, 오늘날 북한 엘리트층 사이에서는 ‘처벌 방식이 곧 변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친인척 전체를 몰살했다면, 앞으로는 ‘이방인’, 즉 사위·며느리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혁명 2세들이 자녀들에게 정계 입문을 권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과거 엘리트층 부모(혁명 1세)들이 자녀의 정계 입문을 강력히 권한 이유는 굶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 엘리트층은 경제·기술 분야에 진출해 외화를 버는 게 훨씬 좋은 선택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先) 자본, 후(後) 권력’ 공식이 생긴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외무성 분위기에서도 읽힌다. 신세대 외교관들은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서에 배치 받기를 희망한다. 외무성 경제국과 대외협조국 등이 대표적이다. 무역회사도 인기 직장이다. 경제·기술 분야로 커리어 쌓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정계에 발을 담글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 ‘공화국’에서만 유효한 ‘노동당 간부증’보다는 전 세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돈과 기술이 낫지 않은가?
선(先) 자본, 후(後) 권력 공식은 평양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신흥 자본 세력, 즉 북한판 ‘올리가르히(신흥 재벌)’가 국가의 정치적 영향력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대한민국처럼 말이다. 신흥 자본 세력은 자신의 경제력을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보양제’로 여긴다. ‘불굴의 의지’로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를 위해 희생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의미다.
신흥 자본 세력은 연유·식료품 수입, 석탄 수출을 통해 권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북한 경제 핵심 기둥으로 거듭난 이들은 국가기관 산하 무역회사의 외피를 쓰고 ‘공격적인 대외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 인물로는 노동당 재정경리부 산하 회사의 사장을 지낸 전영훈이 있다. 전영훈은 정치 세력과 결탁해 디젤유 수입 루트를 독점,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전영훈에게는 노동당 간부증보다 외화가 중요했을 것이다.
전영훈처럼 신흥 자본 세력은 권력층과 친인척 관계를 맺거나 상납을 통해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됐다. 이들은 대부분의 자본을 ‘투자자 상환금’으로 위장해 해외에 보관하고 있다. 김정은도 이를 알고 있으나, 북한 내부 외화자본의 유동만 감시하고 있다.김정은도 신흥 자본 세력을 상대로 칼을 빼들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2024년 5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딸 주애가 평양 북부 새 거리인 ‘전위거리’ 준공식에 참석해 주민들에게인사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5/3070808f-fd9c-41cd-b1d0-089aa14b74cc.jpg)
2024년 5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딸 주애가 평양 북부 새 거리인 ‘전위거리’ 준공식에 참석해 주민들에게인사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현실적인 보고서 올려라”…김정은의 지시
실제로 김정은은 이를 각종 ‘중대 조치’를 통해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이는 사실 ‘중대 조치’를 빙자한 엘리트층 세대교체에 불과했다. 구체적으로 김정은은 실력이 뛰어난 인재를 연령 제한 없이 고위직에 임명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북한 외무성에서는 50대 부상(차관)과 40대 부국장이 탄생했다. 말 그대로 파격 승진이었다. 김정은은 이 같은 인사이동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봤다. 김정은은 앞으로도 당과 군에 이 같은 인사이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당에 파격 인사가 불어닥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자본주의 정치체제에서는 각 부처의 장관들에게 결정권이 집중된다. 반면 북한에서는 모든 권력이 당에 있다. 당의 조직비서 혹은 조직부장이 실세다. 당 요직에 젊은 인사들이 배치되면 연령대가 높은 기존 당 엘리트들의 불만이 극대화될 것이다. 북한 내부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당의 인사이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선 북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해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김정은 정권의 정책 결정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북한에서는 ‘법’보다 ‘노동당 총비서(김정은)’의 지시가 우선시된다. 북한 내부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김정은의 방침(지침서)을 작성하는 실무진이 누구인지에 주목한다. 북한의 모든 정책 결정은 성(외무성·국방성 등 부처)과 중앙기관의 부원(국가공무원)들이 작성한다. 이후 북한 내각과 노동당의 철저한 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김정은의 발언으로 변성돼 발표된다. 보고문건(서류)이 작성되고 비준절차를 거쳐 김정은의 사인을 받기 전까지는 작성자의 서류로 분류되나, 김정은의 사인을 받은 직후부터는 김정은의 서류가 된다. 김정은의 서류로 분류되는 순간 북한에서는 ‘법적 효력’을 갖는다.
김정은이 사인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김정은 사인 행태에 따라 김정은이 ‘직접 본 서류’와 북한노동당 정무국에서 ‘대행(전결)으로 사인한 서류’로 나뉜다. 직접 서명한 서류와 전결한 서류는 혁명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차이가 없으나, ‘전결’의 경우북한 기득권층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통로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북한 노동당 서기실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존 서기실은 김정은에게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국내외 모든 서류를 최종 검토·선별하여 제출·감찰하는 핵심 부처였다. 그러나 오늘날 서기실은 김정은의 ‘문건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로비를 한 개인·부처의 서류를 ‘자체 결심(결정)’ 형식으로 ‘처리’한다. 주요 서류의 ‘비(非)관심적(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사적인 내용을 반영하여 사리사욕을 챙긴다는 뜻이다. 지난 2013년 노동당 서기실 부실장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사리사욕을 챙기다가 적발·법적처리됐다. 그의 사위(전 외무성 인사처 책임부원)는 부인과 이혼하고 다른 부처로 강등됐다.
