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 선조가 심은 '조선인삼'…한·일 우호의 씨앗 뿌린다 [한·일 수교 60년③]

한·일이 거쳐온 60년은 파란과 곡절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반일’과 ‘혐한’을 넘어 이제는 양국 국민 교류 ‘1200만 명 시대’라는 반전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놀라운 서사의 싹을 틔운 이들은 다름 아닌 한·일 양국 국민이었다. 갈등과 반목을 넘어선 양국 국민의 ‘인연(絆)’을 통해 한·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본인은 물론이고 한국인들도 도치기(栃木)현에 조선 인삼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아요. 선조들이 뿌린 한반도의 씨앗을 한·일 우호의 징표로 크게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북쪽에 위치한 도치기현.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인 도쇼구(東照宮)가 있어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에도(江戸) 시대를 연 도쿠카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위패를 모신 이곳을 아는 이들은 많지만, 약 300년 전 이 땅에서 시작된 조선 인삼(정식 명칭은 ‘조선씨앗인삼’)에 대해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런 조선 인삼의 재배법 보존을 위해 일본 열도 전역을 누비며 분투 중인 재일동포 2세 진현덕(69·주식회사 페도라 대표)씨를 지난 12일 만났다. 그는 도치기현의 옛 이름 시모쓰게(下野)를 이어 만든 시모쓰게 조선씨앗인삼 재배방법 보존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다.

조선 인삼을 일본 전역으로 전파한 지역으로 알려진 도치기현에서 조선씨앗인삼 재배를 위한 보존과 계승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시모쓰게 조선씨앗인삼재배방법보존협의회를 일군 진현덕 회장(주식회사 페도라 대표)가 지난 12일 우쓰노미아대 농대 농장에서 전통 재배 방식으로 자라고 있는 조선 인삼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조선 인삼을 일본 전역으로 전파한 지역으로 알려진 도치기현에서 조선씨앗인삼 재배를 위한 보존과 계승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시모쓰게 조선씨앗인삼재배방법보존협의회를 일군 진현덕 회장(주식회사 페도라 대표)가 지난 12일 우쓰노미아대 농대 농장에서 전통 재배 방식으로 자라고 있는 조선 인삼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발목까지 자란 잡풀길을 5분여 걸었을까. 자그마한 해가림막을 한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도치기현 우쓰노미야대 농학부 부속 농장에 만들어진 조선 인삼 재배밭이다. 방충망을 들어올리자 크고 작은 잎파리를 달고 있는 인삼이 보인다. 재래 방식대로 자연 재배를 시작한 지 5년째지만 한눈에도 편차가 확연할 정도로 생육이 좋지 않다. 해가림막 아래 자라고 있는 조선 인삼 가운데 꽃대가 올라와 파란 씨앗이 맺힌 건 단 한 그루. 3년이면 꽃이 피고 씨를 맺기 시작하는데 발육이 좋지 않은 것이다. 동행한 다카하시 유키쓰구(高橋行継) 우쓰노미야대 명예교수가 진 회장을 보며 겸연쩍은 얼굴로 말한다. 

“씨앗을 뿌린 대로 인삼을 얻을 수가 있으면 좋겠지만, 조선 인삼은 중간에 시들기도 해서 재배가 쉽지 않아요.” 

우쓰노미야대가 조선 인삼을 연구하게 된 건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 회장은 당시 도치기현 가누마(鹿沼)시의 사토 신(佐藤信) 시장을 만났다가 우연히 조선 인삼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도치기현에 인삼 생산 농가가 있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곳은 단 한 곳”이란 것이었다. 호기심이 동한 그는 곧장 생산 농가를 찾아갔다. 당시 70대인 와타나베 다다시(渡辺正)씨를 만난 그는 “후계자가 없어 이대로라면 인삼 재배가 끊어진다”는 소리에 조선 인삼 지키기에 나섰다. 


