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화학과 롯데케미칼, HD현대케미칼 등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한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 전경. 연합뉴스
구조조정 여건은 한창 무르익었다. 중국발(發) 공급 과잉에다 글로벌 수요 둔화가 3년 이상 이어진 불황의 상수(常數)였다면, 최근 이스라엘-이란 분쟁에 따른 국제유가 불안이 돌발 변수(變數)로 떠올랐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지난달 펴낸 ‘K-석유화학, 생존과 성장 전략’ 보고서에서 “정부 주도의 실행력 있는 구조조정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 대통령도 선거 과정에서 “석화 산업을 포함한 한계 산업의 구조 전환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에 혜택을 주고, 소극적인 기업에 각종 지원을 배제하거나 규제로 압박하는 등 ‘당근과 채찍’을 쓸 전망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마침 여당이 정책을 뒷받침할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지난 11일 발의했다.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법안은 ▶사업재편을 위한 합병, 분할, 설비 축소, 연구개발(R&D)에 세제 지원 ▶노후 설비 해체, R&D 및 설비 투자에 보조금 지급 ▶전기요금 감면 혹은 보조 ▶생산시설 신·증설, 개선, 폐쇄 등 절차 간소화 ▶환경 규제 특례 ▶기업 간 생산량 감축, 설비 가동률 조정 등 협의 시 공정거래법 적용 예외 ▶정부 주도 사업재편 등 내용을 담았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석유업체 임원은 법안에 대해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이 나올 수 있다”면서도 “업체마다 요구사항을 두루 담아내는 등 구조조정의 큰 그림은 잘 그렸다”고 평가했다.
기업 스스로 구조조정에도 한창이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의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공급 과잉에 따른 공멸을 피하기 위해 자율 구조조정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LG화학은 전남 여수 NCC 2공장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다. 지난 13일엔 10년 넘게 키운 ‘알짜’ 수처리 사업 부문을 사모펀드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에 1조4000억원에 넘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설비 구조조정을 통한 투자 합리화 및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시작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실제 효과가 가시화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석화는 전형적인 굴뚝 산업이다. 대규모 시설투자와 전문 인력이 필요해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반도체·2차전지 같은 첨단 산업은 아니지만, 철강과 마찬가지로 국민 경제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민간이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정부가 구조조정의 방향타를 잡아야 하는 이유다. 김승철 삼일PwC 경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정부 차원의 석화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해 범용 제품 생산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으로 유도한 일본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12월 대략적인 석화 업계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상반기에 상세한 후속 대책을 발표하려다 탄핵에 이어 조기 대선 모드로 접어들며 중단됐다. 키를 넘겨받은 이재명 정부가 하반기에 대책을 발표할 전망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주도하더라도, 실제로 시장 자율을 유도하는 식으로 미묘한 ‘균형점’을 찾는 정책이 성공의 관건”이라며 “구조조정이 관제 ‘교통정리’가 아닌 만큼 규제 족쇄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 수익에 목매기보다 국가 전략자산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