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조 체코 원전 수주…K원전 남은 시험대는

한국의 체코 원자력발전소 수출 계약이 최종 성사되면서,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수주로 K-원전의 역량을 유럽에서 확실히 인정받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중 체코를 방문해 계약 기념행사에 참석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예정된 체코 두코바니에 가동 중인 원전의 모습. 두코바니=임성빈 기자

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예정된 체코 두코바니에 가동 중인 원전의 모습. 두코바니=임성빈 기자

5일 한국수력원자력은 “과거 유럽형 원전을 도입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유럽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며 계약 체결 사실을 발표했다. 체코 신규 원전 사업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CEZ) 자회사 EDU II는 전날 전자서명을 통해 한수원과의 계약을 확정했다.

체코 두코바니 지역에 원전 2기를 짓는 이번 사업은 총 사업비가 약 26조원(4070억 코루나)에 이르는 체코 역사상 최대 규모 사업이다. 또 체코 정부가 테믈린 지역에 원전 2기를 더 건설할 계획을 확정할 경우 한수원이 이를 수주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써 약 50조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로 국내 원전 생태계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전망이다. 우선 한수원(주계약자)을 비롯한 한전기술(설계)·두산에너빌리티(주기기·시공)·대우건설(시공)·한전연료(핵연료)·한전KPS(시운전·정비) 등 ‘팀 코리아’와 관련 기업이 연쇄적으로 첫 유럽 시장 진출 기회를 얻는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자력은 종합 산업”이라며 “이번 유럽 수출은 원자력이 길을 뚫고, 주기기 제작·건설·토건 등 다른 산업까지 유럽에 진출할 문을 열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미국이 원전 300기 건설을 구상하는 등 원자력 산업의 큰 장이 열리고 있다”며 “시장이 열리기 전에 한국 원전의 기술력을 입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대형 원전 사업은 설계·기자재 제조·시공·운영·유지보수 등 전후방 산업 전반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술을 축적하는 효과도 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이날 “국내 원전 생태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사업 이행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K-원전이 시험대에서 완전히 내려온 것은 아니다. 우선 한국의 유럽 시장 진출을 극도로 견제하는 프랑스의 몽니를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 체코 원전 수주전에서 탈락한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한수원이 체코 사업 입찰에서 낮은 가격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정부의 지원 덕분이라고 주장하며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에 소송과 계약 중단 가처분을 신청했다. 전날 체코 최고 행정법원이 가처분을 취소하면서 계약은 성사됐지만, 본안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원전 사업 진행과 법정 공방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EDF의 신고를 받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한수원의 역외보조금규정(FSR) 위반 여부 조사에 나설 위험도 있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정책 기조가 재생에너지 중심이라는 점도 변수로 남아 있다. 이 대통령의 원전정책은 신규 건설보다는 기존 원전의 계속 운전과 안전 강화에 무게가 실려 있다.

업계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체코 계약 기념행사에 직접 참석할 경우 국내외에 정부의 원전 수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달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면, 전후 일정을 조정해 체코를 방문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원자력학계 한 전문가는 “이번 수출의 의미를 고려하면 국가 차원의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내각 구성이 정해지지 않아 확정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수원은 본격적인 사업 진행을 위해 두코바니 현장에 건설 사무소를 열 예정이다. 현장 파견 인력을 선발하고, 부지 조사 등 사업 초기 업무에도 곧 착수한다. 팀 코리아 기업과는 각각 하도급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이밖에 체코 원전 사업에 참여를 희망하는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한다. 두코바니 원전은 2029년 착공, 2036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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