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 몬드리안, 바실리 칸딘스키, 그리고 힐마 아프 클린트. 이 세 화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1944년,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추상화를 그렸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화폭에 음악을 옮기듯 그린 러시아의 칸딘스키, 빨강·파랑·노랑 삼원색과 직선만으로 그림을 그린 네덜란드의 몬드리안은 추상 미술의 선구자로 불렸다. 그러나 칸딘스키보다 5년 앞선 1906년 추상화를 그린 스웨덴의 힐마 아프 클린트는 최근에야 그 이름이 알려졌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대표작 '10개의 가장 큰 그림(The 10 Largest)' 중 No.2(1907). 사진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가장 앞섰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최초의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의 국내 첫 개인전 ‘적절한 소환’이 다음 달 19일부터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에서 15일까지 열리는 아시아 첫 순회전의 일환이다. 강승완 관장은 “도쿄의 전시와 구성과 도록도 다르게 한다”며 “1907년 그린 힐마의 대표작 ‘10개의 가장 큰 그림’ 시리즈도 내건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보다 8년 앞선 추상화”라고 말했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자신의 작품세계가 동시대에 이해받지 못할 거라 판단, 사후 20년간 공개 말라 유언을 남겼다. 사진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자신의 작품이 동시대에 이해받지 못할 거라 판단한 힐마는 사후 20년간 자신의 글과 그림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조카의 다락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1200점의 그림과 100편의 글이 재조명된 것은 42년 뒤. 1986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전시였다. “여자가 아니었다면 결코 이처럼 과분하게 주목받지 못했을 것”(미술평론가 힐튼 크래머)이라는 혹평 탓에 다시 전시가 열리는 데 27년이 더 걸렸다.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연 회고전 ‘힐마 아프 클린트, 미래를 위한 그림’에 60만 넘는 관객이 찾아오면서 힐마의 시대가 열렸다.
먼저 온 미래였을까. 힐마는 8월 26일 ‘강령: 영혼의 기술’을 주제로 개막하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참여작가 49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백남준, 요셉 보이스, 권병준, 하룬 미르자 등과 함께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