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같았으면 목숨 끊었다" 전두환 분노의 백담사 유배

제2부. 5공 청산과 전두환·노태우 갈등

 

5회. 백담사 전두환 ‘박정희 같았으면 자살’

겨울 눈 쌓인 강원도 인제 백담사.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도착할 당시 겨울 백담사는 외부와 단절된 유배지와 같았다. 중앙포토

겨울 눈 쌓인 강원도 인제 백담사.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도착할 당시 겨울 백담사는 외부와 단절된 유배지와 같았다. 중앙포토

 

이순자 ‘외나무 다리 건너 백담사는 저승 같았다’

 
1988년 백담사는 요즘과 많이 달랐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마을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7km 계곡은 지금과 다를 바 없었지만, 당시 백담사는 심산유곡에 버려진 폐허 같은 한사(寒寺)였다.  

절이 건너다 보이는 개울엔 얼기설기 엮은 나무 다리만 있었다. 이순자 여사는 개울 건너편에서 처음 본 백담사 풍경을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 저승 같았다’고 표현했다. 비가 많이 오면 다리는 쓸려 내려갔다. 나중에 돌다리가 만들어졌다. 돌다리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수심교(修心橋)’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정말 열악한 건 전두환·이순자 내외가 머물 요사채였다. 그나마 절에선 가장 나은 방이라지만 구들장이 내려앉은 채 방치돼 왔다. 하루 전 부랴부랴 도배는 했지만 아궁이에 불을 때자 매캐한 연기가 방 안으로 몰려들었다. 비닐로 뒷문을 봉쇄하고 담요를 끈에 매달아 안쪽에서 문을 가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기거했던 두 평짜리 요사채 방 내부 모습. 문 위쪽에 외풍을 막는 담요가 걸려 있고, 아래쪽엔 물을 얼지 않게 담아두는 대야가 놓여 있다. 사진 전두환 회고록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기거했던 두 평짜리 요사채 방 내부 모습. 문 위쪽에 외풍을 막는 담요가 걸려 있고, 아래쪽엔 물을 얼지 않게 담아두는 대야가 놓여 있다. 사진 전두환 회고록

어둡던 2평 방이 동굴이 되었다. 전기가 없어 촛불 두 자루를 켜고 전직 대통령 내외가 나란히 방바닥에 앉았다. 오후 4시 백담사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체감 영하 20도였다. 대청봉에서 수렴동 계곡으로 내리친 찬바람은 산짐승 소리를 냈고, 그 바람에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풍경 소리는 귀곡성처럼 들렸다.  

 
전두환은 이틀간 두문불출했다.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는 바람에 덥수룩한 얼굴에 공허한 눈망울만 깊어 보였다. 그러나 정면돌파형 전두환은 이틀 만에 털고 일어났다. ‘절에 왔으니 절 일정표에 맞춰 생활하겠다’고 선언했다. 백지에 일정표를 그려서 방 벽에 붙였다. 옆에 걸린 달력 날짜 위에는 매일 가새표(X)가 그려졌다.  

입산 6일 만인 11월 29일부터 새벽 예불을 시작했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방 아랫목 대야에 떠다 놓은 물을 수건에 적셔 몸을 씻고 대웅전으로 가 얼음장 같은 마루바닥에 엎드려 108배를 했다.  

전두환, 구속되는 장세동에게 편지 ‘모두 내 탓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앞줄 오른쪽 흰색 한복)과 이순자 여사(가운데)가 1989년 백담사에서 열린 불교 행사에서 나란히 앉아 염불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두환 전 대통령(앞줄 오른쪽 흰색 한복)과 이순자 여사(가운데)가 1989년 백담사에서 열린 불교 행사에서 나란히 앉아 염불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두환을 격분시킨 것은 백담사행 이후에도 계속되는 측근의 구속이었다. 6공 청와대와 백담사행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측근의 사법처리가 없어야 한다’는 다짐을 받았지만 해가 바뀌자마자 측근 구속이 이어졌다.  

전두환이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파 했던 인물은 ‘분신’ 장세동 전 안기부장의 구속이었다. 장세동은 구속 직전 편지를 써 전두환의 사위 윤상현에게 배달을 부탁했다. 윤상현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데다 젊고 건장한 체격이라 경호원으로 가장해 백담사를 들락거렸다.  

장세동의 편지를 읽은 전두환은 그 자리에서 만년필을 꺼내 ‘사랑하는 세동아, 모든 게 내 탓이다. (중략) 그러니 얘기해라. 네가 원하는 대로 내가 다 하겠다’는 답장을 썼다. ‘무슨 일이든 너를 위해 다 하겠다’는 비장한 부하 사랑이었다. 그런데 장세동은 답장을 받고 묵묵히 구속됐다. 아무런 원망이나 요구가 없었다.  

