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탕감 기준 논란
2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한 채무조정 기구는 빠르면 올해 3분기에 이런 개인 채무를 금융사로부터 매입한다. 이때 사들이는 채무의 기준은 돈을 빌린 사람 1명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출 1건당 적용한다. 예를 들어 A씨가 10년 연체한 5000만원짜리 은행 대출 1건과 8년 연체한 2000만원짜리 저축은행 대출 1건이 있다면, 두 대출 모두 기준을 충족하기 때문에 매입 대상이다. A씨가 상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최대 7000만원까지 탕감받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인 채무는 여러 금융사에 나뉘어 있는데, 탕감 기준을 ‘1인당’으로 정하면 금융사의 정보를 별도로 선별해야 한다”면서 “비용이나 시간 측면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업종 제한이 없다는 점도 논란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만든 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은 부동산 임대업이나 법무·회계·세무 업종 등 같은 전문직, 도박·사행성 오락기구 제조업 등은 지원 대상에서 뺐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는 개인사업자 빚은 이런 업종 제한이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인의 삶을 구제하는 게 목표이다 보니 어떤 직종에 종사했는지, 사업 내용은 무엇인지를 따지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도박·사행성 사업을 하다가 빚을 져도, 조건만 맞으면 여러 개의 채무를 모두 탕감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구분 없이 구제해 주는 것이 정책의 효과성 측면에서 낫다고 본다. 7년 이상 연체한 채무는 사실상 받을 수 없는 빚이다. 일단 채무를 정리해 재기를 돕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또 다중 채무자는 취약 계층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하위 30%)이거나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인 취약차주 수는 전체 차주의 6.6%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6.4%)에 비해 소폭 올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7년 이상 연체한 5000만원 빚 중에서 파산 수준으로 정상적 상환이 불가능한 경우만 탕감해 주기 때문에 형평성이나 도덕적 해이를 어느 정도 판별할 장치가 있다”면서 “불합리한 부분을 기술적으로 걸러낼 수 있다면 추가 기준을 마련해 볼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1000만원 이하의 빚을 10년 이상 연체한 159만 명의 원리금을 전액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상환 능력 등을 판단해 본 결과, 실제 정부에서 탕감을 결정한 인원은 11만8000명(6000억원)이었다.
그럼에도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새 정부마다 장기 연체자에 대한 구제책을 마련하면서, 결국 갚지 않고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확산할 수 있어서다. 빚 탕감 재원의 절반인 4000억원을 금융사로부터 조달하겠다는 방침도 눈총을 받는다. 상법 개정안을 통해 주주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이재명 정부가 정작 은행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앞으로 서민 지원 이슈가 나올 때마다 금융사가 돈을 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국 대출을 소액으로 쪼개서 버티면 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며 “가급적 1인당 탕감 금액의 형평성을 맞추고, 문제가 되는 업종은 제한하는 등 추가 정책 보완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