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첫 공략' 쾌거에도...'新원전시대' 수출 주도권 확보 갈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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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기자 사진 김원 기자
가동 중인 체코 두코바니 원전 1~4호기.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가동 중인 체코 두코바니 원전 1~4호기.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수력원자력을 주축으로 한 ‘팀 코리아’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수주를 확정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이어 두 번째 원전 수주 성공이자, 세계 원전시장의 중심인 유럽에 처음으로 ‘팀 코리아’ 깃발을 꽂은 쾌거다.

체코 정부는 이날 한국수력원자력과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최종 계약을 오는 7일에 체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총 예상 사업비는 약 26조원(4000억 코루나) 규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현재 연간 650억 달러 규모인 세계 원자력 발전 투자가 오는 2030년까지 연간 700억~15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AI(인공지능) 혁명이 촉발한 전력 수요 급증 등의 영향이 당분간 지속할 것이란 예상에서다. ‘신(新)원전시대’라 불릴 만큼 원전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당장 체코를 비롯해 폴란드·불가리아·터키·영국·네덜란드 등이 새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에서 추진 중인 원전 프로젝트는 총 186개인데, 이 중 약 38%가 유럽에 몰려있다. 사우디아라비아·베트남·카자흐스탄 등도 원전 확대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체코 원전에서 얻은 ‘팀 코리아’의 성과가 향후 수출 확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국은 원전 사업의 최대 걸림돌인 공사기간(온 타임·on time)과 예산(위딘 버짓·within budget) 준수로 수주 경쟁력을 높이고 있지만, 마진(순익)이 크지 않은 ‘저가 수주’에 대한 우려도 그만큼 크다. 한전과 한수원으로 이원화된 원전 수출 판로도 불안요소다. 2000년 분사한 한전과 한수원은 그동안 원전 수출 기능을 나눠 가졌다. 


하지만 두 회사는 원전 주도권을 놓고 수시로 갈등을 빚었다. 당장 바라카 원전 당시 함께 참여한 한전과 한수원은 추가 비용 지급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한수원으로 수출 역량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UAE 바라카 원전 수주 등으로 쌓은 한전의 원전 노하우를 무시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와 관계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수원·한전은 웨스팅하우스와 지난 1월 전격적으로 지식재산권 분쟁을 해소했다. 원전 강국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협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양측은 지재권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지만, 유럽 수주는 웨스팅하우스가 주도하고, 한국은 중동·동남아 등 수주에 집중하는 식으로 합의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실제 한수원은 지재권 협상 타결을 전후로 스웨덴·슬로베니아·네덜란드 등 유럽에서 진행하던 원전 수주 활동을 중단했다. 또 다른 원전업계 관계자는 “이유가 어떻든 원전에 대한 활용도가 높은 유럽 시장에서의 잇단 철수는 납득하기 어렵고, 전반적인 수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전력이 5일 한전과 UAE원자력공사(ENEC)의 합작투자로 설립된 바라카원전 운영사(Nawah Energy)의 UAE 바라카원전 4호기가 성공적으로 상업운전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바라카원전 4호기 모습.(한국전력 제공)2024.9.5/뉴스1

한국전력이 5일 한전과 UAE원자력공사(ENEC)의 합작투자로 설립된 바라카원전 운영사(Nawah Energy)의 UAE 바라카원전 4호기가 성공적으로 상업운전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바라카원전 4호기 모습.(한국전력 제공)2024.9.5/뉴스1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수원의 주력 노형은 APR1400이고, 이번 체코에 수출한 것은 APR1400에서 출력을 줄이고, 안정성을 개선한 APR1000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APR1400이 최초로 표준 설계 인증을 받은 건 2001년으로, 사실상 1990년대 기술”이라며 “APR1400 이후 노형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팀 코리아’는 지난해 7월 체코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는데, 이후 웨스팅하우스·EDF(프랑스전력공사)와 분쟁, 체코 정부의 ‘60% 현지화율 목표’ 요구 등으로 최종 결정이 예정보다 2개월가량 미뤄졌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기술력에서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우수했는데, 외교 역량의 부족이 체코 수주 과정에서 도드라졌다”며 “경쟁국들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자금 조달 등에서 강점을 보이는데, 수출 확대를 위해선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