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극우에 '좌표' 찍힌 월츠 경질…후임은 골프친구? 외교책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을 사실상 경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월츠 보좌관을 돌연 주유엔 대사로 지명한 뒤, 그의 자리를 마코 당분간 루비오 국무장관이 겸직하도록 했다. 인사 통보는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몇줄짜리 글로 이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국가 기도의날 행사에서 종교의 자유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눈을 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극우 진영의 경질 요구를 받아온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을 사실상 경질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국가 기도의날 행사에서 종교의 자유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눈을 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극우 진영의 경질 요구를 받아온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을 사실상 경질했다. EPA=연합뉴스

 
월츠 보좌관은 ‘미국 최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노선과 달리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해온 전통적 보수 공화주의자로 꼽혀온 인물로, 극우 진영에선 그를 ‘네오콘’으로 칭하며 줄곧 경질을 요구해왔다.

‘시그널 게이트’가 원인?…헤그세스는 건재

 
월츠 보좌관 경질의 직접적 배경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후티 공습 계획 등 군사 기밀을 민간 메신저 ‘시그널’ 채팅방에서 논의한 이른바 ‘시그널 게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난 2월 24일 마이크 월츠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월츠는 극우진영의 사퇴 압박을 받아온 끝에 1일(현지시간) 주유엔 대사로 지명되며 안보보좌관직에서 사실상 경질됐다. 반면 이른바 '시그널 게이트'에 연루된 헤그세스 장관에 대한 경질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월 24일 마이크 월츠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월츠는 극우진영의 사퇴 압박을 받아온 끝에 1일(현지시간) 주유엔 대사로 지명되며 안보보좌관직에서 사실상 경질됐다. 반면 이른바 '시그널 게이트'에 연루된 헤그세스 장관에 대한 경질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 AFP=연합뉴스

 
CNN은 “시그널 게이트 이후 백악관 내에서 월츠는 영향력 대부분을 잃었고, 백악관 참모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등 입지가 불안해진 상태였다”고 전했다. 실제 월츠 보좌관은 지난달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 유세 때 헬기편으로 앤드루스 합동기지까지는 동행했지만, 다른 참모들과 달리 전용기에 타지 못했다.

월츠 보좌관과 함께 그의 참모인 알렉스 웡 부보좌관 역시 경질 대상이 될 거란 관측이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월 부보좌관에 대한 인사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폭스뉴스는 월츠와 웡의 경질을 사실상 기정사실로 보도하며 “두 보좌관 외에 추가로 해고되는 참모들이 있을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인 발언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악관 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1분 플로리다로 출발하기 위해 전용 헬기에 오르면서 기자들에게 월츠 보좌관의 경질 이유에 대한 ‘큰 소리의 질문(shouted questions)’을 받았지만,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극우 마가’ 백악관 초청 후 “훌륭한 애국자”

 
외교가에선 이번 인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의 선명성을 보다 강하게 하려는 조치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나온다. 특히 관세 정책 등으로 지지율 하락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정책에서도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극우 '마가주의자'로 불리는 로라 루머가 지난해 9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 참석을 위해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초 백악관을 방문해 월츠 보좌관 등에 대한 경질을 요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NSC 직원 중 일부를 실제로 경질한 데 이어, 이날 월츠 보좌관을 주유엔 대사로 지명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극우 '마가주의자'로 불리는 로라 루머가 지난해 9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 참석을 위해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초 백악관을 방문해 월츠 보좌관 등에 대한 경질을 요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NSC 직원 중 일부를 실제로 경질한 데 이어, 이날 월츠 보좌관을 주유엔 대사로 지명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월츠 보좌관의 경질이 시그널 게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정작 해당 게이트에서 군사 기밀을 자신의 가족들에게까지 누설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 대한 경질설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헤그세스 장관을 옹호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이날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초 극우 인사인 로라 루머가 백악관을 방문해 ‘NSC의 일부 참모들이 마가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경질을 요구한 뒤 NSC의 일부 직원들을 실제로 경질했다”며 “루머가 이후로도 월츠와 웡을 지속적으로 공격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 조치의 후속 조치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명확히 드러날 수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루머의 백악관 방문 이후 그를 “매우 훌륭한 애국자”로 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인사조치가 루머의 조언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면서도 “나 역시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끔 권고에 귀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초강경 극우 마가주의자로 불리는 로라 루머는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을 사실상 경질한 직후 자신의 X계정에 트럼프 대통령의 'SNS통보'를 인용해 월츠의 경질 사실을 게시했다. 로라 루머 SNS

초강경 극우 마가주의자로 불리는 로라 루머는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을 사실상 경질한 직후 자신의 X계정에 트럼프 대통령의 'SNS통보'를 인용해 월츠의 경질 사실을 게시했다. 로라 루머 SNS

 

후임자도 없는 경질…후임은 골프 친구? 외교 책사?

 
월츠 보좌관의 경질은 급박하게 결정됐을 가능성이 있다. 월츠 보좌관은 이날 오전 8시경 폭스뉴스의 인터뷰에 응하는 등 평소와 다름 없는 일정을 소화했다. 인터뷰 직후 일부 언론을 통해 경질설이 불거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2시 16분 SNS에 그의 주유엔 대사 지명 사실을 알렸다. 루비오 장관에게 겸직을 맡긴 채 후임자도 없이 이뤄진 통보였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NSC를 누가 이끌지 불분명하다”면서도 “유력한 후보는 중동 특사를 맡고 있는 스티브 위트코프”라고 보도했다. 그는 외교 경험이 전무한 유대계 부동산 사업가로 지난해 9월 2차 암살시도 때 함께 골프를 치던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골프 친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국가 기도의 날 행사에 참석해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국가 기도의 날 행사에 참석해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폴리티코는 또 다른 유력 후보로 수석 정책 책임자로 초강경 이민정책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국가 안보위원회 테러 대응 담당 수석 국장 세바스찬 고르카를 비롯해 북한 및 특수 임무 대사로 임명된 리처드 그리넬 등을 거론했다.

이와 관련 루머를 비롯한 초강경 마가 지지자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초기 경질된 월츠 보좌관과 루비오 국무장관을 모두 ‘네오콘’으로 매도하며 외교안보 수장에 그리넬을 임명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월츠 보좌관이 유엔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아직 완전한 경질로 단정하기 이르다”면서도 “만약 NSC의 후임 인사에서 마가 세력을 대표하는 인사가 발탁될 경우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노선을 보다 분명히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