한때 일본이 조선 인삼을 세계로 수출(메이지 시대 단일 품목 기준 13위)할 정도로 조선 인삼이 퍼지도록 한 발상지이자 자신이 태어난 이곳에서 조선 인삼이 사라지도록 둘 수만은 없다는 신념에서였다. 그는 대학과 지역 고등학교를 수소문하고 나섰다. 우쓰노미야대, 가누마미나미고가 참여 의사를 밝히고, 마지막으로 가누마시까지 가세하면서 지난 2021년 보존협의회가 만들어졌다. 

그의 후원으로 와타나베씨의 인삼밭에서 채집한 씨앗을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병은 도처에 있었다. 다카하시 교수는 “와타나베씨가 연작 재배를 해오면서 씨를 점점 수확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씨가 없으면 재배 계승이 어렵기 때문에 씨앗 보존과 계승이라는 두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가누마미나미고는 도치기현에 단 한곳밖에 남지 않은 인삼 재배자로부터 전달받은 씨앗을 재배하고 있다. 이 학교 교사 아마가이 마나부가 올해로 5년째를 맞은 조선씨앗인삼을 보여주고 있다.김현예 특파원

가누마미나미고는 도치기현에 단 한곳밖에 남지 않은 인삼 재배자로부터 전달받은 씨앗을 재배하고 있다. 이 학교 교사 아마가이 마나부가 올해로 5년째를 맞은 조선씨앗인삼을 보여주고 있다.김현예 특파원

대학 농장에서 차로 50여 분. 가누마미나미고에 도착했다. 볕가림막 아래 자라고 있는 조선 인삼은 대학 농장 것보단 확연히 풍성했지만, 씨앗은 듬성듬성했다. 담당 교사인 아마가이 마나부(天海学)씨는 “학교 인사로 담당 교사가 자주 교체되면서 그간의 과거 기록이 사라졌다.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도치기현 유일의 조선 인삼 재배자인 와타나베씨의 인삼밭으로 가는 길. 진 회장이 덤덤한 목소리로 이렇게 설명한다. 

“기록에 따르면 씨앗 60개 중에 3개만이 재배에 성공했다고 할 정도니, 성공률이 5%에 그칠 만큼 조선 인삼 재배는 어려운 거예요.” 

조선 인삼이 전해진 것은 에도 시대. 가누마 지역 인근에 도쇼구가 있는데, 조선통신사는 이 지역을 세 차례나 방문했다. 

일본 도치기현 가누마에 있는 인삼중제법소 안내판에 소개된 조선 인삼(조선씨앗인삼).

일본 도치기현 가누마에 있는 인삼중제법소 안내판에 소개된 조선 인삼(조선씨앗인삼).

당시 조선 인삼은 일본에서 금·은과 같은 귀한 존재. 도쿠카와 막부는 조선에서 조선 인삼을 비싼 값에 사들였다. 인삼 값을 치르느라 막대한 지출이 발생하자 도쿠가와 막부 8대 쇼군(将軍)이 재정 개혁에 나설 정도였다. 당시 막부는 재정 개혁의 일환으로 조선 인삼의 국산화를 목표로 했다. 진 회장은 “쓰시마(대마도)에서 도쿠가와 막부로 조선 인삼 씨앗 60개를 헌상했고, 그 가운데 3개를 재배에 성공하면서 300년 넘게 이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막부가 관리하던 가누마 일대에 인삼밭이 생겨난 것은 1729년 이후의 일이다. 허가 받은 이만 재배가 가능했는데, 생산자는 176명에 달했다. 1800년엔 인삼집하와 가공을 담당하는 곳인 ‘인삼중제법소’가 만들어질 정도로 번성했는데, 이곳은 현재 사라지고 그 자리엔 이타가 소학교(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 인삼이 관할지역 곳곳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자 인삼중제법소를 세워 출하 등을 관리했다. 300년 전 세워진 인삼중제법소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시모쓰게 조선씨앗인삼재배방법보존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진현덕 회장은 지난 2020년 이곳에 조선 인삼 중재법소가 있었다는 안내판을 세웠다. 학생 수 감소로 이 학교가 폐교 대상이 되면서 안내판 역시 철거 위기에 놓였다. 김현예 특파원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 인삼이 관할지역 곳곳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자 인삼중제법소를 세워 출하 등을 관리했다. 300년 전 세워진 인삼중제법소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시모쓰게 조선씨앗인삼재배방법보존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진현덕 회장은 지난 2020년 이곳에 조선 인삼 중재법소가 있었다는 안내판을 세웠다. 학생 수 감소로 이 학교가 폐교 대상이 되면서 안내판 역시 철거 위기에 놓였다. 김현예 특파원

