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년 연중기획 ① 87년 ‘넥타이 부대’
‘현금 2039만9690원, 48달러, 1000엔, 토큰 6개, 회수권 6장, 사이다 여섯 박스, 연고·거즈 두 박스, 1680명 성금.’ 1987년 6월 명동성당의 농성 일지엔 대통령 직선제라는 그때 모두의 민주화 열망이 가득했다. 잠실체육관에서 민정당이 노태우 대통령 후보를 확정한 10일 동시 개최된 ‘호헌 철폐 국민대회’. 명동성당으로 경찰에 쫓겨 들어온 학생·철거민 등의 5박6일 농성은 지금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게 해 준 역사의 고비였다. 전두환 정권이 직선제(6·29선언)를 받을 수밖에 없게 만든 건 이 민주주의에의 간구였다. 다른 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던 이 민주화 이후 38년. 우리의 민주주의는 숱한 기대의 오류, 후퇴로 좌절을 맞고 있다. 하지만 6월 그날의 열정만은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자랑스러운 장면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6월을 먼저 되찾아가 보는 건 우리 민주주의 미래로의 출발선이기도 하다.
넥타이 부대는 대학생 감쌌고, 여고생은 도시락 건넸다

충격이 되돌아간 건 전두환 대통령. 건국대 점거 학생 1288명을 구속했던 그였다. 그런데 13일 관계장관회의에선 “가두시위에 시민들이 동조·지지하는 새롭고 심각한 상황”(고건 내무)을 맞았다. 물정 모르는 학생들의 투정쯤 여겼는데 먹고살 만한 넥타이들이…. “저들은 사생결단 태세로 나오는데 우리는 안 그런 것 같아요.” 정치를 전투로 보던 군 출신 대통령의 한탄. 대거 불어난 넥타이 등 100만 명이 26일 결집하며, 그의 이 푸념은 6·29 투항 전 참호 속 최후의 저항이 됐다.
민주화의 촉매, 넥타이 부대는 곱씹을 교훈을 남겼다. 그 시간은 대한민국 경제 도약의 정점이었다. 1987년(12.7%) 앞뒤가 11.3%(86년), 12%(88년) 성장의 호황. 중산층 확대 지표인 주가도 3년간 69.9%, 92.6%, 72.8% 폭등이었다. 명동 금융사 직원이자 안정적인 중산층 넥타이들이 그간 지켜본 건 정권 주도 산업화 속 대기업 특혜·집중, 정경유착, 근로자 인권 배제 등이었다. 오랜 정치적 침묵을 깨게 해준 건 권리, 그리고 자유로운 시장의 공기에 대한 갈망이었다. 거의 모든 자유민주주의는 중산층 부르주아지의 참여로 전진해 왔다. 청교도·명예·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혁명….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은 그러니 서로를 토양 삼아 공생·견인·진화해 가야 할 동전의 양면이다.
87년 ‘명동의 기억’ 그 후…배려와 포용 민주주의 절실
![1987년 6월 15일 점심시간 서울 명동 거리에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7/01/3411fd1a-f8f5-4266-90a5-3949f83382e1.jpg)
1987년 6월 15일 점심시간 서울 명동 거리에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제왕의 밀실엔 늘 비선이 숨어들었다
![최루탄에 쫓겨 도망치는 시민들. [사진 경향신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7/01/4a8a43a2-832a-4032-bd8f-f453afa80b18.jpg)
최루탄에 쫓겨 도망치는 시민들. [사진 경향신문]
![1987년 6월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이들에게 보낸 시민들의 응원 문구(위 사진)와 후원품 목록(아래).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7/01/d8a6e7ea-a157-478b-8d0a-be2fb1951e77.jpg)
1987년 6월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이들에게 보낸 시민들의 응원 문구(위 사진)와 후원품 목록(아래).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정당들 역시 제왕으로부터 나눠받는 기득권에 중독돼 오랜 비(非)민주적 경로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눈앞 ‘우리 편의 승리’만이 유일한 목표이니 위로부터의 공천 학살(민주당), 새벽 한 시간의 후보 옹립 등록(국민의힘) 같은 민주주의 압살의 연속이다. 상대에 대한 증오 부추기기 외에 인물·정책은 중요하지 않게 됐다. 득표용 포퓰리즘을 빼곤 두 정당의 어떤 선거 공약 차이가 기억나는가. 진짜 서민, 소수는 과연 누가 대변하는가. 승자독식 게임의 선택지가 늘 둘뿐이라 5% 총선 표 차로 71석(23.6%)을 더 가져가는 올인 도박 선거다. 매일 모여 ‘싸움’을 기획하는 곳, 그게 지금 우리 정당이다.
권리만 좇지 말고 공공선 위한 절제·조화를
![6·29선언 직후 서울시내의 한 찻집은 기쁨에 넘쳐 시민들에게 음료를 무료 제공했다. [사진 경향신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7/01/f9507608-a765-43e8-966d-0ef929dadf6b.jpg)
6·29선언 직후 서울시내의 한 찻집은 기쁨에 넘쳐 시민들에게 음료를 무료 제공했다. [사진 경향신문]
다시 살려 가자.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결코 대안이 없는 게 민주주의다. 민의가 제대로·골고루 반영돼 패자도 품을 선거제 개혁, 적절한 권력 분산으로 제왕을 막을 제도의 개헌이 절실하다. 1987년 헌법 체제의 효용과 소임은 끝났다. 자유·권리만 좇는 대신 공공선(公共善)을 위한 책임·절제·조화의 민주공화적 시민이 소중해졌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키우려는 그 6월 명동의 열망, 초심(初心), 참여가 되살아나야 할 시대다.
중앙일보 창간 60년, 대한민국 60장면…각계 리더·자문단 선정
이처럼 역동적인 나라가 또 있을까. 광복 80년.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6·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경제·문화·시민의식 등 많은 분야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세계인들이 한국 제품을 쓰고, K팝을 따라 부른다. 국방을 한국산 무기에 맡기는 나라 또한 늘고 있다. 비상계엄을 막아낸 한국의 시위문화조차 탐구 대상이다. 그런 한편에서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쳐댔던 인구 폭증 문제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저출산으로 반전됐다.
무엇이 대한민국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중앙일보는 올해 창간 60주년을 맞아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결정적 계기(트리거)들을 알아봤다. 정치, 관계, 학계, 산업·금융계, 법조계, 문화·스포츠계, 시민단체를 망라해 125명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1차 설문했으며, 자문단을 별도 구성해 가장 중요한 60개 트리거를 골라냈다. 트리거들은 어떻게 나타났고 진행됐는지, 우리 정치·경제·사회·문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오늘날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게재한다.
◆자문단=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전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현대한국연구소장), 김두얼 명지대 교수(한국경제사학회장)
무엇이 대한민국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중앙일보는 올해 창간 60주년을 맞아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결정적 계기(트리거)들을 알아봤다. 정치, 관계, 학계, 산업·금융계, 법조계, 문화·스포츠계, 시민단체를 망라해 125명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1차 설문했으며, 자문단을 별도 구성해 가장 중요한 60개 트리거를 골라냈다. 트리거들은 어떻게 나타났고 진행됐는지, 우리 정치·경제·사회·문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오늘날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게재한다.
◆자문단=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전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현대한국연구소장), 김두얼 명지대 교수(한국경제사학회장)