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국방비 증액 “안보 협의서 논의 중”
앞서 미 국방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우리 유럽 동맹국들은 이제 특히 아시아에서 동맹의 글로벌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이는 국방에 GDP의 5%를 지출하는 것”이라며 한국에도 나토와 같은 5% 룰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처음 공식화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GDP(2020년 기준) 대비 국방비 지출은 2.3% 수준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이재명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5일(현지시간)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위 실장의 이날 발언은 미국이 실제 이런 요구를 한국에 해왔고, 이에 따라 실무 선에서 이미 논의가 시작됐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아시아의 핵심 동맹국이 (국방비를)덜 쓰는데 유럽 국가들이 그렇게 한다면(5%를 쓴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한 게 지난달 31일(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 기조연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협의는 초기 단계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26일 나토의 국방비 증액에 대해 “우리의 유럽 동맹, 나토 동맹국들이 그것(국방비 증액)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우리 동맹과 친구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韓, 간접 투자 '1.5% +α'로 충족 가능

경기도 평택시의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 기지. 뉴스1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를 둔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은 통상 인건비, 군수지원, 군사건설 비용 등으로 항목이 고정돼 있다. 트럼프 1기 때 미 측이 항목 외 부담을 요구하며 5배 증액까지 압박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한 건 근본적으로 SMA는 ‘비용 뻥튀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2기에선 대신 나토식 국방 예산 증액 방식을 적용해 동맹 기여의 ‘판’을 키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나토는 2035년까지 ‘직접 국방비 3.5%+간접 투자 1.5%’로 5%를 증액하기로 미 측과 합의했다. 5%란 숫자는 맞춰주되 각 회원국이 융통성을 발휘할 공간도 남겨둔 셈이다.
위 실장은 ‘3.5%+1.5%’ 모델을 언급하며 “(우리가)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지는 정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토에 비해 한국은 상대적으로 출발 지점이 유리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이미 연간 국방비가 지난해 60조원을 돌파했다. 2023년 확정한 중기국방계획에 따라 국방비를 연 평균 7%씩 늘릴 경우 2028년에는 국방비 80조원 시대(GDP의 약 3%)가 열리고, 2030년대 초반엔 100조원 돌파도 예상된다.
국방 예산 증액 목표를 GDP의 최대 3%로 고정하고, 나머지 ‘1.5%+α’를 간접비 형식으로 기초과학, 교육, 관련 복지 인프라 투자 등으로 돌리는 방안도 있다. 특히 국방 원천기술 및 소재 개발과 관련된 연구 개발비를 늘리거나 범주를 확대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세계 4대 방산 수출 강국을 노리는 정부 목표와도 일맥상통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현재 나토는 국방비로 GDP의 2% 미만을 지출하고 있어 이보다 더 큰 기여를 하고 있는 한국이 나토와 동일한 5% 수준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도 “이를 수용하더라도, 러시아와 중동 사태 등에서 떠오른 새로운 전력 수요와 관련한 국방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는 쪽으로 윈윈 효과를 극대화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방비 증액, 정상회담 선결조건 되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TF 2차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는 곧 관세와 국방예산 증액이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이며, 두 사안이 서로 연계되는 형태로 준비가 진행 중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양국은 실무 협의에서 접점을 키운 뒤 정상회담에서 최종 합의를 이루는 모양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곧 실무 협의에서 진전이 없을 경우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아직 이 대통령이 트럼프와 대면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이 이를 조기 정상회담 성사의 선결조건처럼 내세워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우려도 있다.
루비오 장관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7월 9~12일) 참석 직후 한국과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에 대해 위 실장은 “ARF 계기에 곧 미국 인사들이 방한할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 같다. 더 협의를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이 방한하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의제 협상도 진행될 수 있는데, 이를 계기로 실무 협의에 속도가 붙을 지도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