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서 北 장성 끌어안은 푸틴...김정은은 평양서 "불패 동맹" 강조

러시아의 전승절(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인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전 북한군을 지휘한 북한군 장성들을 만나 치하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주북 러시아 대사관을 찾아 "불패의 동맹"을 강조했다. 북한이 전승절 행사에 김정은이 불참한 것은 물론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으면서 이상 징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이를 불식하기 위한 과시용 행보로 보인다.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영복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군 상장)을 끌어안는 모습. TVBS  화면 캡처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영복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군 상장)을 끌어안는 모습. TVBS 화면 캡처

푸틴, 참전 北 장성 끌어안고 악수 

이날 러시아 크렘린 텔레그램 채널 등에 따르면 푸틴은 승전 기념 연설과 군사 퍼레이드가 끝난 뒤 광장으로 내려와 도열한 러시아군 주요 지휘관 등과 악수했다. 마지막 순서로 북한군 대표단 5명 및 신홍철 주러 북한 대사와 일일이 악수했다. 

이들은 다소 긴장한 듯 관등성명을 댔다. 푸틴에 "당신을 만나뵙게 돼 영광입니다"라고도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5명 중 3명은 국정원이 쿠르스크에 파병된 북한군을 이끄는 지휘관으로 지목한 김영복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상장), 이창호 정찰총국장(상장), 신금철 인민군 소장으로 식별됐다. 앞서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의 스톰 섀도우 미사일 공격으로 북한군 장성 1명이 크게 다쳤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3명 모두 건재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더해 중장 2명이 이번에 새로 등장했는데, 영상을 보면 2명 중 1명은 "총참모부 525군부대 중장 김명철"이라고 관등성명을 대는 것으로 들린다. 통일부는 이 인물을 김명철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으로 추정했다. 다른 1명은 자신을 "국방성 제1부상"으로 소개했는데, 통일부는 명확히 신원을 알기 어렵다고 일단 판단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군인들과 차례로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복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군 상장), 이창호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정찰총국장(상장), 불상(중장), 김명철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중장), 신홍철 주러시아 북한 대사. TVBS 화면 캡처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군인들과 차례로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복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군 상장), 이창호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정찰총국장(상장), 불상(중장), 김명철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중장), 신홍철 주러시아 북한 대사. TVBS 화면 캡처

 
푸틴은 김영복에 "당신의 전사들에게 좋은 일들이 있기를 바란다"며 악수를 청했고, 김영복은 전승절을 축하한다며 "대통령님의 높은 평가에 사의를 표한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포옹도 했다. 

푸틴은 앞선 연설에서 "온 나라와 모든 국민이 '특별군사작전'에 참전한 이들을 지지한다"고 했는데, 이 역시 쿠르스크 탈환을 도운 북한군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진정한 전우…백년대계 관계" 

이날 오전 김정은은 평양의 주북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조로(북·러)관계의 오랜 전통과 숭고한 이념적 기초, 불패의 동맹관계를 끊임없이 공고발전시켜 나가려는 우리 당과 정부와 인민의 확고부동한 입장"을 천명했다.

이날 보도는 김정은을 수행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발표하는 이례적 형식을 통해 격을 갖췄다. 또 러시아 현지에서 열병식이 시작되는 시간(한국 시간 오후 4시)에 맞춰 이날 오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는 이번 방문이 "새 시대에 진정한 전우관계, 백년대계의 전략적 관계로 승화된 조로 친선의 위력으로 두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 인민의 평안과 행복,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적극 도모해 나가려는 강렬한 의지의 뚜렷한 과시"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선희는 "나는 이를 두 나라, 두 인민 사이의 관계 발전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시각으로 간주한다"며 "평양과 모스크바는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9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맞아 딸 주애와 함께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9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맞아 딸 주애와 함께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처럼 모스크바에서는 푸틴이, 평양에서는 김정은이 직접 나섬으로써 북·러 혈맹에 균열은 없다는 점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이전에도 다른 나라의 주북 대사관에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조의 표명이 목적이었지 이번처럼 정치·외교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다만 이것만으로 양국 관계 발전에 "특기할 사변적인 시각"이라고 최선희가 과하게 의미 부여를 한 것은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번 전승절에 북한이 극진한 예우 대신 적절한 수준의 축하 형식만 갖췄다는 걸 스스로 의식해 김정은의 행보를 과하게 부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9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을 맞아 주북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해 축하 연설을 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9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을 맞아 주북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해 축하 연설을 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혈맹 부각하더니 제한적 참여

실제 이번 러시아 전승절에서 파병까지 한 북한의 존재감은 최근 양국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는 흐름에 비하면 의외로 미미했다. 김정은이 직접 모스크바를 방문해 북한군의 공로를 과시하는 파격적인 행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외교가에서 올해 초부터 제기됐고, 북·러가 최근 파병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면서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김정은은 '최고지도자는 다자 무대에는 서지 않는다'는 관례를 우선시해 전승절에 불참했다. 또 서열 2위인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파견도 막판에 철회했다.

전례와 비교해도 북한이 이번 러시아의 열병식을 사실상 홀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5년(70주년 전승절)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모스크바에 보냈다. 이번에는 본국에서 파견한 고위급이 없다. 현지에 파병돼 있던 북한군 장성들이 열병식을 지켜보긴 했지만, 다른 외국군처럼 퍼레이드에서 행진하지는 않았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러시아의 조국전쟁승리 80돌 즈음해 우리나라 주재 러시아대사관이 지난 8일 저녁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연회를 마련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러시아의 조국전쟁승리 80돌 즈음해 우리나라 주재 러시아대사관이 지난 8일 저녁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연회를 마련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사랑하는 따님" 김주애 동행 

한편 북한은 김정은의 주북 러시아 대사관 방문을 김정은의 딸 주애의 외교무대 데뷔전으로 활용했다. 주애는 남색 정장 차림으로 동행했는데, 공식 외교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통신은 주애를 가리켜 "가장 사랑하는 따님"이라고도 일컬었다. 북한 매체에서 주애를 호명한 건 7개월 만인데, 지난 10월 창당 79년 경축연회에서는 주애를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표현했다.

특히 김주애가 배석한 자리에서 김정은이 "백년대계의 전략적 관계"를 강조한 것과 관련해 북·러 관계가 백두혈통 4대 세습이 이뤄진 이후까지도 굳건히 이어지길 바라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북한은 전날에도 평양 양각도국제호텔에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대사가 개최한 전승절 기념 연회에 노광철 국방상,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최선희 외무상 등 최근 북·러 관계에 깊이 관여해온 핵심 인사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