두 번째는 ‘방침 유형’이다. 우선 김정은의 지시(방침) 유형은 크게 ‘강령방침’과 ‘현행방침’으로 분류된다. ‘강령방침’이란 새로운 ‘지향성 방침’이 제시되기 전까지 항시적·장기적으로 관철해야 하는 방침이다. 반면 ‘현행방침’은 단기간 내에 집행하여 그 결과를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서류다.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김정은은 세대교체에 나섰다. 이에 북한 외무성에서는 50대 부상(차관)과 40대 부국장이 탄생했다. 지난 2019년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5/40c34685-1324-4035-82ee-e325218a638f.jpg)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김정은은 세대교체에 나섰다. 이에 북한 외무성에서는 50대 부상(차관)과 40대 부국장이 탄생했다. 지난 2019년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화 반입으로 급성장하는 북한 신기득권층
실제로 동일한 사안을 두고 김정은이 상반되는 방침을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당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결국 당은 방침 집행 시점에서 제일 가까운 서류를 선택하여 집행하기로 했다. 수많은 이들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오늘날 북한 엘리트층은 이처럼 하루하루 고뇌 속에 빠져 살아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엘리트들의 또 다른 고뇌는 ‘자의적인 의사표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굳어진 ‘침묵 문화’는 사회생활은 물론, 개인의 사생활에도 깊이 침투해 있다.
지난 2017년 말레이시아 대사의 태도는 북한의 침묵 문화를 읽을 수 있는 한 예다. 김정남 암살사건 이후 강철 당시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는 해당 사건의 경위에 대한 현지 당국과 언론의 질문에 연일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북한 외무성 1국에서 강철 대사에게 ‘발언요강’을 하달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주요 사안에 대해선 외무성 1국에서 요강을 하달받기 전까지 대외활동을 극히 제한한다. 김정은은 발언 요강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실제로 2012년 외무성 영사국장이 ‘김정일의 방침을 대하는 관점과 입장’이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일격에 연구원으로 좌천당했다. 사실 그는 북한 영사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무질서한 입국 비자 발급을 일부 제한한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당국은 최고존엄의 방침내용과 대치된다고 판단해 좌천했다.
북한은 노동당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따라 ‘보고, 토론, 강연을 하거나 출판물에 실릴 글을 때에는 수령님의 교시를 정중히 인용하고 내용을 전개할 것’을 의무화한다. 이는 북한 엘리트들에게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들과 같은 사람이다. 당연히 감정이 있으며, 각 사안마다 고유의 생각이 있다. 그럼에도 정부당국이 개인의 생각까지 억제하려 드니 불만이 쌓이는 것이다.
이처럼 당국이 옥죄어도 신흥 자본가들의 세력 확장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통제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 당국은 ‘수입 대 지출’을 엄격히 체크했다. 엘리트층이 권력을 남용하여 막대한 물질적 부를 축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 이후 경제관리 시스템이 붕괴되고 감시·통제부처들의 능력이 저하됐다. 동시에 ‘황금만능주의 사상’이 주입되는 등 환경이 급변했다. 북한 엘리트들에게 부정부패의 활로가 열린 셈이다.
![북한 신흥 자본 세력은 국사 핵심 기득권층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들은 중국과 러시아 등 해외에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인다. 사진은 지난 2019년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압록강변 모습.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5/60c9a60d-8845-429f-bd5d-d9053e7e6717.jpg)
북한 신흥 자본 세력은 국사 핵심 기득권층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들은 중국과 러시아 등 해외에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인다. 사진은 지난 2019년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압록강변 모습. [연합뉴스]
자본주의·시장경제 체제 옹호하는 北 혁명 3세
그러나 김정은이 망각한 것이 있다. 바로 엘리트들의 자본축적 행태는 그럴수록 더욱 진화한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엘리트들은 자금세탁을 위해 해외에 나가 일정 기간 근무하고 복귀한다. 외화자본의 소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김정은이 아직 국내에 반입되는 외화자금의 수량을 제한하지 않는 점에 주목, 막대한 부를 쌓아가고 있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북한 기득권층은 급변하고 있다. 혁명 3세가 신기득권층으로 빠르게 올라오고 있으며, 이들은 당보다는 자본을 선호한다. 또 이들은 북한의 억압된 문화에 불만을 품고 있으며, 다양한 방법을 통해 외화를 벌고 있다. 김정은도 건드리지 못하는 북한판 ‘올리가르히’가 앞으로 많아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정권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북한 엘리트층을 공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반 주민들과 달리 외부정보에 자유롭게 노출돼 있다. 우리와 똑같이 김정은 정권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엘리트들의 대량 탈북이 발생하지 않는 원인은 정권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북한에서의 권력·재산과 가족을 포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어려움 중 일부만 해소돼도 북한 엘리트들은 한국 정부의 통일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그 방법이 꼭 탈북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나아가 당국에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 북한 일반 주민과 엘리트 계층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계급적 갈등을 잘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엘리트 계층만을 우선시하면 일반 주민 출신 탈북민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북한 엘리트들이 남북 정권에서 모두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반 북한 주민과 엘리트층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통일 전략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전 세계 대표적인 자본주의 성공 국가다. 북한의 혁명 3세, 즉 ‘자본주의·시장경제 체제 옹호론자’를 충분히 품을 수 있다.
한진명 김일성종합대학 불어과 졸업. 북한 외무성 6국(아프리카·중동·라틴아메리카 담당국)과 7국(주체사상 대외선전국), 주베트남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2015년 1월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을 나와 공장 근로자로 생활하고 있다.
한진명 前 주베트남 북한 서기관 maisonnatale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