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묵혔다, 이번엔 터진다" 붉은사막이 깨울 게임주 저주

전문가들이 본 게임주 투자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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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처음 발매된 게임 ‘문명(Civilization)’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세계적으로 7000만장 넘게 팔린 게임계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다. 이를 만든 파이락시스게임즈(Firaxis Games)의 창업자 시드 마이어는 게임이 가진 매력에 대해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주식시장에서도 고스란히 통한다. 전략적 판단에 따라 선택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끊임없이 의사결정한 결과가 고스란히 플레이어(혹은 투자자)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종식 뒤 침체했던 게임주가 최근 기지개를 켜고 있다. ‘머니랩’이 전문가들과 게임주의 하반기 전망과 투자전략을 살펴봤다.

코로나 호황 뒤 실적 곤두박질…감원·분사 등 구조조정 시달려 

게임주는 코로나19 당시 수혜를 봤던 대표적 섹터(업종) 중 하나다. 하지만 2022년 이후 부진의 터널을 통과 중이다. 값비싼 고급 정보기술(IT) 개발인력을 대거 빨아들였던 게임업계는 코로나19가 끝나고 사람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막대한 인건비 부담을 겪었다. 집이나 실내에서 게임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대작도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첫 거래일(1월 4일) ‘KRX 게임 TOP 10 지수’의 상장 시가총액은 43조4700억원이었지만, 4년 반이 지난 지금은 37조3944억원(지난 6월 13일 기준)까지 쪼그라들었다. 김승철 NH아문디자산운용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본부장은 “2022년 이후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 역시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높았던 게임 업종의 주가 하락 요인이 됐다”며 “특히 국내 게임 시장은 약 20년간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장르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는데, 유저(User·사용자)의 피로감이 쌓이며 성장전략이 한계에 부닥치게 됐다”고 말했다.

게임기업 주가가 상승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이승훈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과거 사례를 짚어보면 신작이 처음 예고될 때 한번 (긍정적) 영향을 받고, 그 이후 테스트를 진행하며 실제 출시 일정이 가시화할 때 반등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 하반기 신작 게임들이 대거 출격을 예고하고 있다.

◆7년 공들인 ‘붉은사막’ 등 하반기 줄신작=펄어비스는 올 4분기 ‘붉은사막’을 출시한다. 무려 7년을 공들여온 대작이다. 허진영 펄어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보이스오버(캐릭터의 대사 등 음성을 입히는 작업)와 콘솔(게임 실행 장비 전반) 설정 준비 등 출시 마지막 단계”라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는 올 하반기 ‘아이온2’ ‘프로젝트LLL’ 등의 출격을 앞두고 있다. 크래프톤은 ‘어비스 오브 던전’ ‘서브노티카2’, 넷마블은 ‘뱀피르’ ‘일곱 개의 대죄 : 오리진’을, 카카오게임즈는 ‘가디스오더’ ‘갓 세이브 버밍엄’ 등을, 네오위즈는 ‘P의 거짓 : 서곡’ ‘셰이프 오브 드림즈’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기대 모으는 대작 하반기 출격…“반등 가능” 5월 이후 주가 들썩 

