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40대 교사 A씨는 2021년 6~8월 자신이 근무하는 서울 영등포구 한 중학교 교실에서 개당 50만원 상당의 고가 CPU 26개를 떼어낸 뒤 4만원짜리로 바꿔 달아 해임 처분됐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으로 교실이 상당수 비어 있는 틈을 노렸다. 이렇게 훔친 26개 중 25개는 중고로 팔았다.
학교 측은 이듬해 PC 기능이 저하돼 수리를 의뢰했다가 바꿔치기 사실을 알게 됐다. 경찰이 바꿔치기된 저가 CPU의 국내 유통과정을 역추적하면서 전년도까지 이 학교에 근무했던 A씨 덜미가 잡혔다. A씨는 개인 투자 실패로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 조사에서 시인했다. 절도죄로 기소된 A씨는 2023년 12월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을 확정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 위반,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A씨를 해임했다. 이에 A씨는 “해임은 부당하다”며 시교육청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죄를 자백했고, 설치비용 1000여만원을 학교에 지급했다. 교장이 합의서를 작성해준 점 등을 고려하면 해임 처분은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 강재원)는 A씨가 낸 해임처분취소 소송에서 A씨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범행 횟수 및 피해 금액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A씨가 절도한 CPU는 학생들의 수업을 위해 제공된 것으로 A씨 행위로 인해 학생들의 학습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했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A씨는 “경제적 곤궁 상태에 놓인 여자친구를 돕고자 절도하게 됐다. 여자친구와 결혼 후 CPU를 원상복구하려 했으나 2022년 발령이 나 시기를 놓쳤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는 범행 2년이 지나도록 CPU를 되돌려 놓지 않았고, 절도 수사가 진행되고 나서야 범행을 시인했다”며 이같은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봤다. 교장이 써준 합의서에 대해서는 “형사사건에 대한 합의 의사를 표시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교육공무원의 비위행위는 본인은 물론 교원 사회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킬 우려가 있는 점에서 더욱 엄격한 잣대가 요구된다”며 “A씨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가 해임 처분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교원 사회의 기강 확립 및 교원사회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 등과 같은 공익상의 필요보다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