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남희 머지플러스 대표가 2021년 12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으로 출석하고 있는 모습. 뉴스1
대규모 환불 중단 사태로 1000억원 규모 피해를 일으킨 선불 할인 서비스 ‘머지포인트’의 권남희 머지플러스 대표가 2일 가석방됐다. 머지포인트 피해자들은 “아무런 피해 회복 조치가 없었는데 가해자는 금세 풀려났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법조계에 따르면 권씨는 지난달 ‘부처님오신날 기념 가석방심사’ 대상자에 올라 적격 판정을 받았다. 앞서 권씨와 동생 권보군 최고전략책임자(CSO)는 2020년 5월부터 2021년 8월까지 회사 적자 누적으로 사업이 중단 위기에 처했는데도 소비자 56만8000명에게 선불충전금 ‘머지머니’ 2519억원가량을 판매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2023년 10월 권 씨와 권 CSO에게 각각 징역 4년, 징역 8년과 53억원 추징 명령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가석방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난 수형자가 심사를 신청하고,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적격 여부를 판단해 결정한다. 권씨의 경우 양호한 수감 생활 태도 등 요건을 갖추면서 가석방 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반발은 크다. 피해자 측 집단 소송 등을 주도해온 조모씨는 “검찰이 집계한 머지머니 구매자 피해액은 751억원, 제휴사 피해액은 253억원으로 총 1000억원이 넘는다”며 “소비자들은 환불조차 제대로 못 받았는데 대국민 사기범은 금방 풀려났다”고 강조했다. 머지포인트 피해자 단체 오픈 채팅방에서도 권씨 석방에 대해 “사기꾼에만 관대한 나라” “국민 법감정과는 딴판이다” 등 격앙된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 피해자는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권씨의 가석방 취소 민원을 넣겠다고도 했다.

2021년 '대규모 환불 사태'를 일으킨 머지포인트. 연합뉴스
머지포인트 사태가 터진 지 4년 가까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이 선불금 등을 돌려받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 300명이 운영사 머지플러스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권씨 남매와 머지플러스 등은 피해자들에게 수십만원~100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권씨 남매는 재정 상당 부분을 탕진해 이를 이행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파악됐다.
이에 피해자들은 비교적 지급 여력이 있다고 본 티몬·위메프 등 통신판매중개업자들이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지포인트와 같은 불안전한 상품권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판매했단 이유에서다. 한국소비자원은 2022년 6월 집단분쟁 조정을 신청한 피해자 5467명의 주장을 받아들여 통신판매중개업자들도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분쟁조정 결정을 내렸지만, 구속력은 없었다.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도 티몬과 위메프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티메프 결제 대행사 한국정보통신 이용 피해자 모임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앞에서 집회를 갖고 한국정보통신의 환불과 해명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이커머스 시장의 지각변동이 본격화하는 만큼 차기 정부에선 반드시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 출신 변웅재 변호사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 가장 기초적인 법안이라 할 수 있는 전자상거래법 등 법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며 “민·관·정 차원의 깊이 있는 시장 조사를 시작으로, 플랫폼별 자격 요건과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온라인 구매자에겐 판매자 정보를 투명하고 광범위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정환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자본을 갖추지 못한 온라인 사업자가 선불금을 끌어들인 뒤 부도를 내더라도 법적 처벌이 부족한 사례가 일종의 ‘사기 메커니즘’처럼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국 등 선진국에선 소비자의 선불금을 예금자 보호 기구에서 100% 분리·보관한다”며 “이커머스 사업자가 선불금을 자기 운영자금으로 쓰지 않도록 전자금융거래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