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개입" 언급에 외교부 "한국 대선과 별개 사안"

백악관이 한국의 대선 결과를 놓고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에 대해 우려하고 반대한다"며 이례적인 언급을 한 데 대해 외교부가 "이는 한국 대선과 별개의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한·미 정상의 첫 통화가 전례에 비해 늦어지며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중국과 거리 두기' 기조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자 정부가 불필요한 추측에 대한 선긋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후 열린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후 열린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외교부 당국자는 5일 기자들과 만나 "미 백악관 공보실 백그라운드 언급의 방점은 한국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진행됐다는 데 있다고 본다"며 "중국 관련 내용은 한국 대선과 별개의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 대선 관련 백악관의 입장 표명인데 왜 이를 별개로 봐야 하느냐'는 반문에는 "외교부는 그렇게 보고 있다"고만 답했다.

앞서 백악관은 지난 3일(현지시간) 한국의 대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 질의에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렀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interference)과 영향력(influence)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동맹의 새 대통령 당선에 대해 입장을 내면서 중국을 언급한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이재명 정부 출범 첫날부터 선제적으로 '중국 압박에 동참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던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 국무회의실에서 김밥을 먹으며 국무회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 국무회의실에서 김밥을 먹으며 국무회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외교부는 또 "우리의 대선 결과에 대한 미국 측의 공식 입장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성명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루비오 장관은 미국 정부를 대표해 발표한 공식 성명에서 이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며 "동맹에 대한 철통 같은 약속" 등을 강조했다.


외교부의 설명은 논란이 된 백악관의 중국 관련 언급에 주목하기보다는 루비오 장관의 정제된 공식 성명을 참고해야 한다는 취지다. 외교부는 백악관의 중국 관련 언급을 ‘미 백악관 공보실의 백그라운드 언급’으로 표현하며 이는 비공식적인 입장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외교부는 미국 측과 이 문제를 두고 소통했다고 한다. 정부가 백악관의 중국 언급은 한국 대선과 별개 사안이라고 공식 입장을 정리하는 데 미국도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전날 중국 외교부는 백악관의 언급에 대해 "이간질하지 말라"고 맞받았다. "중국은 어떤 국가의 내정에도 간섭한 적이 없다"면서다. 정부가 이날 공식 입장을 낸 건 한국의 새 정부를 사이에 두고 미·중이 기싸움을 벌이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데 따른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당초 전날로 예상됐던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 통화가 늦어지는 걸 두고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이 대통령과 똑같이 인수위원회 없이 취임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 당일 1기 행정부 시절의 트럼프와 통화했다. 2022년 3월 9일 당선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튿날인 10일 당선인 신분으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

외교부가 백악관의 언급에 대해 "방점은 한국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진행됐다는 것"이라며 하루가 지나 별도의 해석을 제공한 데는 한·미 정상 통화 조율 과정에서 이상 신호가 있다는 의구심을 진화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화 지연과 관련해 시차, 일정 등 실무적 이유가 공식적으로는 거론되지만 미국이 한국 신정부를 향해 중국에 거리 두기를 하라는 신호를 발신하거나 길들이기를 하려는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