새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에 대한 기대감과, 하반기 신작 출시 소식이 가시화하자 주가도 들썩이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최근 한 달 새(5월 14일~6월 13일) 21.05% 뛰었고, 넷마블과 엔씨소프트는 각각 15.05%·11.36% 상승했다. 같은기간 ‘KRX 게임 TOP 10 지수’는 4.58% 올랐다. 이도진 KB자산운용 매니저는 “게임주들이 긴 부진을 겪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반등의 타이밍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주요 게임사들이 해외시장에 진출, 정착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주가에 반영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최근엔 꼭 ‘신작 출시’가 아니더라도 기존 게임으로 실적을 키우는 사례도 나왔다. 2017년 출시된 ‘배틀그라운드(배그)’가 그 주인공. 김승철 본부장은 “크래프톤은 ‘배그’라는 검증된 IP(지식재산권)를 바탕으로 실적이 지속해서 개선되는 중”이라며 “배그는 경쟁이 치열한 RPG 장르가 아닌,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FPS(First-Person Shooter, 1인칭 슈팅게임) 게임인 만큼 그 위상이 지속할 수 있다. 올 하반기 ‘서브노티카2’ 등 신작이 나오는 만큼 최대 실적도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게임주 중에서도 대형사들의 반등세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승훈 본부장은 “엔씨소프트는 올 4분기 ‘아이온2’라는 대작이 출시될 예정이고, 내년까지 6~7개의 신작 출시를 예고한 상황”이라며 “카카오게임즈는 최근 2년간 강도 높은 경영효율화 작업을 해왔는데, 여기에 내년까지 ‘프로젝트 Q’ 등 기대작을 출시할 예정이라 영업 레버리지 효과가 크게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효지 SK증권 연구원은 “넷마블이 과거 신작을 내놨을 땐 1~2분기 뒤엔 매출이 급감했었는데, 지난해부터는 면밀한 업데이트로 양호한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며 “펄어비스도 ‘붉은사막’이 출시돼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AI로 게임 직접개발…개발환경 바뀐다=게임업계는 그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왔다. SK증권에 따르면 올 1분기 시가총액 상위 5개 게임사(크래프톤·엔씨소프트·넷마블·펄어비스·카카오게임즈)의 합산 인건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9% 감소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올해도 희망퇴직이나 조직 분사 등으로 허리띠를 조이고 있다.

AI 활약도 게임 미래 바꿀 열쇠…대형사 위주로 투자 노려볼 만 

여기에 최근 생성AI의 발전과 활약은 게임 개발 환경까지도 바꿔놨다. 개발자들이나 디자이너들이 일일이 손으로 해야 했던 코딩이나 렌더링(Rendering,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을 AI가 대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AI가 개발자와 플레이어의 벽을 허물기도 한다. 플레이어들이 직접 AI 도구를 활용해 게임 맵을 만드는 ‘사용자 생성 콘텐트(UGC)’ 생태계가 생겨나고 있는 것. 메타버스 게임 ‘로블록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매너 로드’, 서바이벌 슈팅게임 ‘포트나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준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플레이어들의 게임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개발비도 높아진 게 현실”이라며 “AI 도구의 발달로 게임사들이 과도한 자원을 투자하지 않고도 플레이어들의 만족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UGC AI 도구가 플랫폼화한다면 플레이어가 개발자를 대체할 수 있게 돼 개발비용 절감 이상의 효과가 있다”며 “크래프톤이 올해 UGC모드 알파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인데, 향후 AI를 활용한 UGC 생태계는 더 확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너스 탈출’ 게임 ETF도 고공행진=게임주가 기지개를 펴면서 6개월 전만해도 마이너스 수익률(-0.23~-1.76%)을 보이던 ETF들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RISE 게임테마’(KB자산운용)의 최근 1개월 수익률은 10.86%, ‘TIGER K게임’(미래에셋자산운용)은 10.31%, ‘HANARO Fn K-게임’(NH아문디자산운용)은 9.01%, ‘KODEX 게임산업’(삼성자산운용)은 8.22% 등으로 8~10%대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인 투자 종목을 보면 ‘RISE 게임테마’는 넷마블이 11.66%를 차지하고, 펄어비스(10.08%), 엔씨소프트(8.48%), 크래프톤(8.44%), 위메이드(7.44%) 등이다. 운용역인 이도진 KB자산운용 매니저는 “주요 종목에 투자하는 비중이 높지만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가져가고 있다. 투자자들이 대형주 주가 흐름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 게임산업 성장의 수혜를 전반적으로 가져갈 수 있게 설계한 것”이라며 “포트폴리오 정기 변경 시에도 개별 종목에 9% 비중 상한을 두고 비중을 조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