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더워지는 날씨다.
숨이 턱턱 막히도록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 그날이 생각난다.
질리도록 진득하게 땀을 흘렸던 날이다.
악몽 같은 기억.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기보단 질리도록 진을 빼놓은 현장이었다.
그날 나와 직원은 현장에 바로 들어가질 못했다.
집 앞에서 멀뚱히 서 있는 내게 직원이 보챈다.
“먼저 들어가서 일하면 안 돼요?”
“비밀번호를 몰라. 집에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안 알려줬어.”
유품 정리 때 ‘참관’하길 원하는 가족들이 종종 있다.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숨결이 담긴 물품에 남이 먼저 손대는 게 싫어서다.
싫다기보단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라고는 짐작하지만, 사실 좀 형편이 좋았던 고인들의 경우다.
남이 먼저 손대게 하기엔 제법 귀한 유품들이 있어서, 라고도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은 태도는 아니겠지만,
그때 현장은 오래된 원룸이었다.
형편이 넉넉했던 이의 죽음으로 보긴 어려웠다.
왜 먼저 들어가지 못하게 했는지,
참관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진짜 심각한가 보네요.
밖인데도 집안에 있는 것처럼 냄새가 나요.
이웃들은 그동안 어떻게 참았지?”
현관 앞에서도 코를 찌르는 시취에 직원이 불평을 해댔다.
그 더위에 2주가 넘은 시신이 나온 현장이다.
시신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기 힘들 만큼 부패했을 게다.
고인을 수습하고도 이 정도의 냄새가 남는다.
집 앞에서 무더위 속에도 특수 마스크를 낀 채 대기했다.
이른 아침부터 콘크리트 바닥은 지글지글 끓기 시작했다.
두꺼운 마스크는 땀에 젖어 제대로 산소공급을 하지 못했다.
시취를 막아 주는 작업용 마스크는 제법 비싸다.
계속 교체하면 그 비용도 상당하다.
벌써부터 이러니 오늘 몇 개를 소진해야 할까.
일 없이 땀만 흘린 채 약속시간에서 40분은 훌쩍 더 지났다.
벌써 젖어 달라붙은 옷도 불쾌하고, 그래서 더 윙윙 달라붙는 벌레들도 짜증났다.
“저 사람들이에요?”
멀리서 대여섯 명의 사람이 보였다.
계속해서 우리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니 유가족이 맞았다.
여자 둘에 남자 셋.
여성 중 하나가 의뢰를 했던 고인의 여동생일 게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푹푹 찌는 날씨에 이렇게 기다리게 해놓고 할 말은 아니다.
나도 고운 말이 나갈 리 없기에 손목시계만 흘겨봤다.
지금이 몇 시냐는 시늉으로 불평을 대신했다.
그냥 내 말이라도 아끼고 싶었다.
“네, 날이 덥네요. 가족분들이 많이 오셨네요.”
“대표님, 저희가 작업하실 때 참관하려고요. 유품도 직접 찾고요.”
“안의 상황이 심각할 겁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저희가 먼저 정리하는 게….”
“아니에요, 직접 봐야 해요. 저희가 찾을게요.”

이지우 디자이너
무엇이 급한지 내 말도 끊었다.
그들은 우르르 몰려서 문을 열었다.
“A야, B랑 대표님 따라가.
나는 여기 입구에 있을게.
C는 직원분이랑 있고,
D는 여기 앞에 있어.”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남자가 현장을 ‘지휘’했다.
방이 몇 개씩 되는 집도 아니고 작은 원룸에서 누군 따라가고 누군 어디 있으란다.
다섯이나 되는 사람들에 우리까지 있으니 좁은 공간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더워 죽겠는데 숨도 못 쉴 시취, 부패물이 흘러내려 미끄러운 바닥, 그리고 바글바글한 사람들까지 더해지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뚜껑이 열린다’는 이런 경우를 말하는 거구나.
정말로 실감이 났다.
“서랍은 전부 그대로 빼서 현관으로 보내주세요.
제가 이 앞에서 찾고 정리할게요.”
‘지휘자’가 명령했다.
“○○아, 너는 그 하얀 농, 이불이랑 꺼내서 잘 살펴봐.”
“알았어, 알았다고….”
지휘를 받은 여성은 오빠에게 짜증을 내며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내게 의뢰했던 그 여성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지금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것은 아는 모양이었다.
이래서는 도저히 작업할 수가 없었다.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다 찾으시면 저희가 들어올까요?”
(계속)
숨 막히는 시취, 끈적한 부패물로 뒤덮인 바닥.
동생 숨진 집에서, 그 형제들이 집요하게 찾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확 집에 가버릴까” 유품정리사를 충격에 빠트린 가족의 만행.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8846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경매낙찰 아파트 시신 나왔다…해외여행 다니던 84년생 비극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8460
한여름, 어느 의사의 고독사…친형은 외제차 타고 나타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28749
“로또” 재개발 들뜬 그곳서…옆동네 청년은 눈 감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0149
“나쁜 새끼” 아내는 오열했다, 11층 아파트의 ‘피칠갑 거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7091
결혼식 잡은 첫사랑 예비부부, 장례식장 따로 옮겨진 비극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9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