진 회장은 지난 2020년 사재를 들여 이곳에 조선 인삼 중제법소가 있었다는 기념 안내판을 세웠다. “어린 학생들에게 조선씨앗인삼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안내판을 보기 위해 찾아간 학교. 오다카 가쓰노리(小高勝則) 교장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현재 전교생이 30명 규모인데 내년에 10명으로 줄어들게 되면서 3년 뒤 폐교된다”는 것이었다. “기념 안내판은 어찌 되느냐”는 질문에 교장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진 회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2일 일본 도치기현 가누마에서 300년 넘게 전통 재래 방식으로 홀로 조선 인삼을 키우고 있는 80대 와타나베 다다시씨의 자그마한 인삼밭을 진현덕 시모쓰게 조선씨앗인삼재배방법보존협의회 회장이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지난 12일 일본 도치기현 가누마에서 300년 넘게 전통 재래 방식으로 홀로 조선 인삼을 키우고 있는 80대 와타나베 다다시씨의 자그마한 인삼밭을 진현덕 시모쓰게 조선씨앗인삼재배방법보존협의회 회장이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해가 뉘엿한 시간, 다시 차를 돌려 와타나베 농장으로 향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인적 없는 논밭 사이에 자그마한 인삼밭이 드러났다. 씨앗을 남기기 위해 80대인 지금까지 조선씨앗인삼을 재배 중인 와타나베씨는 지병 치료를 위해 출타 중이었다. 허락을 얻어 자그마한 인삼밭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허리를 구부려 인삼을 살펴보는 진 대표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것 좀 보세요!” 작은 밭 가득한 조선인삼. 생생한 초록잎, 석양에 반짝거리는 씨앗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씨앗, 이 잎들을 보면 와타나베씨가 혼과 정성을 담아서 키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이 인삼들은 와타나베씨가 인생을 바쳐 애정과 혼을 담아 만든 예술 작품이네요. 정말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 조선 인삼에 공을 들이고 있는 걸까. 도치기현 아시카가(足利)시에서 태어나 ‘자이니치(在日)’로 살아온 그에겐 여느 재일동포와 같은 아픔의 시간이 있었다. 한국인이기에 취업조차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주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 국립대 대학원에 진학하려 했다. 두 차례 지원해 모두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두 번 모두 면접시험에서 쓴 잔을 들이켜야 했다. 천신만고 끝, 부동산개발업으로 성공한 그는 지금도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한국 이름을 쓰고 있다. 

80대인 와타나베 다다시씨가 옛 방식 그대로 흙에 씨앗을 뿌려 키우고 있는 조선씨앗인삼. 김현예 특파원

80대인 와타나베 다다시씨가 옛 방식 그대로 흙에 씨앗을 뿌려 키우고 있는 조선씨앗인삼. 김현예 특파원

 
“한국에 가면 우리를 일본인이라고 하고, 일본에선 한국인으로 봐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뿌리입니다. 뿌리는 절대 바뀌지 않아요. 두 획이 서로 기댄 한자 ‘사람 인(人)’을 닮은 인삼도 그렇잖아요. 원류인 한국의 인삼,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재배에 성공한 일본의 씨앗인삼. 이 둘이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면 최고의 인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올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역사적 사실을 교육을 통해 알려 나간다면 양국 국민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조선통신사처럼 조선 인삼, 조선 인삼의 꽃이 양국을 이어준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이 일을 열심히 해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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