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 이하면, 빚 여러 개라도 모두 탕감

교대역에 채무 관련 법무법인 광고물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예를 들어 A씨가 10년 연체한 5000만원 짜리 은행 대출 1건과 8년 연체한 2000만원 짜리 저축은행 대출 1건이 있다면, 두 대출 모두 7년 이상 연체한 5000만원 이하 대출 기준에 해당하기 때문에 매입 대상이다. A씨가 상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최대 7000만원까지 탕감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인 채무는 4000개 넘은 금융사에 나뉘어 있는데, 탕감 기준을 1인당으로 정하면 이들 금융사의 채무 정보를 전산으로 통합해 선별해야 한다”면서 “이는 비용이나 시간 측면에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사행 산업 하다가 빚져도 감면 가능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인의 삶을 구제하는 게 목표이다 보니 어떤 직종에 종사했는지, 사업 내용은 무엇인지를 따지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도박·사행성 사업을 하다가 빚을 져도 조건만 맞으면 여러 개의 채무를 모두 탕감을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 “파산 능력 심사해 도덕적 해이 방지”

기획재정부 임기근 2차관이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공용 브리핑실에서 새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환 능력을 심사해 탕감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를 걸러낼 장치는 마련돼 있다는 게 금융당국 판단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1000만원 이하의 빚을 10년 이상 연체한 159만명의 원리금을 전액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상환 능력 등을 판단해 본 결과, 실제 정부에서 탕감을 결정한 인원은 11만8000명(6000억원)에 불과했다. 이번에도 심사 등을 거치면 혜택받은 인원은 더 줄어들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7년 이상 연체한 5000만원 빚 중에서 파산 수준으로 정상적 상환이 불가능한 경우만 탕감해 주기 때문에 형평성이나 도덕적 해이를 어느 정도 판별할 장치가 있다”면서 “일단 기준에 맞는 개인 채무를 3분기 중으로 최대한 매입한 후, 불합리한 부분을 기술적으로 걸러낼 수 있다면 추가 기준을 마련해 볼 것”이라고 했다.
정권마다 ‘빚 탕감’, 성실 상환자에 ‘잘못된 신호’
금융권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부터 벌써 민간 금융사에 지원을 요청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서민 지원 이슈가 나올 때마다 금융사가 돈을 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국 대출을 소액으로 쪼개서 버티면 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장기 연체 채무라도 해도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밖에 없다”면서 “가급적 1인당 탕감 금액의 형평성을 맞추고, 문제가 되는 업종은 제한하는 등 추가 정책 보완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