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보낸 장비만 1154억...美의 중국제재, 피해자는 한국?

삼성전자의 시안 메모리반도체 공장.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시안 메모리반도체 공장. 사진 삼성전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내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 공급 제한을 시사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긴장하고 있다. 현재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내 생산거점에 해마다 수백에서 수천억 원대 장비를 투입하고 있다. 미국산 장비에 대한 통제 강화할 경우 현지 공장 운영에 차질이 예상된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공시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중국 반도체 생산시설에 반입·반출한 장비 규모가 총 470억원에 달한다. 중국 쑤저우 패키징 공장에 289억원, 시안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에는 181억원 상당의 장비를 들여오고 반출했다. 중국 현지에서 D램 메모리까지 생산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의 경우 장비 반·출입 규모는 더 컸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중국 우시에 D램 반도체 공장, 충칭에 패키징 공장, 다롄에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공장에 총 1154억원 규모의 장비를 들였다. 올해 3월에도 우시 공장에 448억원 어치 장비가 한국에서 반출됐다.

두 기업 모두 중국 내 장비 반입 명목으로 ‘생산 효율화’로 꼽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제한된 생산 공간 내에서 각 제품의 생산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장비를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내 오래된 장비는 국내로 들여오고, 국내에 유휴장비는 중국으로 보내 한국과 중국 생산시설 모두 최대치로 반도체를 생산 할 수 있게 하는 운영법이라는 이야기다.

미국산 제한한다면?

문제는 중국에 들어가는 장비의 상당수가 미국산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시장은 상위 5개 업체가 전체 70% 이상을 점유하는 구조다. 반도체 장비 1위 업체인 네덜란드 ASML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이미 2019년부터 중국 반입이 금지된 상태로, 한국 기업들의 장비 반출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신 ASML외 탑5에 속하는 미국의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KLA의 장비가 중국에 상당수 반입된다. 


미국산 장비를 중국에 공급하지 못하게 되면, 반도체 업체들은 장비 재배치 운영 전략에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한국은 첨단 공정을 국내에 집중하고 일부 공정을 중국에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생산 효율을 극대화해왔는데, 이 같은 ‘글로벌 최적화’가 미국의 규제로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업계 관계자는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를 부여받아 포괄적 허가를 받아왔는데, 이 혜택이 사라질 경우 중국에 장비 반입할 때마다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라며 “운영 효율을 위해 신속한 대응을 하는데 장벽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제재가 한국 등 미국의 동맹국 기업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최근 중국의 대표적인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러지(CXMT)가 현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올해 전년 대비 50% 이상 생산량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CXMT의 글로벌 D램 출하 점유율은 올 1분기 기준 6%에서 연말에 8%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CXMT는 최근 DDR4·LPDDR4 등 레거시(성숙) 메모리에서 벗어나, DDR5·LPDDR5 등 선단 메모리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22일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교란하는 이런 조치는 오히려 중국 기업의 독자적인 혁신을 가속화 할 것”이라며 “또한 미국과 동맹국 기업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