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모 목사 "진영의 대통령 아닌 국민의 대통령 되길" [백성호의 현문우답]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대통령 선거 이튿날인 4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서 류영모(전 한교총 대표회장, 한소망교회) 원로목사(71)를 만났다. 그는 한교총 대표회장 시절에도 보수와 진보, 특정 진영에 매이지 않고 두루 사람들을 만나며 열린 소통을 했다. 이 때문일까. 그에게 조언과 자문을 구하는 정치인들도 종종 있다. 그때마다 류 목사는 정치적 논리 대신 예수의 눈, 성경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에게 ‘새 정부 대통령에게 바란다’를 물었다.  

 류영모 목사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강성 보수와 강성 진보가 과잉 대표성을 가진 선거였다. 중간은 없고 양끝만 있는 상당히 어려운 여건이었다"고 평했다. 전민규 기자

류영모 목사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강성 보수와 강성 진보가 과잉 대표성을 가진 선거였다. 중간은 없고 양끝만 있는 상당히 어려운 여건이었다"고 평했다. 전민규 기자

 

이번 선거, 어떻게 보나.
 

“비상계엄과 탄핵, 대통령 파면으로 인해 확증 편향, 진영 논리, 강성 팬덤 등 무척 어려운 여건의 선거였다. 양 끝만 있고 중간은 없는 아령 사회였다. 강성 진보와 강성 보수가 과잉 대표성을 가진 선거였다고 본다. 그래도 승복하고 축하하자.”
 


승복이 왜 중요한가.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해방 제도를 들고나오니까, 남쪽의 주(州)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했다. 연방에서 탈퇴해 별도의 나라를 세웠다. 결국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때 장로교도 남장로교와북장로교로 갈라졌다. 민주주의의 전통이 왜 가능한가. 사법적 정의에 승복하고, 선거 결과에 승복하기 때문이다.”
 
류 목사는 “새 정부가 맞닥뜨린 이 시대는 수축사회, 축소시대다. 일할 청년들이 적어지고, 경제 성장률은 감소하고, 국제사회는 자국 이익 중심주의로 치닫는다. 파이가 작아지고 먹을 사람은 많아졌다. 수축사회를 대변하는 가장 강력한 예가 ‘오징어 게임’이다.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 정치도 나와 상대가 서로 견제하며 함께 성장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식이다. 그래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리더십인가.
 

“섬김의 리더십, 따듯한 리더십이다. 국민은 확증편향과 이념적 갈등의 피로감에 지쳐 있다. 정치는 말(言)이다. 말이 거칠어선 안 된다. 대통령의 말은 얼어붙은 국민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절망할 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새 교황 레오 14세의 첫 일성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라’였다. 이 세상 모든 리더가 기억해야 할 시대적 명령이 아니겠는가.”
 

류영모 목사는 "정치를 말이라고 본다. 말이 거칠면 안 된다. 대통령의 말은 국민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민규 기자

류영모 목사는 "정치를 말이라고 본다. 말이 거칠면 안 된다. 대통령의 말은 국민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민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 보복은 없다”고 공언했다. 동시에 “내란 세력 척결이 최우선 과제”라고 했다. 어찌 보나.
 

“이번 선거는 전쟁이었다. 내란 종식이란 이름 아래 또 다른 적폐 청산으로 범위를 너무 확대해서 들어가면 곤란하다. 그걸 통해 상대 정당을 박멸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결국 정치 보복으로 남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은 작은 정치가 아닌 큰 정치를 하면 좋겠다.”
 

큰 정치가 뭔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자기 진영의 대표다. 대통령이 되고 나면 달라진다. 국민의 대표가 된다. 그래서 척결해야 할 상대가 있는 게 아니라, 품고 배려해야 할 내 국민이 있을 뿐이다. 그런 대통령이 국민의 대통령이다. 그게 큰 정치다. 이재명 대통령도 진영의 대통령에 머물지 말고, 국민의 대통령이 되길 기대한다. 후보 시절 약속한 정치 보복 관행 타파, 탕평 인사, 국민 통합과 함께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손잡고 나아가길 바란다.”
 

이재명 정부는 입법권과 행정부, 사법권까지 아우르는 절대권력을 쥘 수도 있다.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삼권 분립이다. 삼권은 자신의 영역을 지켜야 하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 삼권이 너무 밀착돼 있거나 적정한 거리가 무너지면 결국 타락하게 된다. 이건 역사적 교훈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로 이어지는 법이다.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셈이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
 

세계 경제가 격동기다. 관세 전쟁과 인공지능(AI) 혁명 등으로 지각 변동이 한창이다.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 어찌 보나.
 

“이제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로봇 등이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시대다. 여기에 100조원 투자하겠다고 했다. 지극히 당연하다. 반도체ㆍ원자력ㆍ바이오 등 최첨단 기술을 통해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데이터센터 등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충분한 에너지 확보도 절실하다. 현실적으로 원자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인정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은 독보적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먹사니즘, 잘사니즘 이야기했다. 이념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실용의 눈이 필요하다. 경제 정책을 짤 때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류영모 목사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배려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류영모 목사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배려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마지막으로 류 목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성경에는 추수한 후에 떨어진 이삭을 주우면 안 된다고 돼 있다. 왜 그럴까. 고아나 과부, 나그네가 이걸 줍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게 더더욱 필요한 시대다. 기독교에서는 사회적 혜택과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배분되는 걸 ‘정의’라고 부른다. 이재명 정부가 공공의 선을 위해 일하는 정부가 되길 희망한다.”

◇류영모 목사=1954년 경남 거창 출생.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자신의 집에서 개척목회를 시작해 교인 1만6000명의 한소망교회를 일구었다. 지난해 은퇴하며 세습 논란 없이 후임 목사에게 깔끔하게 담임직을 물려줘 교계의 화제가 됐다.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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