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브랜드 카스의 디자인 모티브인 캐스케이드 폭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모습. 오비맥주
푸른 조명 아래 보글보글 탄산 소리, 그리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맥주. 지난 4월 공개된 서울 성수동의 한 공간이 단번에 소셜미디어(SNS) ‘핫플’로 떠올랐습니다. 이곳은 브랜드 리뉴얼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카스의 팝업스토어 ‘카스월드’였죠. 브랜드명이 영어 단어 ‘Cascade(폭포)’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착안한 공간 연출이 눈길을 끌었는데, 청량함과 신선함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오감으로 풀어낸 결과, 10일간 2만명 가까이 찾았다고 해요. 인스타그램에 관련 게시물만 1000여개가 넘고요.
단순히 “이 술을 마셔보세요”를 외치던 모습은 이제 옛말이 됐습니다. 식당과 술집을 돌며 시음 이벤트나 프로모션을 여는 ‘푸시형 마케팅(영업 판촉)’에서 벗어난 주류 브랜드는 술집 밖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CX(고객 경험) 설계가 중요해지면서 소비자 일상 한가운데 파고드는 팝업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이 새로운 마케팅의 변화를 비크닉이 들여다봤습니다.
카스월드 팝업 현장. 리브랜딩 디자인 모티브를 시각화한 라이프스타일 굿즈 등을 통해 브랜드 리뉴얼을 오롯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선보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오비맥주
요즘 MZ세대는 ‘어떻게 마시느냐’보다 ‘어디서, 어떤 경험으로 마시느냐’에 집중해요. 그리고 이른바 ‘경험 마케팅’의 선봉에 팝업 스토어가 있죠. 짧은 기간 내 남다른 체험 기회를 주는 오프라인 행사는 젊은 세대의 주목도를 이끌어내는데 큰 효과를 만들었어요. 실제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팝업은 브랜드 각인(76.6%)과 충성 고객 확보(63.2%)에 효과적인 방식으로 인식됐어요. 생소한 브랜드를 처음 접한 비율도 2023년 46.2%에서 지난해 52%로 증가했어요. 지역 소주 브랜드 ‘선양소주’는 성수동에서 두 차례 팝업을 열어 이 효과를 톡톡히 봤죠.
GS25가 지난해 4월 도어투성수에서 진행한 선양소주 팝업 현장. GS25
주류 팝업의 효과는 유통 채널도 바꾸고 있어요. GS25는 2022년부터 브랜드 쇼룸 형태의 ‘도어투성수’를 운영하며 원소주·기네스·잭다니엘 등 30여개 주류 브랜드 팝업을 유치했어요. 소비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구성으로 브랜드들이 공간 자체를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하게 한 덕이죠. 최송화 GS리테일 브랜드마케팅팀 매니저는 “성수동이라는 입지적 강점과 매장 전면에 위치한 대형 전시 부스 등 전용 시설과 외부 테라스와 충분한 시음 공간이 주효했다”고 덧붙였어요. 지난 4월 9일부터 16일까지 열린 ‘기네스 나이트로서지’ 팝업 결과, 일주일간 해당 제품의 매출이 직전 동기 대비 73.1%나 뛰었어요. ‘어디서나 생맥주의 느낌을’이라는 콘셉트를 공간 안에 구현해낸 덕이었죠.
왜 채널까지 움직였을까요. 수만 명이 모이는 대형 오프라인 축제도 좋지만, 인스타그램에 퍼질 만한 ‘작은 공간’이 더 효과적인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한정성과 희소성 덕에 자발적인 SNS 확산이 이뤄지고,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바이럴 효과를 얻죠. 직접 노출이 어려운 술 광고 대신 ‘체험’과 ‘스토리’로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각인하는 효과는 덤이고요.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팝업을 다녀오면 ‘혼술’하는 순간 등 일상에서도 그 경험이 연결된다”며 “소비자는 새로운 경험을 원하고 브랜드는 브랜딩을 원하는데 이 욕망이 맞닿는 지점이 바로 팝업”이라고 분석했어요.
더 깊이, 더 몰입되게…‘세계관 체험’으로 확장
가장 신선한 상태의 제품을 시음한다는 콘셉트의 카스월드 팝업 내 약수터 공간. 김세린
주류 팝업은 제품 노출만이 아닌 ‘세계관’을 오감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진화 중입니다. 카스는 앞서 언급한 ‘카스월드’에서 세계적인 비트박서 윙(WING), 히스(Hiss)와 협업해 폭포와 차가운 맥주가 따르는 소리 등 청량한 사운드를 구현했어요. 김지용 카스 프레시팀 부장은 “브랜드 디자인 리뉴얼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공감을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공간을 탐험하듯 브랜드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설명했어요.
주류 팝업과 파인다이닝을 결합한 롯데칠성음료 새로의 '새로도원' 팝업. 김세린
젊은 층이 음주를 넘어 맛·스토리·브랜드 가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개인 취향에 맞는 술을 적당히 즐기는 ‘파인 드링킹’ 문화를 녹인 사례까지 나왔어요. 소주 브랜드 ‘새로’는 지난 3월 말부터 압구정로데오에 무릉도원에서 소주를 마시며 풍류를 즐기는 콘셉트의 ‘새로도원’ 팝업을 열었어요. 인기 요리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조서형 셰프와 협업한 ‘새로 술상’을 통해 다이닝과 주류 체험을 결합한 결과, 예약 앱 캐치테이블에서 예약 마감 행진이 이어졌죠. 신은경 롯데칠성음료 소주BM 책임은 “새로는 제품 개발 단계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단계에 MZ 세대의 감성과 취향을 반영한 브랜드”라며 “한국적 요소를 녹인 구미호 모티브의 캐릭터 ‘새로구미’로 스토리텔링을 하며 브랜드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골든블루가 유튜브 채널에 선보인 가수 이하이와의 협업 음악 콘텐트. 골든블루
잘 만든 팝업 하나는 유튜브, SNS 콘텐트, 굿즈, 리테일 협업으로 확장하고 있어요. 브랜드가 ‘멀티콘텐트 전략’에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위스키 브랜드 ‘골든블루’는 지난해 6월부터 기존의 골프장 등 행사 중심에서 벗어나, 유튜브 기반 콘텐트 마케팅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인기 인디밴드·가수들과 손잡고 음악 영상을 만들었고, 위스키에 ‘힙스터’와 ‘라이프스타일’ 이미지를 입혔죠. 골든블루 관계자는 “상업적 콘텐트에 피로감을 느끼는 MZ세대의 소비 취향에 주목한 시도이며, 브랜드 이미지를 더 젊고 활기차게 재정비하고 있다”고 했어요.
전문가들은 주류 시장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더 강조합니다. 브랜드 철학과 가치, 생산 과정 등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열쇠라는 것이죠.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글로벌 맥주 브랜드까지 들어오며 주류 브랜드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감각적인 체험형 마케팅이 대세가 되고 있다”고 말했어요. 앞으로의 주류 마케팅, 소비자 마음속에 ‘맛’만 남는 게 아니라 ‘기억’까지 남게 될지 기대해봐도 좋겠습니다.
김세린 기자 kim.ser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