전두환 내외는 1989년 새해를 맞아 음력 정월 초하루 ‘백일기도’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심산유곡에 유폐된 전두환 입장에서, 이는 점점 옥죄어 오는 5공 청산의 압력을 버틸 수 있는 심리적 위안이자 최소한의 저항이기도 했다.  

기도 제목은 ‘국태민안과 영가천도’였다.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평안, 그리고 죽은 이들의 영면을 빈다’는 거창한 제목이다. 전두환은 ‘대통령 재임 시절 일해(日海)라는 호(號)를 지어준 탄허(呑虛) 스님의 말을 따랐다’고 한다.  

마음의 안정 찾게 해 준 ‘백일기도’ 효과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이 경호원과 함께 백담사 대웅전 앞 눈을 치우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눈 치우는 것도 수행'이라며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중앙포토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이 경호원과 함께 백담사 대웅전 앞 눈을 치우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눈 치우는 것도 수행'이라며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중앙포토

백일기도는 엄격한 계율에 따라 백일 동안 매일 새벽 4시, 오전 10시, 오후 2시, 저녁 6시 등 네 차례 예불을 올려야 했다. 전두환 내외는 하루 세 번 예불을 하고, 오후 2시 예불 시간엔 불교 교리를 공부하고 불경을 외우는 것으로 대신했다.  

한겨울 백일기도는 육체적으로 쉽지 않다. 새벽에 예불을 위해 다기에 물을 부어 놓으면 108배가 끝날 무렵 얼어버렸다. ‘육식 금지’를 철저히 지키고자 아침마다 마시던 우유까지 끊어버리자 백일기도 50일 만에 빈혈과 메스꺼움을 동반한 ‘비위병(채식병)’이 생겼다. 70일 무렵 비위병이 사라지고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이 무렵 채문식 전 국회의장이 백담사를 찾았다. 용대리 입구에서 경찰이 막았다. 채문식은 “국회의장까지 지낸 사람이다. 여기까지 와 그냥 가라는 말이냐”고 호통치는 소동 끝에 어렵사리 통과했다. 반가운 손님을 맞아 전두환은 심경을 털어놓았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찬 물에 세수하고 예불을 시작한다. 추워 무릎이 시리다. 그래도 주위에서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것도 못 하나’라는 소리를 할까 봐 오기로 버티고 있다.”

이 무렵 전두환은 측근들에게 “박정희 대통령 같았으면 아마 수모를 참지 못해 자살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앞줄 가운데)가 1989년 5월 백담사에서 백일기도를 마감하는 회향법회에 참석해 합장하고 있다. 이날 백담사 마당은 조계종 원로 스님과 부산에서 올라온 불교 신도들로 꽉 찼다. 중앙포토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앞줄 가운데)가 1989년 5월 백담사에서 백일기도를 마감하는 회향법회에 참석해 합장하고 있다. 이날 백담사 마당은 조계종 원로 스님과 부산에서 올라온 불교 신도들로 꽉 찼다. 중앙포토

 
마침내 백일기도를 마감하는 ‘회향법회’가 1989년 5월 16일 열렸다. ‘회향(回向)’이란 대승불교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자신이 쌓은 공덕과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는 의미다. 그래서 불가에선 중요한 행사의 마무리에 ‘회향’이란 말을 붙인다. ‘백일기도 회향법회’엔 당연히 공덕과 깨달음을 나누려는 축하객이 몰렸다.  

이날 백담사 좁은 마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조계종 원로 등 스님들과 부산의 불교신도 500여 명이 달려왔다. 전두환은 “손 볼 놈이 몇 있었는데 백일기도를 하면서 ‘모두가 내 탓’이라고 마음을 달랬다”고 말했다. 전두환은 백담사에 도착한 직후 위로 차 찾아온 김장환 목사에게 ‘손볼 놈’이라며 최병렬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꼽은 적이 있다. 최병렬은 ‘5공 청산 비밀보고서’를 만든 주인공이다. 

전두환은 백일기도를 통해 그간의 절치부심(切齒腐心. 이를 갈며 억울해 하는 마음)을 씻어버리고 열반묘심(涅槃妙心. 번뇌를 잊고 깨달음을 얻은 마음)을 얻었다는 의미로 얘기했다.

(계속)
 
전두환이 과연 묘심을 얻었는지는 의문이다. 전두환은 회향법회 당시 6공 청와대를 겨냥한 폭탄이 나흘 뒤에 터지도록 사전 매설해 두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노태우가 격노했다는 폭탄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 기사의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8989 

 

더중앙플러스 ‘노태우 비사’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66

전두환 대국민사과 하루 전…딸 효선 “노태우 용서되세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7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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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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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8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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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3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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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0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