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투수 김서현(21)은 올해 '소방수'라는 천직을 찾았다. 개막 일주일 만에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은 뒤 지난 20일까지 벌써 14세이브를 쌓아 올려 이 부문 선두를 다투고 있다. 20일까지 평균자책점은 0.75. 24이닝을 던지는 동안 자책점을 단 2점만 내줬다. 지난 20일 울산 NC 다이노스전에선 올 시즌 처음으로 1과 3분의 1이닝을 소화하면서 아웃카운트 4개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냈다.
세이브를 달성한 뒤 환호하는 한화 김서현. 사진 한화 이글스
만년 하위권 팀이던 한화가 올해 상위권을 지키는 데는 마무리 투수 김서현의 존재감도 한몫했다. 김서현이 세이브를 올린 14경기 중 1점 차가 5경기, 2점 차가 6경기였다. 녹록지 않은 상황을 이겨내고 팀의 뒷문을 걸어 잠갔다. 그는 "선발 투수 선배님들이 앞에서 긴 이닝을 막아주시고, 타자 선배님들이 승리에 필요한 점수를 잘 뽑아주신 덕에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라며 "나는 그냥 '뒤에서 마지막만 잘 막자'는 마음으로 나간다. 내 지분보다는 다른 선배님들의 공이 훨씬 더 크다"고 몸을 낮췄다.
김서현은 올해 KBO리그를 뒤흔들고 있는 '구속 혁명'의 선두주자다. 올 시즌 최고 시속 160.5㎞를 찍어 10개 구단 투수 중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 양상문 한화 투수코치는 "김서현은 강속구를 던지는 데 최적화된 신체조건을 타고났다"고 귀띔했다.
한화 김서현의 트레이드 마크인 승리 세리머니. 사진 한화 이글스
실제로 김서현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키가 1m78㎝까지 자랐다. 워낙 눈에 띄게 장신이라 배구부에서 영입 제의가 왔는데, "야구가 더 재밌다"는 이유로 야구부에 남았다. 현재 키는 1m88㎝이다. 중학교 때부터는 빠른 구속으로 이름을 날렸다. 2학년 때 시속 140㎞에 도달했고, 3학년 때는 시속 148㎞까지 찍었다. 그는 "처음엔 실감을 잘 못 하다가 중3 때 또래 타자들이 타이밍을 못 잡는 걸 보고 '아, 내 공이 빠르긴 한가 보다' 싶었다"고 돌이켰다.
김서현은 그 비결로 '웨이트 트레이닝 조기 교육'을 꼽았다. "남들보다 빠른 중1 때부터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한 덕분"이라는 거다. 그는 "중학교(자양중)에 들어가자마자 투수코치님이 '앞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잘하면 진짜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고 과학적으로 설명해주셨다. 그때부터 차근차근 몸을 잘 만들면서 공이 급격하게 빨라졌다"고 귀띔했다.
김서현은 2023년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뽑혀 계약금 5억원을 받고 한화에 입단했다. 그러나 지난 2년은 부침을 겪었다. 첫 시즌에는 20경기에서 1세이브, 평균자책점 7.25로 고전했다. 지난 시즌에도 초반에는 2군에 머물다 중반부터 1군에 합류해 37경기에 등판했다. 성적은 1승 2패, 10홀드, 평균자책점 3.76이었다.
올해의 김서현은 다르다. '제구되는 강속구'의 위력을 아낌없이 뽐내면서 리그 정상급 마무리투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초반 스트라이크 비율이 높아지면서 볼카운트 싸움이 유리해졌고, 그러다 보니 변화구 위력도 지난해보다 좋아진 것 같다"며 "확실히 7~8회에 나가는 것보다 9회에 나가는 게 긴장감이 더 크지만, 마무리 투수로서 루틴을 정립해나가면서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돼 야구하는 '맛'도 난다. 김서현은 예전부터 5~6일에 한 번씩 등판하는 선발 투수보다 언제든 출격을 준비할 수 있는 마무리 투수를 선호했다. 그는 "경기에 자주 나가는 걸 좋아해서 선발보다 불펜이 체질에 맞는다"며 "아직 '천직'이라 말하기엔 무리가 있는 단계지만, 성적이 점점 좋아지니 조금씩 '그런가' 싶기도 하다"며 웃었다.
한화 김서현(왼쪽)과 친형인 불펜포수 김지현 씨. 사진 한화 이글스
팀 내에 든든한 지원군도 있다. 올해 한화와 불펜포수로 계약한 친형 김지현(27) 씨다. 동생보다 먼저 야구를 시작한 김 씨는 지난해 SSG 랜더스에 육성 선수로 입단했지만, 1년 만에 방출됐다. 올 시즌부터 한화 불펜에서 동생의 공을 받으며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프로에서 못다 이룬 '형제 배터리'의 꿈을 한화 불펜에서 간접적으로 이루게 됐다. 김서현은 올 시즌 개막 전 형이 달던 44번으로 등 번호를 바꿨다.
김서현은 "형은 나를 그 누구보다 오래 봐온 가족이다. 안 좋은 부분은 직설적으로 바로바로 얘기해주니 짧은 시간 같이 훈련해도 좋은 점이 많다"며 "심리적으로 확실히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