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6일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승강장에서 중장년층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까지 상향해야 한다. 새 정부에서 이 제안을 반영해주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 노인 연령 관련 논의에 참여해온 전문가들이 9일 서울 중구 KG타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런 ‘사회적 제안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그간 노인 연령을 올려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 지속됐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다”며 “우리는 심도 있는 토론과 고민 끝에 70세로 올리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날 제안에 나선 전문가들은 지난 2월 보건복지부 주도로 꾸려진 ‘노인연령 전문가 간담회’에 참여해온 이들이다. 대한노인회·한국노년학회·한국소비자연맹 등의 유관 단체와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이들은 대선을 앞두고 지난 3개월 동안 6번의 간담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정리해 발표했다.
현재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노인 연령 기준인 65세는 44년 동안 유지돼 왔다.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의 경로우대 조항에서 처음 비롯됐다.
이후 기초연금·노인장기요양보험 등 각종 복지제도도 이 기준에 맞춰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평균 수명 연장 등의 변화에 맞춰 노인 연령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10월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이 75세까지 상향을 제안하면서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고, 복지부도 올해 주요업무로 ‘노인연령 상향’을 꼽았다.
“현재 70세 건강, 10년 전 65세 수준”

9일 서울 중구 KG타워에서 ‘노인연령 전문가 간담회’에 참여해온 10명의 전문가들이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까지 상향해야 한다″는 사회적 제안을 발표했다. 남수현 기자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조정이 시급한 이유로 고령화에 따른 노인 부양 부담 증가를 꼽았다. 간담회 위원장을 맡은 정순둘 교수는 “이번 논의를 촉발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는 점”이라며 “미래세대의 부양 부담이 늘어나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져 이제는 정말 노인 연령 기준이 조정돼야 할 때라는 생각에 제안문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70세가 적절한 근거로는 노년층의 건강 수준과 인식조사를 제시했다. 이윤환 한국노년학회 회장(아주대 의대 교수)은 “신체적·인지적·사회적 기능 등 종합적인 기능 상태를 나타내는 ‘건강 노화 지수’를 분석한 결과 현재 70세가 10년 전 65세의 (기능) 수준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1~9일 전국 50~64세 15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에서도 노인 연령 기준 상향에 동의하는 응답자들은 69.8세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별·단계적 상향” 강조

김영옥 기자
복지 축소 등을 우려해 노인연령 상향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실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상향할 것을 강조했다. 가령 노인빈곤과 직결되는 기초연금의 경우 수급 개시 연령(현재 65세)을 5년 뒤 처음 66세로 올리고, 이후 2년마다 1세씩 올려 2040년 70세에 도달하도록 속도 조절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면 법정 정년(60세)부터 노령연금 수급까지 공백이 길어지는 등 소득 단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주된 일자리의 고용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날(8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발표한 ‘65세까지 계속고용 의무화’ 방안에도 전문가들은 공감을 표했다. 경사노위는 법정 정년은 현행 60세를 유지하되,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기업에 65세까지 근로자 고용 의무를 지우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사노위와 우리가 같이 논의를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한 방안이 도출됐다”며 “노인 연령 상향에 앞서 노동시장에서 고용 기간을 연장하는 제도가 먼저 시행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사회적 인식을 같이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하철 무임승차 등 경로우대제도에 대해서도 “연령 기준을 상향하되, 소득·재산·지역 등을 고려해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 교수는 “많은 분의 우려처럼 노인 빈곤이나 불충분한 노후 준비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제도별 특성을 고려해 노인 연령 기준을 올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