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투찰' 범행 공모…주한미군기지 200억대 입찰 담합 적발

경기도 평택, 동두천 등 주한미군 기지 용역 사업에서 5년여간 약 1750만 달러(약 255억원) 규모의 입찰담합을 벌인 국내 하도급 업체 11곳과 미국 입찰시행사가 적발됐다. 이들은 사전에 낙찰예정업체를 선정한 뒤 다른 업체들이 그보다 높은 가격의 견적서를 제출하는 ‘들러리 투찰’ 방식으로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김용식)는 9일 공정거래법 위반, 입찰방해 혐의를 받는 하도급 업체 대표 9명과 입찰 시행사 직원 3명 등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하도급 업체 법인과 미국 법인 2곳도 함께 기소됐다. 입찰 담합에 가담한 업체 11곳은 2019년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229회에 걸쳐 미 육군공병대(USACE), 국방조달본부(DLA)에서 발주하는 주한미군 시설관리 및 물품 조달하도급 용역 입찰에서 담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용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이 9일 오전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미국 법무부와의 MOU를 기반으로 공조한 주한미군 관련 입찰담합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용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이 9일 오전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미국 법무부와의 MOU를 기반으로 공조한 주한미군 관련 입찰담합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낙찰예정자 사전 합의 후 나머지 업체 들러리 

검찰에 따르면 미 육군공병대 발주 입찰에서 A업체, B업체 대표와 C업체 운영자 등은 주한미군 병원 시설 관리 하도급 용역에서 B업체를 위해 들러리 견적서를 투찰하는 방법으로 입찰을 방해했다. 이들은 들러리 업체 명의의 견적서까지 낙찰 예정 업체가 직접 작성해 제출하는 수법을 썼다. 병원 시설에 대한 전기 배선 교체, 건물 벽·바닥 공사 등 유지 보수 용역 과정에서 총 134건, 약 80억원 규모의 입찰에서 이같은 범행이 이뤄졌다. 하도급 업체들은 낙찰 과정 현장 실사에도 실제 직원이 아닌 타 업체 직원을 위장해 참석시키는 등 서류와 절차 전반을 조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러한 담합 상황이 담긴 이메일과 메시지 등을 다수 확보했다. 

입찰 시행사인 L법인이 진행한 미 국방조달본부 발주 입찰에서도 A업체 대표 등과 입찰 담당자는 사전에 낙찰 예정자와 투찰가격을 합의했다. 이들은 주한미군 각 기지에서 의뢰하는 물품 조달 및 LED, CCTV 등 설치 용역 총 95건(약 175억원 규모)에서 이같은 수법을 반복했다. L법인 한국사무소 직원 3명은 A 업체 등과 공모해 A업체가 통보한 들러리 명단에 따라 실사를 제한적으로 실시하기도 했다. 또 L 법인 한국사무소 책임자는 A업체가 낙찰받거나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A업체의 견적금액을 조정했다.


주한미군 하도급 용역 입찰 구조. 사진 서울중앙지검

주한미군 하도급 용역 입찰 구조. 사진 서울중앙지검

 

2020년 MOU 이후 한·미 첫 공조 수사 

이 사건은 미국 검찰, 법무부 반독점국 간 ‘반독점 형사집행 MOU’에 기반해 한미 양국에서 병행적으로 수사가 진행된 최초 사례다. 미국 검찰이 2022년 수사에 착수한 뒤 지난해 3월 국내 하도급 업체 대표들을 기소하면서 한국 검찰과 공조 수사 논의가 본격화됐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8월 미국 법무부로부터 수사 검토 요청을 받고 수사첩보를 서울중앙지검에 송부했다. 검찰은 미 법무부와 출장 회의, 각국의 증거를 수집하는 등 9개월여간 수사를 진행해 왔다. 

김용식 공조부장은 “그간 한미 간 수사에 필요한 사항들은 형사사법 공조절차를 통해 진행하기도 했지만 미국 법무부 자료를 이첩받아 한국에 수사의뢰한 건 처음”이라며 “MOU를 맺은 지 4년 만에 첫 번째 사례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생긴 것 만으로 큰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한미 간 수사 공조체계를 견고히 유지하고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