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 해상에 차량을 돌진시켜 일가족 3명을 숨지게 한 40대 가장은 1억6000만원대의 채무와 생활고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범행 전 수면제를 준비하고, 범행 직후 열린 유리창을 통해 홀로 차량에서 탈출한 점 등을 토대로 계획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3일 아내와 고교생 아들 2명 등 3명을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지모(49)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지씨는 지난 1일 오전 1시12분쯤 진도항에서 승용차를 바다로 추락시켜 아내(49)와 고등학교 1·3학년 아들 2명 등 3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씨는 경찰에서 “1억6000만원 상당의 채무로 사는 것이 힘들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지씨가 “아내가 정신과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수면제를 아내와 아들들에게 먹인 뒤 바다로 돌진했다”고 자백한 점 등을 토대로 계획적인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지씨는 당초 “(가족과 함께) 나도 수면제를 먹었다”라고 했다가 “가족에게만 먹게 했다”고 하는 등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지씨는 범행에 앞서 두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교외 체험학습’을 문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지씨는 지난달 30일 학교 측에 “가족여행을 가려 한다”며 체험학습을 문의했지만, 학교 측은 “오는 4일 3학년 모의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만류했다.  

지씨는 결국 체험학습을 신청하지 않고, 지난달 30일 아들들이 하교한 뒤 함께 광주를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전남 무안군의 한 숙박시설에서 하룻밤을 묵은 지씨 가족은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저녁 늦게 사건이 벌어진 진도항에 도착했다.  


지씨는 진도로 향하던 중 목포 지역 모처에 차량을 세운 뒤 가족들에게 “영양제”라며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건넸다. 차에 탄 아내와 두 아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지씨가 건넨 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지씨는 진도항에서 승용차를 추락시킨 후 열려 있던 창문 틈으로 홀로 빠져나와 뭍으로 올라왔다.

경찰은 두 아들이 다니는 학교 측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했다. 학교 측은 두 학생이 결석을 하고, 연락도 되지 않자 지난 2일 오후 2시22분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해경과 공조해 지씨 가족의 휴대전화 위치 정보시스템(GPS)을 토대로 진도항 인근에서 신호가 끊긴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진도항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지씨의 차량이 바다에 빠지는 장면도 확보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43시간여 만인 2일 오후 8시7분쯤 진도항에서 30m가량 떨어진 바다에서 차량과 시신 3구를 인양했다. 지씨는 홀로 육지로 탈출한 뒤 건설현장 동료인 A씨(50대) 측에게 연락해 광주로 달아났다. 그는 도주 과정에서 112나 119 등을 통해 가족들의 구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확인할 방침이다.

 
지씨는 차량이 인양된 지 1시간 뒤인 2일 오후 9시9분쯤 광주 양동시장 인근 거리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지씨를 진도에서 광주까지 태우고 온 A씨도 함께 체포했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범인도피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해온 지씨는 3~4년 전부터 광주 북구의 한 원룸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해왔다. 조사 결과 지씨는 최근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빚이 늘어났으며,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지씨를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한 뒤 이날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또 아내와 아들들의 보험 가입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차량에서 수거한 블랙박스와 휴대전화 등에 대한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정확한 범행 동기와 사건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