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사실상의 만능열쇠로 여겼던 관세 정책이 뜻대로 잘 진행되지 않는 모습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부과했던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한 데 이어, 법원까지 상호관세 부과 근거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상황이다. 특히 ‘관세 전쟁’의 타깃으로 삼았던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90일간의 ‘관세 휴전’에 합의해야 했다. 이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난다는 의미의 이른바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라는 조롱까지 받게 됐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올리기 시작한 직후인 4일 오전 2시 17분쯤(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태도를 토로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그는 “나는 시 주석을 좋아하고, 언제나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그러나 그는 매우 힘들고(tough) 협상을 하기에 극도로 어려운 사람”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중국과의 협상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여름 야유회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백악관은 당초 “이번주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직접 통화할 예정”이라며 “양 정상의 통화를 통해 협상에 진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중국 측에선 정상 통화에 응한다는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믹 멜베이니 전 대통령 비서실장 대행을 인용해 “트럼프는 가장 높은 사람과 대화하기를 원하지만, 이는 중국의 방식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국가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켈리 앤 쇼는 “중국이 협상에 응할 의사가 없거나 통화를 의도적으로 협상 카드로 쓰려는 것”이라며 “만약 통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양국 관계가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양국은 총공세를 펴고 있다. 미국은 핵심 기술의 중국 수출 금지를 비롯해 중국이 다수를 차지하는 유학생 비자 취소 카드로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특히 ‘톈안먼(天安門) 사태’ 36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3일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중국공산당은 진실을 검열하려 하지만 전 세계는 이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역린’으로 꼽히는 톈안먼까지 언급했다. ‘한밤 SNS 글’을 올렸던 트럼프 대통령도 오후 늦게 하버드대 유학생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하며 재차 압박을 가했다.
지난 4월 베트남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하노이 국제공항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중국은 공급을 독점한 희토류를 무기화하고 있다. 희토류는 자동차, 전자제품은 물론 전투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은 지난달 미국과 “모든 보복조치를 철회한다”고 합의했지만 오히려 희토류 산지에서 대대적 밀수 단속을 벌이는 등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 자동차 업체들은 희토류 공급에 차질을 빚자 관세를 감수하고서라도 자동차용 전기모터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거나 미완성 모터를 중국으로 보낸 뒤 희토류 자석을 부착해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관세를 통해 해외 기업의 미국 투자와 미국 내 생산을 이끌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등에 대한 관세를 2배로 올린 결정에 직격탄을 맞게 된 멕시코와 캐나다가 강하게 반발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부담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주요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국이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 부과에 따른 생산량 전망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S&P글로벌모빌리티]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철강 관세는 매우 불공정하며 부당한 조처”라며 “단순히 눈에는 눈 차원이 아닌 업계 보호를 위한 대응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을 겨냥한 더 강력한 맞불 관세까지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에 밀집된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에서 철강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만약 멕시코가 미국산 철강에 관세를 물릴 경우 가격 인상의 부담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도 “부당하고 불법적인 관세는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 산업과 미국 노동자에게도 좋지 않은 정책”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된 50% 관세로 인해 예상치 못한 소비재의 도미노 가격 인상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자동차와 가전뿐 아니라 통조림 깡통, 클립 등도 수입산 원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철강 관세는 기업은 물론 미국의 소비자들의 지갑을 크게 쥐어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 이미 부정적 지표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이 공개한 5월 고용지표에서 지난달 민간고용은 3만7000명 증가에 그치며 2023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4월에 기록했던 6만명과 비교하면 반토막에 가깝다.
지난 3월 미국 아칸소주에 있는 철강 공장의 내부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미 공급관리협회(ISM)가 공개한 지난달 미국의 서비스업 분야의 구매관리자지수(PMI) 역시 전달(51.6)보다 1.7포인트 하락한 49.9를 기록했다. PMI가 기준선인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6월 이후 1년만으로, 수치가 50보다 작으면 위축 국면을 뜻한다. 지난 2일 발표된 제조업 PMI 역시 48.5로 3개월 연속 하락했다. 관세로 인해 미국의 제조업에 이어 서비스업까지 위축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로 해석된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