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거짓말' 기준 바꾼 대법 "피고인 아닌 유권자 관점"

1일 대법원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은 법리가 엇갈렸던 ‘정치인의 거짓말’에 대한 처벌 기준을 선거인 즉 유권자의 관점에서 재정립했다는 의미가 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유권자의 전체적인 인상”을 중시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인 서울고법은 “표현의 자유와 피고인의 이익”을 강조하며 무죄로 뒤집었는데, 대법원이 1심 해석을 기준으로 못 박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비전형 노동자 간담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성룡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비전형 노동자 간담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성룡 기자

대법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날 선고 초반부터 “허위사실 공표는 표현의 객관적 내용과 전체 취지,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문구 연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 표현이 유권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원칙을 강조했다. 법조계에선 “재판부마다 들쭉날쭉하던 처벌 기준이 이번 기회에 정리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법, “이재명 허위 발언 허용될 수 없다”…1심 유죄 판결 판박이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고한 87쪽 판결문에서 12명 대법관 중 10명이 다수의견(유죄 파기환송)에 섰다. 1·2심에서 유무죄가 뒤집힌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의 골프 발언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은 국토교통부 협박에 따른 것”이라는 발언이 쟁점이 됐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먼저 “국민의힘이 제가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확인해 보니까 단체사진 중 일부를 떼내 가지고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2021년 12월 29일, 채널A)란 발언을 두고 대법원은 “이 후보는 김문기 등과 함께 간 해외 출장 기간 중에 김문기와 골프를 친 것이 사실이므로 이 골프 발언은 골프 동반의 교유 행위에 관한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될 무렵 대장동 특혜 의혹이 확산되고, 김문기와 피고인 간의 관계가 문제됐다”며 “피고인과 김문기, 유동규 3인의 골프 동반은 사교적 교유 행위인 점에 비추어 볼 때 의혹과 관련 유권자 판단에 영향을 주는 독자적 사실로서 주요한 사실이지 인식의 보조적 논거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해석은 2심이 골프 발언을 두고 “원본 중 일부 떼어놓은 것이라고 해서 조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조작’이란 표현이 사진이 편집된 점을 의미했을 수 있다고 해석한 것과 전면 배치된다. 2심은 “김문기 몰랐다” 등 다른 발언들과의 연관성을 쪼갠 채 문장을 해석하고 “다른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면, ‘의심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봤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2심이 엇갈렸던 “국토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2021년 10월 19일 경기도 국정감사)는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은 1심처럼 해당 발언이 “유권자들에게 ‘국토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까지 해서 이 후보가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하게 용도지역을 상향하게 되었구나’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용도지역 상향은 성남시가 자체적 판단에 따라 추진한 것이었고, 국토부는 ‘용도지역 변경은 성남시가 적의 판단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공문으로 분명하게 회신했다.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그런데도 이 후보는 이에 명백히 배치되는 허위의 발언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역시 “백현동 관련 발언을 접하는 일반 유권자의 관심도 백현동 부지에 집중돼 있었다” “국정감사에서 질의자가 제시한 패널과 질의 모두 백현동 부지의 용도지역 상향과 관련된 것이었다”는 당시의 상황적 맥락을 고려해 “따라서 이 발언은 전체적으로 백현동 부지의 용도지역 상향 과정과 그 원인을 설명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판단에 근거했다.

그러면서 이를 무죄로 판단한 2심을 향해 “백현동 관련 발언의 의미를 왜곡하여 이를 전제로 판단한 잘못이 있다”며 “이 발언의 내용은 모두 구체적 사실을 포함하는 진술로서 사실의 공표이지 단순히 과장된 표현이거나 의견 표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고 꾸짖기도 했다. 2심이 무죄 논리로 “과장한 표현일 수는 있지만 허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대법원 그러면서 “골프ㆍ백현동 관련 발언은, 이 후보의 공직 적격성에 관한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중요한 사항에 관한 허위사실의 발언이라고 판단되므로, 후보자의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허용될 수는 없다”며 “공직을 맡으려는 후보자가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국면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지니는 의미와 그 허용 범위는, 일반 국민이 의견과 사상을 표명하는 경우와 같을 수 없다”고 밝혔다.

권순일 전 대법관. 연합뉴스

권순일 전 대법관. 연합뉴스

 

5년 전 李 살린 ‘권순일 판례’…이번엔 안 먹혔다

이날 선고는 허위 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기준이 일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다. 특히 정치인 표현의 자유가 본격 확대된 2020년 7월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무죄 취지 파기환송(최종 무죄) 판례인 이른바 ‘권순일 판례’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권순일 판례는 이 후보가 과거 “친형을 강제입원시킨 적 없다”는 취지 발언으로 2심에서 유죄를 받았다가 2020년 7월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대법원 판례를 말한다.

권순일 당시 대법관 등은 “단정하기 어려운 표현의 경우 원칙적으로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는 이후 정치인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판례 물꼬를 텄다. 지난해 10월 이학수 정읍시장 공직선거법 사건 때도 대법원은 권순일 판례를 인용해 “의견 표명에 불과하고, 상대 후보는 반박·해명할 기회가 있었다”며 무죄 취지 파기환송했고 최종 무죄 판결이 났다. 

지난 3월 이 후보의 2심 재판부도 정읍시장 판례를 6차례 언급하면서 법조계 일각에선 “5년 전 이 후보를 살린 판례가 이번에도 이 후보를 살릴 것”이란 분석도 나왔는데, 결국 유권자의 관점이 중시된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표현의 의미는 후보자 개인이나 법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며 “발언이 이루어진 당시의 상황과 발언의 전체적 맥락에 기초하여 일반 유권자에게 발언의 내용이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기준으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