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약한 트럼프…"무기 사겠다" 젤렌스키 말에 푸틴 비판

미국 무기를 사겠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제안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보다 좋을 수 없는 회담”이라고 화답했다. 그간 우호적이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서도 “잘못된 판단을 내린 사람”이라고 압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우)이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중 50여분 별도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우)이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중 50여분 별도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는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면전에 “미국은 빠지겠다”며 공개 설전을 펼쳤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약 50분에 걸쳐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난 뒤 “좋은 회동이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려운 전쟁에서 용감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전쟁을 끝내기 아주 좋은 때”라며 “푸틴 대통령과 통화해 이를 끝낼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 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 중 웃음을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 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 중 웃음을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을 때만 해도 “푸틴에 대한 (젤렌스키의) 혐오 때문에 내가 협상을 타결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이어 “미국의 군사 지원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는 몇 주 만에 전쟁에서 졌을 것”이라며 “당신은 수백만 명과 3차 세계대전을 놓고 도박하고 있다”는 막말을 쏟아냈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미국이 우크라이나 희토류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의 광물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난항을 겪던 때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엔 미국의 군사 지원이 줄어드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미국 무기를 추가로 구입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회담 이후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무엇보다 우리 도시와 국민, 교회, 기반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 방공시스템 구입을 논의했다”며 “우크라이나는 이 장비를 구입하고 미국 무기 제조업체들을 지원할 준비가 됐다”고 적었다.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인 설전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인 설전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은 무기 구입 의사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에 휴전을 압박할 수 있는 미국의 추가 제재 방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제재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가 구입 의사를 밝힌) 패트리엇 미사일을 확보하기가 굉장히 어렵지만, 일부를 (제공)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세계 최고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고, 카타르 기지에 발사된 14발의 (이란의) 고성능 미사일 중 14발 모두 우리 장비에 의해 격추됐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지난 23일 이란의 보복 공격을 지칭한다. 당시 이란은 미국의 핵 시설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미군이 투하한 벙커버스터와 같은 숫자인 14발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미군은 이중 13발을 격추했다. 다만 당시 공격은 확전을 피하려던 이란이 미국에 미리 공격 사실을 미리 알려준 뒤 이뤄진 사실상의 ‘약속 대련’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유럽 동맹국들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인상하기로 한 것을 언급하며 “이는 ‘헤이그 방어 약속’으로 불릴 것이고, 이는 유럽과 서구 문명의 큰 승리”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관저에서 화상 회의를 하고 주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관저에서 화상 회의를 하고 주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해선 다소 강경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푸틴을 적으로 간주하는지, 푸틴이 우크라이나 너머 영토 확장에 대한 야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가능성이 있다”며 “난 그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사람들이 전례 없는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며 “푸틴은 정말로 그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맞춘 국방비 증액에 사실상 모든 초점이 맞춰졌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표시나 지원 언급은 대폭 줄었다. 공동성명에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관련 언급은 제외됐고, 러시아에 대한 ‘규탄’ 대신 ‘유럽·대서양 안보에 대한 장기적 위협’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의 유럽평의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책임이 있는 고위 관리들을 재판하기 위한 특별재판소 설립 합의서에 서명한 후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의 유럽평의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책임이 있는 고위 관리들을 재판하기 위한 특별재판소 설립 합의서에 서명한 후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러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평의회 본부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침략 범죄를 위한 특별재판소 설립을 지지하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했다. 빠르면 내년 중 설립을 목표로 추진 중인 이 특별재판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범죄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지도부에 대한 기소 권한을 갖게 된다.

서명을 마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도 “우리는 (트럼프와) 강한 연결이 필요하다”며 “유럽과 미국 간의 단결이 필요하며, 그렇게 하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